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광진 Apr 18. 2019

페미니즘과 반페미니즘을 넘어서

20대 남성들의 마이너리티 정체성

"남성 마이너리티 정체성이란 문제의 답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문제 그 자체다."

20대는 불과 몇 년 전 흙수저라 불렸다. 헬조선이란 신조어는 불과 몇 년 전이었다. 그러나 세월호가 있었고, 박근혜 탄핵이 있었으며, 그다음 페미니즘 운동이 있었다. 대중들의 정치적, 자주적 진출은 계속 이어지는데서 페미니즘 운동에서 여성과 남성이 미묘하게 갈린다. 여성은 페미니즘 담론을 통한 공감의 형성, 문화, 네트워킹을 형성한다. 즉 정치적 진출을 이어가면서, 공동체성도 형성한다.

반면 남성들은 여전히 개인이다. 20대 초반은 군대 갈 걱정, 군인이거나, 전역한 예비역은 뒤쳐진다는 불안감을 가진 고독한 개인이다. 어디서도 해소 할 공간이 없는 외로운 개인들의 집합체가 마이너리티 정체성을 형성한다. 결국 이들이 어떻게 스스로 네트워킹 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그 "허위의식"은 고립에서 나온다.

그래서 페미니즘 담론이 남녀 대결구도로 가는 건 위험하다. 고립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가부장적인 권위와 기득권 체제에 저항하는 운동이라 했을 때, 결국은 미래세대의 공동체를 어떤 문화와 원리로 가져갈 것이냐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20대 남성들이 마이너리티 정체성으로 공격적인 것은 맞으나, 그들이 주적은 아니다. 그들은 포섭해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미래세대의 공동체에 포섭되어야 하는 부분일 뿐이다.

개인화가 가속화된다고 했다. 개별화, 개인화는 기존의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그러나 대중들은 스스로 조직되고, 스스로 네트워킹한다. 우리는 현재에 미래세대의 공동체를 구현하고 있는 셈이다. 그 미래세대의 공동체 원리는 개개별의 자주성을 인정하는 속에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다. 그 어떤 개별도 주체로 인정하고, 차이보다는 같음을 찾아 공감하고, 연대하는 사회다.

페미니즘 담론은 가부장적 질서의 강요와 폭력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싸움의 귀결은 낡은 공동체 문화와 새로운 공동체 문화의 갈등과 모순, 결국은 미래세대의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성장통이다. 여성들이 폭력과 차별의 당사자가 맞고, 페미니즘운동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 그러나 차별과 폭력을 넘어 대안의 사회를 만드는 데는 남녀 구별이 없다. 나는 꼰대 문화와 90년대생으로 표현되는 갈등과 모순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결국 시간은 미래세대의 편이다.

"기성세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런 독특한 정체성이 어떻게 성립할 수 있었는지 설명해야 한다. 남성이 실제로 약자가 되었기 때문인가 그저 허위의식인가? 만약 남성이 실제로 약자가 되었다면, 그것은 재능과 노력에서 여성에게 뒤졌기 때문인가 부당한 권력이 작동해서인가? 만약 허위의식에 더 가깝다면, 그런 허위의식은 왜 어떤 경로로 이토록 공고하게 형성되었나? 젠더 권력 문제를 넘어서는 이 문제의 기원이 존재할까?" 시사인 기사 중에


https://news.v.daum.net/v/20190415140217339

매거진의 이전글 요령이 아닌, 기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