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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진 Jul 29. 2019

1. 반일은 필연이다

일본은 동북아 새판짜기에 플레이어로 들어오는 공짜 티켓을 원한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동북아 각축에 플레이어로 들어오는 공짜 티켓이다. 

경제 흑자국이 무역제재를 한다는 것은 순리가 아니다. 가만히 있어도 한국에서 자본을 취득해가고 있는데 왜 수출 규제를 한다는 것일까. 이는 순리가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 고려가 있는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손해를 감수하면서라도 얻어야 할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 목적이 무엇일까.


아베는 참의원 선거 이후에, 개헌 저지선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현재의 수출규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아니 더 확장해서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뺐다. 이는 장기전에 돌입한다는 것이고, 아베가 단순한 선거 승리를 넘어 원하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들고 나오기 이전에는 동북아의 열강들의 각축에서 주요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오히려 재팬 패싱이라고 불리면서 아무런 존재감이 없었다. 이는 일본에서 개최된 G20 회의에서 절정이었다. 더구나 G20 이후 판문점에서 남북미 3자 회담으로 아베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동북아의 열강들의 각축의 중심에는 북한이 있다. 북핵 무력 완성 이후 미국과의 담판을 이끌어내면서 동북아 이슈를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참여하기 위해서 중국도, 러시아도 북한과 접촉하면서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즉 북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가 동북아 각축의 주요 플레이어로 등장하는 입장권이 된다. 여기에 일본에 대해 북한은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와 배상 없이 만나지 않겠다고 하니, 일본만 그 입장권이 없다. 


여기서 일본은 북한이 아닌 한국을 상대로 외교전을 펼친다. 한국의 수출규제로 동북아 각축에 플레이어로 등장하고 있다. 정식 입장권이 아니라, 판을 깨트리면서 자기 주도로 들어오고 있다. 수출규제 문제와 과거사 사과와 배상 문제에 대한 시비는 장기전이다. 이는 일본의 하위 파트너로 한국을 종속시키려는 궁극적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본의 공짜 티켓은 미국의 구상과 일치한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군사정치적으로 고립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추격으로 경제적으로도 곤란한 미국은 트럼프를 앞세워 노골적 약탈 외교를 진행하고 있다. 동북아에서도 일본이 전쟁 가능 국가로 발돋움해서, 동북아 방위를 자체로 했으면 하는 것이 미국의 구상이다. 즉 아베의 평화헌법 개정, 전쟁 가능 국가, 현재 식민지배의 사과와 배상문제로 비롯해서 한국을 하위 파트너로 종속시키려는 일련의 맥락은 미국의 동북아 구상과 일치한다. 


그래서 장기전이 된다. 북핵 무력 완성으로 균열된 한미일, 북중러 대결구도가 새판으로 짜이는 과정, 즉 격변기에 각국들이 자신의 이익이 최대한 보전되도록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을 하위 파트너로 삼아야 하기 때문에 절대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할 생각이 없다. 하위 파트너는 거칠게 말하면 노예가 되는 것이다. 자주가 아니라 생존, 정치적 존엄이 아닌 경제논리로 일본의 종속이 필요하다는 것이 식민지배의 친일파들의 논리이고, 현재 조중동과 자유한국당의 논리이다. 노예가 되더라도 먹고살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이것이 모든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인지도 따져봐야 하지만, 경제논리로 정치적 존엄, 자주에 대한 시비를 거는 것은 노예가 되자는 말이다.


자주 vs 노예, 어떤 결정도 희생과 손해는 따른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의 반일감정이 불매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민들은 감각적으로 인지한다. 일본의 무례한 행동들이 우리를 노예로 바라본다고 하는 것이라고. 이것을 감정의 대응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일면적인 분석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을  뿐 이성적인 대응, 전략적 사고를 전제로 행동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예를 거부하고 자주를 선택하는 것이다. 자주를 덮어버리고, 경제적 논리로 따지는 것이 전략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은 대응이다. 경제논리로 사고하는 것이 일면에 있는 변화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개가 짖으니까 두렵고 무서운 것처럼. 본능적으로 엎드리는 것이다. 


일본과의 갈등과 수출규제는 당연히 우리 경제에 손해를 끼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이익이면 누군가는 손해를 보는 것은 당연하다. 이명박이 4대 강 사업을 하면서 복지예산 줄이면, 건설사는 돈을 벌었고, 일반 서민들은 손해를 봤다. 정치세력의 의도에 따라 언제나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이익을 본다. 우리의 정치적 결정이 손해를 보더라도, 자주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면 지켜야 한다. 다시 말해 일본과의 관계 설정을 정당하게 하는 것은 일정한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본 또한 자신의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고 한국을 하위 파트너로 설정하고 동북아 각축에 주요 플레이어로 등장하려 한다. 이것이 당장의 손해보다 미래의 장기적, 전략적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고 어떤 장기적, 전략적 미래 이익을 추구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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