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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빌런 6

못 볼지도 모르니 미리 하죠

                   굿모닝굿 애프터눈, 굿 나이트.     


“엄마, 오늘 겸이 오케스트라 지휘자님한테 엄청 혼났어.”

“겸이가? 딴 애도 아니고 겸이가? 왜?”

‘타요’ 단톡방에 KF94 마스크 핫딜 떴으니 빨리 주문하라는 유리의 메시지를 뒤로하고 

민서를 쳐다봤다. 

“연습 시간에 동영상 찍다가.”

“동영상 찍는다고 혼이 나?” 

“애들이 싫다고 하는데도 몰래 찍다가 파트장 언니한테 걸려서 지휘자님한테 일렀어.”

“얼마나 대단한 거 찍는다고. 아무튼, 그래서?”

“지휘자님이 휴대폰 뺏어서 보시더니 지금 당장 안 지우면 부모님한테 말할 거라고 했어.”

"도대체 뭘 찍었길래. 아무튼, 그래서?"

"뭘 아무튼 그래서야. 그랬다고." 


민서는 식탁 위에 올려둔 샌드위치를 들고 소파로 갔다. 


"아니 뭘 찍었는데 지휘자님이 화를 내셔?"

"몰라. 근데 엄청 화나신 건 분명해. 범죄니 처벌이니 하시면서 엄청 살벌했거든."

"애들한테 좀 물어보지. 아무튼, 그래서?"

"엄마는 뭐가 자꾸 암튼 그래서야. 그게 다야."


 민서는 티브이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낄낄거렸다.

얘기하려면 끝까지 다하든가, 아니면 아예 꺼내질 말든가. 그것만 쏙 빼냐, 사람 궁금하게. 

동영상이라고 해봤자 지들끼리 낄낄거리며 노는 게 전부일 텐데 지휘자가 노발대발한 이유가 도대체 뭔지 궁금했다. 

겸이하고 상준이가 친한 게 생각나 순정이라면 뭐라도 알까 싶어 전화로 할까 했지만 그만뒀다. 지난번 일로 순정은 나에게 미안했는지 한동안 연락이 뜸했다. 진심이든 빈말이든 사과를 할 줄 알았지만, 순정은 어떤 말도 먼저 꺼내지 않았다. 그냥 다른 이야기에 묻힐 때까지 기다리는 것 눈치가 뻔했고 나 역시 굳이 들춰내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넷이서 만날 때면 늘 한 명은 꼭 마음이 상한 채로 헤어졌다. 하지만 서운함이나 불쾌함을 네 명 앞에서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건 우리 이 모임의 판을 깨뜨리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우리 넷이 만든 판의 두께는 딱 그만큼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저냥 쓸만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틈이 뻔히 보여 언제 깨져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얼음판.

하지만 궁금한 건 어쩔 수가 없어 유리를 떠올리긴 했지만 눈치보다 호기심이 늘 앞서는 성격인지라 나와 통화가 끝나기 무섭게 진희언니한테 바로 연락할 것이 뻔해 그 마저도 참았다. 내일 진희언니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정보는 되도록 정확해야 하니까.

확실한 건 겸이가 받은 꾸중은 겸이와 진희언니의 숨기고 싶은 사생활 이전에 유리와 순정, 그리고 나에게 필요하고 또 중요한 정보였다. 겸이는 곧 진희언니의 일부였고 겸이의 자존심은 곧 진희언니의 자존심이기에, 그리고 진희언니의 무너진 자존심은 우리에게 가장 흥미롭고 또 필요한 정보였기 때문이다.  


    


카페 창문 너머로 순정과 유리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게 보였다. 또 무슨 얘기를 하느라 저렇게 붙어 있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유리가 고개를 돌리더니 여기에요,라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 옆에 앉아 있는 진희언니를 쳐다봤다. 얼굴 표정을 보려 했지만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을 보고 있어 표정을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유리와 순정은 내가 앉자마자  204번 코로나 확진자 소식을 들었냐고 물어봤다. 그제야 나는 확진자가 200번 대가 넘었다는 것을 알았다. 열명 넘었다고 호들갑 떤 게 엊그제인데 언제 그렇게 많이 나왔냐는 내 말에 유리는 세상에, 를 외치더니 아무래도 언니는 심각한 안전불감증이거나 선택적 은둔자가 분명하다며 빨리 화장실 가서 손 먼저 씻고 오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순정과 유리는 번갈아 가며 204번의 신상을 읊었다. 온의초등학교에 다니는 5학년 애인데 200번 확진자였던 그 애 할머니한테 옮았다는 것, 그 할머니는 다단계 사업에 빠져 대전에 있는 교육 센터에 갔다가 코로나에 걸린 것도 모자라 딸과 사위, 손자들에게까지 코로나바이러스를 옮겼다는 것이었다. 유리는 노인네가 나이 먹었으면 집에 앉아서 티브이나 볼 일이지 쓸데없이 처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들 피해나 주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고, 순정은 200번 확진 날짜와 204번 확진 날짜가 맞지 않는다며 도대체가 ‘시청 알리미’ 문자는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아까부터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진희언니가 한마디 던졌다. 

