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할리페' 11

11화 <두 번째 시간여행>

by 꿈꾸는 노마드

그들이 도착한 곳은 그녀가 전에 레프 다비드피치를 만나기 위해 왔던 그 시대인 듯 그곳과 분위기가 매우 흡사해 보였다.

그보다 먼저, 시몬느가 달라진 환경에서 후작의 달라진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던 게 먼저란 말부터 해야겠다.

후작은 10년은 더 젊어 보이는 20대 중반의 훈남으로 변신해 있었다.

외모 역시 이전과 비교해봐도 별 차이 없이 준수했다.

시몬느는 내가 더 늙고 못 생기게 변해버렸으면 어쩌지 하는 맘에 당장 화장실로 달려가 자신의 얼굴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20대 초반 원래의 그녀 나이와 다르지 않아 보였지만 얼굴은 확실히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그녀는 자기 원래 얼굴이 더 좋았다.


‘고작 며칠만 이 얼굴로 지내면 될텐데 뭐~’


하며 그녀는 애써 마음을 돌렸다.

그녀가 화장실을 다녀와 보니 후작 역시 바뀐 자신의 모습과 그녀의 모습에 적응하려는 듯 보였다.

그건 그렇고. 알베르, 참 알베르는 후작이 여기서 사용할 이름이다.

까미유는 시몬느가 가지게 될 이름이고.

알베르와 까미유는 어떤 아파트 안에 있었는데 창밖을 내다보니 온통 우중충하고 더러운 거리와 잿빛 하늘이 그들의 눈에 띄었다.

처음이 아니라 그런 건지, 아니면 그와 함께라 그런 건지, 그녀는 지난번보단 훨씬 불안감이 덜했다.

아니, 사실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두 사람에게 가장 당면한 문제가 동시에 떠올랐다.

그건 당장 이제부턴 어떤 식으로 둘 사이 대화를 이어가야 할 것인가라는 바로 그 문제였다.

그래서 둘은 다소 민망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면서 각자 생각에 빠져들었다.

시몬느는 생각했다.


‘혼자일 때와 둘일 때가 이렇게 다르다니!

그를 어떻게 부르고 그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그 역시 나와 같은 고민 중임이 틀림없겠지?’


후작 역시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녀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해야 하는 거지?

그녀는 이제부터 내가 하는 행동을 알베르로 이해할까?

아니면 내가 하는 걸로 이해할까?

그녀 역시 고민하는 듯 보이는데 우린 과연 우리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을까?’

어색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린 대과업을 위해 이곳으로 온 사람들. 극복해야 한다.

극복해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나 우리의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시몬느도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의를 다지는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그녀가 입을 열었다.


“배가 좀 고프네요. 우리 어디 가서 밥부터 먹죠.”


시몬느는 생각에도 없던 이런 말이 입에서 튀어나와 무척 당황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했다.

후작이 아주 많이 어색한 표정을 곁들이며 마지 못한 듯 그러자고 답했다.

그들은 밖으로 나갔고, 잠시 후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메뉴를 받아 훑다가 적당한 것으로 주문했는데, 글과 말은 그들이 늘 사용하던 그것과 아주 많이 유사했다.

그는 조용히 앉아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곧 음식이 나왔고, 그들은 말없이 먹기에 집중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때, 문 쪽에서 알베르와 꼭닮은 사람이 나타났다.

깜짝 놀란 시몬느는 상황을 판단하기 시작했고, 그가 진짜 알베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급하게 후작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고개 돌리지 말아요. 그리고 가만히 고개 숙이고 있어요.”


그는 가뜩이나 적응이 안 되는 상황에서 이런 주문을 받자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건 시몬느가 원하는 바이긴 했지만, 평소 그녀가 흠모하고 숭고했던 후작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한 편으론 많이 안쓰럽게 여겨지는 모습이기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웨이터가 그들의 테이블로 와 그를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기 시작했다.


“어... 저쪽에 앉아계셨는데 언제 이쪽으로 오셨어요? ... 음식은 다 괜찮으신가요?”

“네. 좋아요.”


그녀가 급히 대답했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후작을 쳐다보던 웨이터는 다시 한번 고개를 갸우뚱거리곤 자리를 떴다.

그리고 제대로 고개를 들지도 못하는 후작을 향해 그녀가 말했다.


“진짜가 나타났어요. 그러니 빨리 먹고 나가도록 해요.”


그는 식욕을 잃은 듯 포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그녀 역시 식욕을 잃었고, 그래서 그들은 음식을 반 이상 남긴 채 식당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불안한 마음에 그들은 곧바로 아파트로 되돌아왔다.

아파트로 돌아와 그는 소파에, 그녀는 침대 위에 앉아 한참 그대로 있었다.

