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 노마드 Nov 28. 2024

세 번째 회귀 15- 메시지

걸그룹 ‘세븐틴’이 부르는 노래는 주로 억압된 학교 분위기에 대한 메시지가 주를 이뤘다.

학생들은 열광했고, 이미 학창 시절을 어느 정도 지난 일부 어른들도 그들의 메시지에 동조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공장 제품 찍어내듯 똑같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게 바른 교육은 아니지!”

“내 말이! 우리 학창 시절 생각해 봐. 꼰대 기분에 따라 억울한 매도 엄청 맞았지.”

“편향된 자기 생각을 우리에게 주입하던 선생들은 또 어떻고?”

“게네들이 부르는 노래가 딱 우리 맘이야! 그런 걸 노래로 들을 수 있는 날이 드디어 오다니!”

“난 이 가사가 제일 와닿더라. 샘들의 그 시절을 떠올려주세요. 강요와 강제에 억눌렀던 그 울분을 기억해 주세요.”

“맞아! 지들도 그런 때가 있었다는 걸 왜 잊는 건지 몰라!”     


반면 교육계나 교사들은 죽을 맛이었다.

아이들이 교실에서 단체로 노랠 부르기도 하고, 노래 가사를 빗대 은근하게 협박 비슷한 걸 하기도 했다.

세상이 조금씩 꿈틀거렸고, 그 가운데에 바로 NKN 아이돌들이 있었다.     


“이번 신곡 발표도 역시 센세이셔널합니다, 대표님!”     


윤진현 차장이 벅찬 느낌을 고대로 드러내면서 기남에게 달려와 보고했다.     


“제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순항하는 듯해 저 역시 벅찹니다, 윤 차장님! 모두가 다 열심히 해 주신 결괍니다.”

“아닙니다! 대표님의 선견지명 덕입니다! 역시 회사는 CEO 역할이 제일 중요하단 걸 또 깨닫게 됐습니다.”     

***     


오랜만에 기남은 아버지 남두철을 만나러 성북동집으로 향했다.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도 어느 정도 안정적 궤도에 올랐고 해서 아버지와 아버지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누고 싶었다.     


“오늘 너네 회사 주가가 또 최고치를 경신했더구나! 정말 대단하다 기남아!”  

   

기분 좋아 보이는 아버지를 보며 기남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아버지! 이제 아버지가 경영하시는 회사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기시죠.”

“응? 전문경영인?”

“이제 세상이 점점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오너가 꼭 회사를 경영할 필요는 없습니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시고 아버지께선 특수학교와 보육원 사업에 전념하시죠.”

“글쎄다. 아직은 더 해낼 수 있을 거 같은데 여기서 그만 손을 놔야 하려나?”

“손을 놓으시라는 게 아니라 더 의미 있는 일에 전념하시라는 얘깁니다.”

“...”     


기남이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아직은 특수학교에 유치반과 초등, 중등 과정밖에 없지만 이제 그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가니 직업훈련을 할 수 있는 전공과 설치 인가도 받으셔야죠.”

“그건 그렇지.”

“또 학생 수가 늘어나면 아무래도 체육관이나 급식실, 교실 같은 시설도 더 확장해야 하고요.”

“그런 일은 정남이가 하고 있잖아.”

“정남이가 하는 일을 아버지께서 감독을 잘하셔야 좋은 결과가 나오죠. 정남이가 잘하곤 있지만 아직은 미숙한 부분이 있으니까요.”

“그래. 한번 생각해 보자!”     


남두철이 기남의 눈치를 살피다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너희는 결혼한 지가 언젠데 아직 2세 소식이 없는 게야?”

“...”

“정말 아직도 맘이 없는 게냐? 새아기도 생각이 없대?”

“그런 문제는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버지!”     


남두철이 조금 심술이 난 표정으로 무응답을 유지했다.

잠시 후 기남이 생각난 듯 입을 뗐다.     


“그런데 정남이가 저한테 전화를 했었습니다.”

“??”

“우리 회사에서 일했음 하더라고요.”

“너네 회사? 연예 기획사에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게냐?”

“말은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워보겠다고 하는데...”

“걔가 이전에 비하면 사람이 많이 되긴 했지. 그래도 지 에미가 싸고돌아 산 세월이 길어서 처음부터 뭘 배운다는 게 쉽지 않을 게다.”

“제 생각도 그래서 일단은 좋게 타일렀습니다.”

“말을 들어?”

“일단 다시 한번 생각해 달라고 사정해서 알았다고 말을 해뒀습니다.”

“그 녀석 혹시 예쁜 가수들 보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     


기남이 사무실에 있는데 급히 최준혁이 뛰어 들어왔다.     


“대표님! 지금 하이텔에 난리가 났답니다.”

“??”

“고등학생 한 명이 하이텔에 글 올리고 또 청와대와 교육부에도 민원을 넣었다네요.”

“뭐에 관해서요?”

“강제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폐지하라고 하면서 학생 개인 인권을 침해한다는 그런 내용이랍니다.”

