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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빌런4

부동산에 다녀온 지 반나절도 안 지났는데 진희언니는 이미 내 동선은 물론 구체적인 정보까지 모두 확보하고 있었다.

진희언니가 가진 정보력의 원천은 도대체 무엇일까. 단순히 호기심이나 추측이라고 하기엔 정확한 정보가 대부분이었고, 쓸데없는 오지랖이라고 하기엔 꽤나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진희언니를 미워하는 사람은 많아도 끊지 못하고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비결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건 아마 진희언니의 타고난 정보력일 테다.  그리고 분명한 건 진희언니의 정보력은 밀실과 광장의 경계선 사이를 오가며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좋은 구실이자 미끼였다.


“누구한테 들었어요? 암튼 정보도 빨라요, 언니는.”

“부동산 실장이 겸이 절친 엄마잖아. 저번에 나랑 너랑 같이 있는 걸 보고 니 얼굴을 기억했나 봐.”

 “아. 그렇구나.”

“근데 사무실은 뭐하게?"

"아, 마땅한 자리가 있으면 뭐라도 해볼까 해서요."

"그럼 회사나 들어갈 것이지 무슨 사무실씩이나 얻어. 사업이라도 시작하게?”

“사업은 무슨요. 그냥 더 늦기 전에 뭐라도 시작해야 할 것 같아서요. ”

“너는 참 에너지도 많아서 좋겠다. 남편이며 애며, 뒤돌아서면 할 일 천지고 신경 쓸 일은 또 얼마나 많은데 무슨 일을 또 벌이겠다고."

"남편은 자기 일 하면 되는 거고, 애야 이제 손 갈 것도 없는데요 뭐."

"너는 무슨 남 이야기하듯이 말하니. 남편하고 애가 남이니. 니가 당해봐야. 그런 소리가 안 나오지.”

“그러게요, 저는 아직 언니만큼은 안 당해봐서요. 하하.”


나는 말이 끝나자마자 농담이라는 뜻으로 언니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진희언니는 이게 정말, 하며 웃으며 어깨를 쓸어내렸다. 유리가 식전 빵을 입에 넣고서 말했다.

근데 에듀포레 아파트 근처에다 얻게요? 거기 상가는 월세가 꽤 나가지 않나?”

“응. 그렇더라고. 학교랑 학원이 몰려 있어 그런가 비싸긴 하더라.”

나는 35만 원짜리 월세 사무실을 알아본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순진하다고 비웃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순정이 물었다.

“근데 뭐 할지 결정은 했어요?”  

“입시 컨설팅해볼까 생각 중.”

“아 맞다, 언니 재수학원에서 상담 실장 했었다고 했죠?”

“어, 근데 몇 년 쉬어서 감이 떨어졌을까 봐 걱정이야.”

조용히 듣고 있던 진희 언니는 답답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민서 아빠가 사무실 얻어도 된다고 허락했어? 보증금이며 월세며 뭘로 하려고?”

“아파트 값이 분양 때보다 올라서 대출을 좀 더 받을 수 있다고 하길래 대출받아서 그걸로 해볼까 하고 있어요,”

“대출금 때문에 민서 아빠하고 싸웠다는 애가 무슨.”

진희언니의 한심한 눈빛과 당황하는 순정의 눈빛이 동시에 나를 향했다. 나는 순정을 얼굴을 보며 ‘니가 언니한테 말했니?’라고 물었고 순정은 '다 아는 사이에 뭐' 라며 입을 얼버무렸다.       




며칠 전 민서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카페에 앉아 있는데 중 근처에 순정이 있다는 카톡에 같이 차나 한잔 마시자고 순정을 불러냈다. 우리는 얼마 전 이혼한 연예인의 뒷담화를 하고 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대출 연장만 할지 아니면 대출금을 더 받을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마지막으로 선택의 기회를 주겠다는 말로 사무실을 얻지 못하게 하려는 남편의 꼼수가 노골적이라는 생각이 짜증이 밀려왔다. 순정이가 앞에 앉아 있다는 걸 잊고 목소리가 커졌다.

“아이씨, 어제 얘기 끝났잖아. 왜 되묻는 건대. 사람 약 올려?”

나는 남편에게 오늘 내로 대출 문제를 해결하라고 말하고서는 전화를 끊었다.  목소리가 너무 컸나. 주변은 조용했고 민망했다. 순정은   들은 척하는 건지 아까부터 쇼핑 앱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숨을 내쉬는 나를 보더니 그제야 손에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내가 말할 때를 기다리는 눈치다.

아니, 뭐라도 해보려는 사람을 도와주지 못할 망정 그깟 천만 원 대출 가지고 이렇게 부들부들하냐. 빚이 무서웠으면 처음부터 집도 사지 말든가. 안 그래?”

순정은 그제야 궁금증이 풀렸다는 표정을 하며 말했다.  

“아이고, 우리 언니가 고작 천만 원에 져서 이렇게 화가 났구나. 얼른 식혀야겠다! ”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며칠 전 유리 시어머니가 식당에서 진상 부리다 망신당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라디오 사연에 나와도 뽑힐만한 유리 시어머니 이야기는 불쾌했던 내 기분을 바꾸기에 충분했고,  대출에 대해서 더 이상 묻지 않은 순정도 고마웠다.


조용히 사라질 줄 알았던 대출 이야기가 오늘의 주제가 될 줄이야. 빌런은 늘 내 옆사람이란 걸 왜 항상 잊어버리는지.

이미 이렇게 된 거, 나는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민서 아빠가 요즘 힘든지 몇 달째 이직할지 아니면 아예 다른 일을 할지 고민 중이에요. 그동안 혼자서 버느라 고생했거든요. 애 핑계로 민서아빠한테 제가 너무 기대기만 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여러모로 이제는 일을 해야 할 거 같아서요.”


사실 남편은 핑계고 나는 내 일을 하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대가를 받는 노동을 하고 싶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남편이 벌어온 돈으로 야무지게 살림하고 똑소리 나게 아이 키우고, 남은 돈으로는 종잣돈을 만들어 부동산에 재테크하는 건 내 능력 밖이었다. 차라리 내 몸을 써서 일하고 그 돈으로 생활에 보탬이 되는 것이 내 능력이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내 능력이 쓰일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내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은 없었다. 여자, 경단녀, 잉여 노동자라는 이유로.


진희 언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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