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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노마드 Oct 26. 2024

두 번째 회귀 20- 귀국

옆에 있던 정완수가 최영태라는 남자를 유심히 살폈다.

그리곤 이제야 기억이 난다는 식으로 기남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기남은 그의 신호를 알아듣고 최영태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랑 아주 친한 친구입니다. 이 친구 앞에서 못할 얘기라면 저도 들을 필요가 없을 거 같은데요.”

“그래? 그쪽이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거금을 제안할 작정인데 그래도 싫다고 할 텐가?”

“글쎄요... 제가 돈에 그리 욕심이 없어서요.”

“그렇단 말이지? 으음... 뭐 어려운 부탁은 아니야! 나 대신 대리시험 좀 부탁하려는 것뿐이야.”

“대리시험이요?”

“응. 내가 영 공부에 소질이 없거든. 우리 꼰대가 하도 지랄을 해대는 통에 골치가 아파서 말이야. 해결 방법이 이것밖엔 없을 거 같거든.”

“그 해결사 역할을 제게 맡기시겠단 거고요?”

“그렇지.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인데, 얼마면 될까?”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전 돈 욕심이 없어서 그 제안 거절하겠습니다!”
 “내가 제안하는 금액이 얼만지 물어보지 않았잖아? 금액 알면 놀라 자빠질 텐데!”     


그때 옆에 있던 정완수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여보슈! 돈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지만 내 친구 그런 사람 아니니까 다른 데 가서 알아보슈!”

“넌 빠져. 너한텐 볼일 없으니까!”

“뭐? 보자 보자 하니 얻다 대고 반말에, 거들먹거리는 꼴이 영”     


그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나 건드리지 마라! 우리 아버지 이름 대면 너희들 다 오줌 지린다!”     


그의 말에 이번엔 정완수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대응했다.


 “뭐? 카아! 이런 개뼈다귀 같은 게 어디서 굴러와서 우리 눈과 귀를 더럽히고 있는 거야 지금!”

“넌 빠지라고 했지! 소리 소문도 없이 이승 뜨고 싶지 않으면!”     


그는 마치 정완수를 칠 듯 손을 들어 올렸다.

그때 기남이 그의 팔목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웠나 본데, 내 친구한테 손대는 그날 당신 손모가지는 영 못 쓰게 될 거야. 그런 불상사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어서 꺼져!”     


평소 기남의 점잖은 모습만 보다가 이런 과격한 언사를 첨 보게 된 정완수는 놀랐다.

동시에 기남의 박력에 박수를 보내며 말을 보탰다.     


“역시! 내 친구 남기남 멋지다! 사나이야 사나이!”     


최영태라는 인간이 그런 두 사람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보다가 악담을 퍼부으며 자릴 떴다.     


“너희들 내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거다! 밤거리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기남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서 있었고, 정완수는 주먹을 들어 치는 시늉을 하면서 한마디 했다.     

“너나 밤거리 조심해! 괜히 내 친구한테 손모가지 나가지 말고!”     


정완수는 몬트리올 대학에서의 그 사건 이후 기남을 더 신뢰하면서 한편으론 약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의 지적 능력 외 그가 품어내는 아우라까지 느껴져 친구지만 외경심을 느끼게 된 거였다.

잠시 후 정완수가 입을 열었다.     


“나 저 인간 알아! 너 유학 오기 전에 한 번 유학생들 모임에 나간 적 있는데 그때도 얼마나 거들먹대면서 지 아버지 끗발 좋네, 어쩌네 하면서 지랄을 떨어대던지... 무슨 정부 고위 관리자 아들이라고 하던데.”

“그러든 말든 우린 신경 쓰지 말자고, 저런 인간!”

“근데 넌 정말 볼수록 새로워! 그런 박력은 또 어디다 숨겼다 지금에서야 보여주는 건데?”

“되도록이면 열받지 않으려고 하는데 정말 열받을 땐 내 본모습이 나오는 거지 뭐!”     


대수롭지 않게 기남이 대답하자 정완수가 기남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나한테 여동생만 있어도 당장 매부 삼는 건데 정말 아쉽다! 너란 남자, 완전 상남잔데 말이야!”     


기남은 못 들은 척하면서 앞장서 걸어갔다.

정완수는 기남의 뒤를 쫓으며 그의 어깨에 어깨동무를 하다가 장난으로 그에게 펀치를 먹였다.

둘은 가볍게 서로 펀치를 교환하면서 그렇게 기숙사로 향했다.     


***     


기남과 정완수는 함께 동고동락하며 유학 생활을 무사히 마쳤다.

한국에서 온 차기대권후보의 딸과 또 다른 재벌집 아들, 그리고 정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안사람 등 여러 인맥을 쌓았다.

기남은 또 자신의 또 다른 능력인 외국어 실력으로 각 나라에서 온 다양한 친구들 역시 많이 만들었다.

기남은 계획했던 5년보다 조금 이르게 과정을 끝마쳤다.

대학 경제학과에 편입해 학부과정을 마쳤고, 석사 MBA까지 모든 과정을 4년 만에 끝냈다.

정완수는 기남보다 3년 먼저 유학 와서 기남의 덕으로 공부 팁과 그 밖의 도움을 많이 받고 학부과정과 MBA를 마쳤다.

둘은 그동안 함께 생활하며 끈끈한 우정을 쌓았다.

해서 막상 정완수가 먼저 미국 유학 생활을 접고 몇 달 먼저 한국행을 결정했을 때 둘은 아쉬운 마음으로 작별을 고했다.