“그게 우리 회사 가수들 노래 때문에 그렇다는 여론이 형성된 건가요?”

“뭐 그렇게 꼭 짚은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기남이 잠깐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     


“이 또한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겠죠. 미래지향적이라는 건 서서히 사회의식을 변화시키자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니까요.”

“...”

“최 부장님도 아마 학창 시절에 부당한 일 많이 느끼셨겠죠? 저희 때 좋은 선생님도 많았지만, 개인적인 일로 학생들에게 화풀이한 교사들도 꽤 됐죠.”

“그건 그렇지만 일단 우린 회사 차원에서 방어부터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나서서 조장한 건 아니니 사회의 흐름에 그대로 맡기는 게 좋다고요. 뭔가 개혁할 것에 대한 물꼬를 튼 정도로 하죠.”

“그 말씀은...”

“도망가지도 않겠지만 굳이 나서서 이슈화할 필요도 없겠죠.”     


그리고 얼마 후 입시교육이나 교육구조 문제 등이 하이텔 토론방의 주된 화제로 떠올랐고, 하이텔엔 ‘중고등학생복지회’라는 게 결성됐다.     

걸그룹 ‘세븐틴’은 어린 소녀들이긴 했지만 당찬 이미지가 주였고, 타 그룹과는 차별화된 점이 있었다.

당시 대개의 걸그룹은 귀염성과 섹시 코드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이들은 그런 것과 거리를 뒀다.

주로 주도적인 삶을 살고 깨어나라는 메시지를 전파하면서 인기 가도를 달렸다.

그들의 진정성은 방송국 예능프로그램에서도 그 빛을 발했다.

그들의 태도는 이미지 메이킹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게 증명된 순간이었다.     


“와! 어쩜 하나같이 멤버가 다 이렇게 똑 부러질 수 있죠? 다들 태어날 때부터 그렇진 않았겠죠?”     


리더인 조혜린이 대답했다.     


“저희는 매주 저희끼리 선정한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때 프로그램 호스트 중 한 명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멤버 중 보육원 출신이 있다는 게 사실인가요?”     


잠시 주춤하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멤버 중 한 명인 우여정이 나섰다.     


“네! 제가 바로 보육원 출신입니다. 가수가 되기 위해 합숙하기 전까진 보육원에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일순 멈칫했지만, 아까 질문을 던진 그 호스트가 다시 부드럽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합숙 생활이 더 낫던가요?”

“꼭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있던 보육원 꽤 좋았거든요.”

“아, 그래요? 그럼, 각각의 장단점을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우여정이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먼저, 보육원이나 합숙이나 정해진 룰에 따라 생활한다는 건 공통점입니다. 

그리고 단체 생활이다 보니 나보단 전체를 생각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생각의 폭이 넓어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보육원 생활과 합숙 생활 단점은 뭔가요?”

“아무래도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적다는 단점이 있겠죠.”

“아! 그렇군요. 그래도 그룹 노래 가사 대부분은 다 우여정 양이 쓰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나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지고 생각할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하지만 다른 멤버들이 많이 도와줍니다. 그들과 대화 속에서 얻는 게 많습니다.”

“정말 똑소리 나는 우여정 양과의 대화였습니다! 그럼 다음으론...‘     


보이 그룹인 ‘올댓보이즈’ 역시 그들대로 사회에 굵직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들은 주로 남녀 차별이나 외국인 노동자 차별과 같은 사회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의 가사는 다양성 추구에 대해서도 많은 견해를 내포했다.     


<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었죠. 

머나먼 더운 곳에서 전쟁과 기름과 싸웠던 시절이. 

그 이전엔 타국에서 손에 피 묻히며 환자를 돌봤던 백의의 천사도 있었죠. 

올챙이 시절을 생각하는 개구리가 됩시다! 

우리는 모두 한 가족! 위 아더 월드>


<요! 틀린 것과 다른 것을 구별하자고요. 

저 사람과 나는 다른 사람인 거지, 나는 맞고 저 사람은 틀린 게 아니잖아요!>     


당시 오렌지족이 등장해 풍기 문란을 걱정하는 기성세대가 많아지자 ‘올댓보이즈’는 이런 메시지도 전했다.     

<난 개인주의지 이기주의는 아니랍니다. 

그대도 나처럼 개인주의지 이기주의는 아니길 바래요. 

개인주의는 X 세대의 특권! 

나부터 잘하자고요.>     


대신 2인조 그룹인 ‘점프 투더 스카이’는 철저히 상업적이면서도 트렌드 제조기로 거듭났다.

인기가 높아지자 드디어 방송국에서도 그들의 출연을 허락했고, 그 후부턴 그들이 착용한 패션은 물론 레게머리 또한 유행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패션 아이콘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음악성으로 최고의 인기를 달리는 R&B 그룹이 되어 회사에 막대한 수익을 책임졌다.

그즈음 여러 사회 메시지를 전하거나 트렌드를 주도하는 NKN 가수들에게 대개는 환호했지만 더불어 그들을 경계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어지는 이치와 다르지 않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