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 노마드 Jun 24. 2024

전생을 더듬는 마음으로 보고, 듣고 싶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베로나의 고풍스러운 모습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난 전생을 굳세게 믿고 있다. 그리고 내 전생을 생각하다 보면 늘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자갈이 깔린 좁은 길을 황망히 달려가고 있는 나, 사랑하는 이를 잃고 방황하는 나, 때론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축제에 참가해 모든 이의 시선을 한 몸에 다 받아들이고 있는 나, 하지만 결국 남은 건 실연의 상처와 허허함, 그리고 쓸쓸함뿐인 나.


이런 이미지들을 꿰어 맞추다 보면 어느새 난 영락없이 중세 유럽 어느 도시에서 사랑을 잃고 거리를 헤매는 비련의 여인이 되어 있다. 

그리고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나머지 삶은 황폐해져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으로 세상에 복수하는 애련한 한 여인의 모습으로 귀결된다.


그러니 내 죽기 전 꼭 해 보고 싶은 일을 들라면 난 이런 내 전생의 모습에 걸맞은 유럽, 그중에서도 고색창연한 이태리의 적막한 도시 베로나에 들러 이 거리 저 거리 쏘다니며 내가 살았음직한 곳을 탐험해보기도 하고, 자갈이 촘촘히 박힌 거리를 걸으며 애써 내 과거를 떠올리려는 헛된 노력을 하게 될 것 같단 소릴 할 수밖에 없음이다.


그리고 결국엔 조금 느긋해진 마음으로 고대 원형경기장이었던 ‘아레나 디 베로나’에 들러 전생의 내 모습만큼 애달픈 비련의 여주인공인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비올레타의 처연한 삶을 지켜보는 걸 나의 버켓 리스트에 포함시키고자 한다. 어쩌면 이 오페라가 초연되었었다는 베네치아를 방문해 ‘라 페니체 극장’을 찾아갔다 운 좋게 이 공연을 그곳에서 감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한 곳을 선택하라면 단연코 ‘아레나 디 베로나’다.


‘베로나’로 말할 것 같으면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쥴리엣’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하고, 만약 ‘라 트라비아타’ 공연을 관람할 수 없다면 혹시 그곳에서 오페라 ‘로미오와 쥴리엣’ 공연을 관람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또 다른 애절한 사랑의 주인공들을 보며 내 전생의 단초를 발견할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과 함께.


혹은 이 오페라의 근간이 되었다는 알렉상드르 뒤마(‘몬테크리스토 백작’과 ‘삼총사’를 쓴 동명의 소설가는 이 사람의 아버지다)의 “동백꽃 여인”이 쓰인 것으로 짐작되는 프랑스의 파리에까지 진출해 그곳에서 다시 내 전생의 흔적을 찾아 헤매게 될는지도 모르긴 하다

 

이렇듯 죽기 전에 나는 유럽의 도시들을 떠돌며 현생이 아닌 내 전생의 현장으로 회귀하기를 소망하고 있다. 아주 오래전에 존재했던, 어쩌면 태고의 신비 혹은 절대고독을 조우하길 소망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가장 순수했던 내 진아에 근접해보고자 하는 하나의 몸부림일 수도 있다. 그리고 마침내 나 자신의 근원이었던 절대고독과 우연이라도 마주치게 된다면 흔쾌히 이승의 삶 또한 긍정하며 눈을 감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아레나 디 베로나'의 낮과 밤


작가의 이전글 협곡의 위엄 미국 뉴욕주 'Ausable Chas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