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할리페' 12

12화 <영혼의 반쪽>

by 꿈꾸는 노마드

시몬느를 향해 온화한 미소를 짓던 그녀가 말을 이었다.


“자신과 어울리는 여자를 만나지 못한다는 그런 느낌? 오늘 까진요!”


그리고 본론이라 할 수 있는 대화들이 계속 이어졌다.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남녀는 서로의 영혼을 공유하는 것이랍니다.

난 장을 처음 봤을 때 바로 알았어요.

15살 때부터 내가 찾던 내 영혼의 반쪽이란 것을요.”

“어떻게 확신할 수 있으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의 사색과 유머에서 날 봤지요.

우린 원래 하나였다가 반으로 갈라진 것이기에 난 내 나머지 반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던 거예요.”

“아! 원래 하나였다 반으로 갈라진 거요? 내 나머지 반이라고요!

그래서 두 분이 그렇게 완벽해 보이셨던 거군요. 마치 하나이듯 완결체로요.”


까미유가 된 시몬느는 감탄했다.


“네. 우린 서로에 대한 신뢰가 남다르답니다.

그와 나는 ‘나’와 ‘너’란 구분이 없어요. 그냥 ‘우리’에요. 반반이 만나 하나가 된.”

“그럼 두 분께서는 어떤 일을 하실 때도 정확히 반반씩 나눠하시나요?

예를 들어 집안일을 하실 때도요?”


시몬느 베르나르 여사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직 말씀을 못 들으셨나 보군요. 우린 부부지만 같이 살고 있지 않아요.

각자의 거처가 다르죠.

이렇게 하는 이유는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가사노동을 하는 걸 그가 원치 않기 때문이에요.

그는 철저히 평등하길 바라지요.

물론 우린 아이도 낳을 생각이 없어요.

전 좋은 엄마가 될 생각이 없거든요.

자녀 양육이나 가사노동에 빠져 내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둘이 동등한 관계가 되기 위해선 서로의 경제적 독립이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어요, 우린.

그래서 우린 각자 생활하는 방식을 택했고 각자 사는 부부가 되기로 했죠.”


시몬느는 탄식했다.


“아! 따로 사는 부부요?”

“결국 삶이란 매사 선택해야 하는 순간의 연속을 경험하는 일이라, 우린 이렇게 합의한 거랍니다.

꼭 모든 부부가 우리 같을 필요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요.

누군가는 국가라는 단위를 지탱할 인구를 낳아줘야 하는 거니까요. 후후.”

“네. 말씀 이해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까미유가 된 시몬느는 호기심이 동해 알베르에 대한 질문을 하기로 맘먹고 그녀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알베르의 여자 문제가 알쏭달쏭하단 말씀은 무슨 의미인지 좀 더 여쭤봐도 될까요?”

“아, 그건 알베르는 장만큼 섬세하고 감성이 풍부한 사람인데 자신의 반쪽을 찾으려는 의지가 있는지 그게 늘 궁금했어요.

왜냐면 전 늘 그가 만나는 여자가 그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방금 전까지는요.”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남녀가 어울린다는 게 무슨 뜻인지 시몬느는 왠지 알 것 같았다.

그 둘을 봤을 때 자신이 느낀 그 느낌일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 말대로 본인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만나고 있는 사람은 남들에게도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됐다.

자신이 알베르와 어울린다는 말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 칭찬을 받고 보니 그녀는 예를 표해야 할 듯싶어 그녀에게 살짝 목례를 표했다.

그녀 또한 시몬느에게 살짝 어깻짓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또 문득 장난기가 발동한 시몬느는 그녀에게 이렇게 물었다.


“여사님! 혹시 같은 이름을 가지고 계신 시몬느 베이커란 분을 아시나요?”

“아, 그녀요? 잘 알진 못하지만, 일전에 한 번 교정에서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어요.

그녀가 인민을 먹이기 위해 혁명이 필요하다고 연설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내가 그녀에게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생의 의미라고 했더니 내게 이렇게 쏘아붙이더군요.

<한 번도 배고파 본 적이 없는 게 분명한 부르주아>라고요. 하하.”


그날 어느 정도 대화를 마친 그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알베르가 됐던 후작 역시 장과 좋은 대화를 가졌는지 매우 기분이 좋아 보였다.

모든 일이 매끄럽게 진행되었던 건지 그에게선 전혀 당황하는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다 그 둘은 자신들의 임무를 무사히 완수한 걸 기념하는 의미에서 포도주 한 병을 따기로 했다.

그래서 그들 둘은 돌아오는 길에 포도주 한 병을 구입했고,

함께 먹을 약간의 치즈와 포도, 내일 아침 먹을 아침거리까지 사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에 도착한 그들은 식당 테이블 위에 포도주와 치즈, 포도를 준비하고 마주 앉았다.

처음으로 함께 하는 포도주를 바라보며 그들은 각자 상념에 빠졌다.

