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
방금 전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 시청을 마쳤다.
잔잔하면서도 마음속에 깊은 파문을 남기는 그런 작품이었다.
한 인간과 또 다른 인간의 소통과 탐구에 관한 보고서라 해도 족할 만큼 충분히 묵직한 주제를 던지고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천착하는 주제기도 해 몹시 끌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모든 게 다 맘에 든 건 아니었다.
순전히 내 개인적 취향의 문제긴 하지만 난 드라마에서 보이는 흡연(성차별은 아닌데... 솔직히 여자들의 흡연이 더 꼴 보기 싫은 건 사실이고)과 음주 문화에 그다지 너그럽지 못하다.
자신의 주량에 맞게 적당량을 마시는 건 그나마 낫지만 과도하게 음주하는 장면이나 술을 권장하는 분위기는 질색이다.
아마 어린 시절 술만 들이켜면 평소 친근했던 외삼촌의 모습이 180도 변했던 게 충격이었다는 개인적 트라우마 때문일 수도 있겠고, 유전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술과 친해지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이유로 이 드라마에서 보이는 몇몇 장면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어찌 보면 이건 유독 이 드라마에서만 보이는 건 아니고, 전반적인 대한민국의 분위기일 터이고, 그러자니 이 드라마 역시 피해 갈 수 없는 부분이었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어느 정도의 상투적인 대목 역시 보이긴 했지만 이 드라마에는 그걸 뛰어넘는 장점이 분명 존재한다고 믿는다.
우선 이 드라마, 대사가 참 심금을 울린다.
짧되 명료하고, 오랜 여운을 남긴다.
다음으로는 대사만큼 관계의 복잡성보다는 두 여자에게 포커스를 맞춘 명징성이 돋보인다.
물론 다각적이고 다변적인 관계에 관한 이야기도 주긴 하지만 중심을 잃지 않는 탄탄한 구조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여겨졌다.
예를 들어 은중과 상연 두 여자 사이엔 상학이란 인물이 존재한다. 상연의 오빠 천상학과 이름이 같고 두 여자가 동시에 사랑하는 김상학이란 인물이. 그럼에도 흔하디 흔한 삼각관계에 매달리지 않은 깔끔함이 내겐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선함을 확인시켜 준 점이 참으로 다행스러워 보였다.
요즘 드라마를 보다 보면 로맨틱 코미디를 빼곤 좀 더 독하고 자극적인 맛에 시청자를 길들이려는 노력이 농후해 보이는데, 과정은 어떻든 결말만큼은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한다는 이 드라마의 설정이 참 좋았다.
물론 상연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지 않았다면 과연 은중이 그녀를 용서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지만 그 정도는 드라마적 요소로 남기고 싶었고.
인간의 본성 중 상대를 지독히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론 질투하고 시기하는 심리가 존재한다고 봤을 때, 또 자긍심이 바닥을 치는 사람에겐 그 어떠한 위로와 조언도 먹히지 않고 오히려 조롱으로 여겨질 수도 있음을 상기해 볼 때, 충분히 이 두 사람의 지난한 스토리는 있음 직해 보였고, 설득력이 있었다.
몹시 심하게 보이는 상연의 태도 역시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라고 여겨졌다. 자기 연민이 깊은 사람은 치명적이 되기가 너무도 쉬움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 하나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떠올려 봤을 때 혈연 간에도 이 명제는 적용되므로 친구 간엔 더더욱 그러하므로.
내 마음 나도 모르겠는데 어찌 타인의 심중을 헤아릴 수 있을까?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완벽한 타인임을 인정하면서, 스스로 미약한 인간임을 수긍하면서, 기회가 된다면 화해하고 용서하는 게 맞다는 걸 보여준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회에 나온 이 말을 늘 기억하고 싶다.
"너 같은 사람은 세상에 너밖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