“아무튼 시키는 대로 안 하고 지네 맘대로 하는 사람들은 코로나에 걸려도 싸다, 싸. 우리나라도 하지 말라는 거 하는 놈들한테는 정부가 공산당처럼 나서서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니까. 북한 봐봐. 코로나 걸리면 총살한다잖아.”

저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공산당 타령이다. 진희언니는 툭하면 공산당을 운운했다. 1가구 2 주택 이상 보유자에게 세금을 더 때린다는 뉴스로 한창 시끄러웠을 땐 공산당이 정권을 잡더니 나라가 망해간다고 분통을 터뜨리더니 이번에는 공산당처럼 나서서 방역 수칙을 위반하는 사람들을 처벌해야 하는데 지지율 떨어질까 봐 벌벌 떨고나 있다고 한심스러워했다. 

언니에게 공산당은 정치, 경제, 이념 따위와 관계없이 그저 언니의 사생활에 피해를 주는 공공의 적 아니면 공공의 적을 한방에 날리는 무식한 집단이었다. 오늘의 공산당은 내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갔다.

 '뭐, 어쩌겠어. 진실을 구하고 장렬히 희생당하는 수밖에.'

 나는 언니를 보며 어제 있었던 일을 꺼냈다. 

“언니, 어제 겸이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님한테 많이 혼났다던데 괜찮아요?” 

언니는 내 말을 듣자마자 순정을 매섭게 쳐다봤다. 순정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작은 눈을 있는 대로 치켜뜨며 이번에는 정말 자기가 아니라는 표정으로 진희언니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억울해하는 순정이가 오늘은 딱해 보일 지경이었다. 

‘으휴, 넌 언제까지 그런 취급이나 받고 살래?’

순정을 구해줄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나는 진희언니를 보며 말했다. 

“어제 민서가 그러더라고요. 겸이가 지휘자님한테 혼났다고.”

유리는 겸이가 혼났다는 말에 어제 주문받았던 공구 구매 완료 버튼을 누르다 말고 대화에 껴들었다. 

“다른 애도 아니고 겸이가? 무슨 일로?”

“내가 진짜, 어휴. 그 지휘자는 처음부터 별로 였는데 역시나 별로야. 어떻게 예술한다는 놈이 매너도, 예의도 드럽게 없다니?” 

진희언니 입에서 오랜만에 더럽게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유리가 동시에 풉, 하며 웃으며 말했다. 

세상 고상한 진희언니 입에서 더럽게, 라는 말이 나온 거 보니 지휘자님 오늘 제대로 씹히겠네.”

순정은 아직도 뭐가 억울한지 얼굴이 벌게진 채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요?"

“겸이가 요즘 동영상 찍는데 재미가 들렸잖아. 유튜브 한다고.” 

유리가 끼어들었다. 

“어머, 겸이도 유튜브 시작했어요? 수정이도 요즘 난린데. 처음에는 찍을 게 없으니까 동생 노는 거 찍었다가, 저 일하는 거 찍었다 하는데 찍은 거 보면 아주 개판이에요. 저번에는 옷 갈아입고 있는데 데 카메라 들이대서 완전 식겁했잖아요. 요즘 애들이 엄마 몰카를 찍어서 그렇게 올린다고 하더니 이게 미쳤지. 근데, 겸이는 왜요?”

“안 그래도 내가 그 말이야. 개판 따위이나 찍을 거면 뭐 하러 찍어. 기왕 하고 싶으면 좀 있어 보이는 걸로 찍어 올리라고 했지. 애들 찍는 건 뻔하잖아. 조회 수나 올리려고 이상한 거나 올리는 거.”

유리는 자기 입으로 개판이라고 말은 했지만, 막상 진희언니가 맞장구를 치니 기분이 상했는지 샐쭉해졌다.   

“오케스트라 연주하는 거 찍어 올리면 얼마나 보기 좋아. 그래서 이상한 거 찍지 말고 애들  연주하는 거나 찍으라고 했지. 그랬더니 애들이 그걸 가지고 지들 몰카를 찍었다는 둥 초상권 침해하는 둥 시비를 걸었나 봐. 쥐콩만한 것들이 또 어디서 주워 들은 건 있어서.  아주 까져서 말이야.” 

순정은 진희언니가 뭘 모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언니, 요즘 애들이 얼마나 똑똑한대요. 그리고 학교에서도 엄청 강조해요. 함부로 친구 사진 찍지 말고 몰래도 찍지 말라고요. 나중에 다 증거로 남으니까. ” 

“그래도 그렇지, 기껏해야 초등학교 4학년짜리 순진한 겸이가 무슨 얼어 죽을 몰카니. 그리고 겸이 유튜브에 동영상 올려서 유명해지면 지들도 덩달아 유명해지는 거 아냐?”

진희언니의 흥분에 유리는 손사래를 치며 언니를 진정시켰다. 

“이 언니, 너무 멀리 간다!   그렇게 쉽게 유명해지면 개나 고동이나 다 하게요?”

개나 고동이란 말이 재미가 있었는지 순정이 박장대소를 했다. 순정의 진심과 유리의 공감이 오늘처럼 잘 맞아떨어질 때도 있었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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