이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을 각자 느끼고 있었다고나 할까?

원래대로라면 후작이 그녈 리드하게 돼 있었지만, 처음부터 기겁할 일이 발생하고 보니 그는 많이 당황한 듯 보였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그런 모습에 그녀 역시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가 이성을 잃은 모습을 일전에도 본 적이 있다는 걸 기억하곤 그녀는 그가 제정신을 차릴 때까지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한참 침묵을 지키던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우리 일을 마치기 전까지 그, 그러니까 진짜 알베르에게 조치를 취해야겠어.”

“어떻게요?”

“이건 내가 이제까지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것이긴 한데, 그를 지독한 감기에 걸리게 해서 자리에 눕게 만들어야겠어.”

“그게 가능해요? 어떻게 하는 건데요?”

“내가 가지고 있는 다른 능력을 써야지 뭐.”


그녀는 지금까지 몰랐던 그의 또 다른 능력을 그 일을 통해 알게 됐다.

그는 약간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마법을 부려 알베르를 지독한 감기에 걸리도록 만들었는데,

좀 더 소상히 이야길 하자면,

먼저 알베르의 거처를 알아내 그의 방으로 몰래 잠입한 후 그의 베게 속에 뭔가를 집어넣고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녀가 그 내용물이 뭔지 물었더니 그가 씽긋 웃었다.


“박쥐의 똥에 그의 천적인 올빼미의 똥을 섞어 말린 뒤 가루를 내서 그걸 면 보자기에 넣은 거야.

아주 소량만으로도 사람에게 기침과 재채기를 하게 만들고, 그러다 점점 열이 많이 나게 되지.”


또 그걸 어떻게 구했는지 궁금해진 그녀가 물었더니 그는 그녀에게 이렇게 답했다.


“물론 혹시라도 이런 일이 발생할까 싶어 미리 준비해온 것이지.

여기서 박쥐와 올빼미의 배설물을 찾기란 쉽지 않을 듯해서.”


역시! 하면서 그녀는 다시 한번 그를 감탄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그들은 그들의 과업을 완수할 때를 맞았다.

그날이 왔고, 그날 아침이 되자 그들은 프렌치토스트에 약간의 과일을 곁들여 서둘러 아침을 먹고 거리로 나섰다.

혹시 그 커플이 늘 간다는 카페를 못 찾아 당황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일찌감치 집을 나선 거였다.

집을 나서면서 후작이 시몬느에게 말했다.


“미리 한 가지만 말해두겠는데, 이 커플은 결혼을 하긴 했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진 않아. 참고하도록.”


둘은 꽤 걸어 그곳에 도착했는데, 그곳을 발견하는 건 예상외로 쉬웠다.

둘은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안으로 들어가기 전 둘은 심호흡을 했고,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의지를 다졌다.

마침내 그들 눈에 그 커플이 보였고, 둘은 긴장하며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왜소한 체격에 눈 한쪽은 조금 이상해 보이고, 거기에 목소리까지 듣기 불편한 한 남자와 지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분위기를 풍기는 한 여자가 앉아있다 일어나며 먼저 그를 반겼다.


“알베르, 오랜만이군. 잘 지냈지?”


남자가 말하면서 그에게 악수를 청했고, 그는 그 남자와 악수를 나눴다.

그리고 여자에게 돌아서서 프렌치키스를 하며 그녀에게 예를 표했다.

시몬느에게 그 커플은 아주 편안한 사이로 보였다.

잠시 후 후작이, 그러니까 알베르가 된 그가 그들 앞에서 까미유가 된 시몬느에게 직접 그들을 소개했다.


“이쪽은 그 누구보다 주체적인 삶을 살면서 여성들 인권의 옹호자이신 시몬느 베르나르여사님.

그리고 이쪽은 내가 존경하는 학문적 동지이자 인생 선배이신 장 폴 클로델님.”


둘은 사람 좋은 미소를 보내며 각각 그녀에게 프렌치키스를 해 준 다음, 그녀에게 자리를 권했다.

자리에 앉은 그들 넷은 먼저 약간의 의례적인 담소를 나눴다.

그리고 장과 알베르는 곧 자릴 옮겨 다른 남자들과 대화를 이어갔고,

까미유가 된 시몬느는 원래의 그녀 이름과 같은 이름을 가진 여인 시몬느 베르나르 여사와 함께 이야길 나누기 시작했다.

베르나르 여사는 인상대로 지적이면서도 단호한 구석을 가진 여인이었다.

한동안 이야길 나누다 베르나르 여사가 말했다.


“알베르와 아주 잘 어울리는군요.”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꽤 오래 알베르를 봐 왔지만, 그의 여자 문제만큼은 참 알쏭달쏭했었어요.”

“네?”


시몬느가 반문하자 그녀가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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