정완수는 그에게 자기 연락처를 주면서 한국에서 꼭 다시 보자고 말했다.     


“너 만약 연락 안 하면 나 대한민국을 다 뒤져서라도 너 찾아낼 거니까 꼭 연락해! 알았지?”

“당연하지!”

“내가 먼저 가서 터 잘 닦아 놓을 거니까 너 약속대로 우리 회사 들어오는 거다?”

“그건 좀 곤란할 거 같은데. 전에도 여러 번 말했잖아. 내가 계획하는 게 있다고.”

“안 돼! 넌 다른 데 못 가! 꼭 우리 회사로 와야 해!”

“너 이런 생각은 안 해 봤어? 나도 경영자의 아들일 수 있다는?”
 “어! 너 그런 얘기 한 번도 한 적 없잖아!”

“넌 물어봤고?”

“그런 걸 꼭 물어봐야 하나? 내가 우리 아버지 이름하고 회사 이름 얘기했을 때 너도 깠어야 하는 거지!”

“그건 그래! 하긴 우리 아버지 회사는 너희에 비하면 아주 작고, 거기서 일할 생각이 전혀 없긴 해. 근데 MBA까지 마치고 나니 아버지께 뭔가 도움을 드려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해서 말이야.”

“그렇다면 할 수 없지만... 암튼 너희 회사 아니면 우리 회사인 거야! 알았지? 그건 꼭 약속해줘! 꼭!”

“알았어! 그럴게. 흐흐.”
 “그럼 난 그렇게 알고 마음 편하게 먼저 한국 들어간다! 한국에서 보자!”     


그렇게 둘은 헤어졌다.

그리고 뒤에 남은 기남은 학부 때부터 MBA 과정까지 안면 트고 친하게 지냈던 현지 친구들의 연락처를 꼼꼼히 챙긴 후 뉴욕 경제 파워 본거지에 관한 조사를 좀 더 한 뒤 귀국했다.     


***     


한국으로 돌아온 그가 아파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 세요?”     


청년의 목소리에 기남은 순간 집을 잘못 찾아왔나 생각했다.

그러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지우라는 걸 곧 알아챘다.

문이 열렸고 지우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훤칠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지우가 기남을 보자 외쳤다.     


“혀엉!”     


그리곤 달려와 기남을 힘껏 안았다.

기남도 지우를 힘줘 껴안았다.

잠시 후 둘은 거실로 들어섰다.

그사이 현관에서 나는 소리에 방에 있던 인희가 튀어나왔다.     


“기남아! 온다고 미리 말을 하지! 그러면 공항에 마중 나갔을 텐데!”     


그녀가 기남에게 다가와 안아주고 어깨를 쓰다듬었다.     


“뭐 하러요? 제가 오면 되죠!”

“피곤하지? 참, 밥은 먹었고?”

“네. 비행기 안에서 먹고 내렸어요.”

“그래. 그럼 뭐 시원한 거라도 내 올게. 편히 앉아!”     


인희가 서둘러 주방 쪽으로 갔다.

기남은 거실을 둘러봤다.

자기가 떠날 때와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

그런데 보여야 할 한 사람이 안 보여 궁금했다.     


“기남아! 이거 마셔봐! 너 좋아하는 식혜다!”

“네.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새삼스럽게!”     


기남은 미국식으로 뭐든 주고받을 때 인사하던 버릇이 한국에 와서도 그대로 하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버릇이 돼서요. 미국에선 가족끼리도 뭐든 주고받을 때 꼭 고맙다고 하거든요.”

“그래? 흐. 너무 빡빡한 거 아닌가?”

“문화 차이죠, 뭐! 그런데...”     


기남 눈치를 보던 인희가 말했다.     


“연주? 연주는 오늘 좀 늦는다고 했는데...”     


기남은 인희의 말에 별 반응 없이 인희와 지우에게 눈길을 주며 말을 이었다.     


“엄만 그동안 어떠셨어요? 잘 지내셨어요?”

“나야 뭐 늘 그날이 그날이었지.”     


그때 지우가 끼어들었다.     


“형! 나, 엄마 일... 돕는 거 아시죠?”

“그럼! 엄마가 편지마다 네 칭찬이 대단하셨어. 일은 할 만하고?”

“네. 재미있어요!”

“우리 지우가 있으니까 내가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 옛날에 기남이 네가 날 도와주던 거랑 비교하면 우리 지우가 훨씬 더 잘하고 있어!”     


인희는 지우 기를 살려주려고 일부러 이렇게 얘기했다.

기남은 알아듣고 기쁜 표정을 지으며 엄마랑 꿍짝을 맞췄다.     


“그렇겠죠! 우리 지우가 숫자랑 기억력 나보다 훨씬 뛰어나니까!”

“형! 나, 힘도... 형보다 세죠!”

“그래! 키도 이제 형만하고 힘은 더 쎄 보이네! 흐흐.”     


그때 갑자기 지우가 눈이 초롱초롱해지며 기남에게 말했다.     


“형! 나 요즘 관심... 갖고 있는 게 있어요!”

“그래? 그게 뭔데?”     


셋은 앉아 이런저런 이야길 나눴다.

기남이 피곤한 기색을 하자 인희가 말했다.    

 

“이제 들어가서 쉬어! 연주는 내일 보면 되니까. 내일 실컷 얘기 나누고. 참 연주 직장 다니는 것도 알고 있지.”

“네. 그럼 전 이만 씻고 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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