시몬느는 주로 그녀가 그날 만났던 시몬느 베르나르 여사의 이야길 떠올리고 있었지만,

후작은 시몬느가 얼마나 완숙하게 위기를 대처하고 자신을 리드했는지,

그리고 그녀가 자기보다 훨씬 나이나 사회경험이 많은 사람 앞에서 얼마나 제 몫을 잘 해냈는지 그런 생각을 주로 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자신도 모르게 점점 그녀에게 빠져들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쯤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실 듯하다.

그들이 이 세계로 넘어온 후 과연 그들은 어떻게 잠자리를 가졌는지에 대해서.

그러니까, 한 침대에서 잤는지 아니면 따로따로 잠자리를 마련했는지 말이다.

거기에 대한 답을 드리자면, 시몬느는 여자라는 이유로 침대를 차지했고.

후작은 남자라는 이유로 소파를 선택했다.

신분으로 보자면 당연히 반대가 되어야 했겠지만, 후작은 매너 좋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알베르가 된 그는 유난히 부끄러움을 탔는데, 그건 아마도 너무 극적으로 젊어진 자신이 적응이 되지 않아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점차 그는 젊어진 자신에게 적응하기 시작했는지 그날,

그러니까 포도주를 함께 마신 그날은 시몬느에게 다소 부끄러움을 잊은듯한 행동을 해 보여 그녀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것도 몇 차례에 걸쳐서 말이다.

다시 말해 20대 중반의 남자라면 할만한 다소 유치한 행동을 했다는 얘기다.

가끔 사람은 자신의 실제 나이와 신분을 잊고 착각에 빠질 때가 있음을 그 역시 피해 갈 수 없었단 얘기가 되겠다.

함께 포도주를 마시는 도중 알베르가 된 후작은 먼저 카미유가 된 시몬느에게 이렇게 물었다.


“또 다른 시몬느의 이야길 듣고 보니 어떤 생각이 들었지?”

“첨엔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부부가 어떻게 따로 살 수 있다는 건지.

그런데 여긴 그런 분들이 꽤 있나요?”

“내가 알기론 아니야. 오늘 남자들끼리 이야길 하는데 다른 남자들이 그러더군.

그게 무슨 부부냐고. 그리고 어떻게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하는 걸 이해할 수 있느냐고 말이야.”


시몬느는 자기도 모르게 놀라움에 목청을 높였다.


“네? 시몬느가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한다고요?

전 왕족과 귀족만 그런 줄 알았었는데. 이 시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군요?”

“아니. 여기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면 서롤 구속하는 듯 보였어, 대부분은.

그런데 그 둘은 그녀만 그런 게 아니라 장 역시 그러나 봐.

그 둘은 서로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기만 하면 다른 사람과 성적 관계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해.

이곳의 보편적인 사람들과는 많이 다른 셈이지.

법적, 종교적으로만 서로를 자유롭게 만든 게 아니라 사랑에 있어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거 같더군.”

시몬느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시몬느가 말한 대로 정말 둘이 하나라는 생각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정이었겠네요.

정말 그들은 다른 이들의 평판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는 자기 주관이 확고한 사람들이네요.”

“둘이 하나라? 그건 무슨 뜻이지?”

“시몬느가 그랬어요. 장을 처음 본 순간 자신의 반쪽이 확실하단 걸 느꼈다고요.

원래 하나였다가 둘로 나뉘었는데 자신의 반이 바로 장이라고요.

그래서 영혼의 반쪽이라고 했어요.”

“원래 하나였다 둘로 나뉜 거라?”


시몬느가 이번엔 확신과 흥분에 찬 어조로 외쳤다.


“정말 멋진 아이디어지 않나요?

그래서 우린 늘 나머지 반을 찾으려 하는 건가 봐요.

사랑을 위해 불에도 뛰어들 만큼 용감한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도 알고 보면 결국 자신의 반을 찾는 행위잖아요.

사랑을 위해 목숨을 내거는 사람들을 이보다 더 명료하게 설명할 이론이 있을까요?”


반면 후작은 썩 달갑지 않은 표정과 어조를 유지하며 혼잣말했다.


“사랑에 이론이라...”

“저는 시몬느의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아닌가 봐요, 후, 아니 알베르는?”

“사랑에 이론이 들어간다는 거 이제껏 내가 들어본 말 중 가장 웃기는 말이야.

사랑은 절제라는 게 불가능한 감정인데 거기에 이론이라는 단어를 얹는다는 게 말이 안 돼.”


그러더니 이젠 대놓고 심통 난 표정으로 포도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이렇게 되뇌었다.


“우리 자신부터 제대로 잘 알고 나서 그다음에 사랑을 하든, 뭐든 해야 하는 거야.

그리고 자아를 인식하려면 지식과 지혜 이 두 가지가 다 필요한 거고.”


그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시몬느는 다소 의기소침해져 포도주만 홀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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