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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늙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마흔 중반.

점점 노화를 통증으로 느끼는 몸도 걱정이지만, 그런 몸에 사정없이 들어가는 돈이 더 무서운 게 솔직한 요즘 심정이다.


남부럽지 않은 의료보험 제도의 혜택을 받고 사는 국민이지만 하루 동안 최소 두세 곳의 병원을 방문하고 나면 최소 몇만 원의 진료비와 약값이 든다. 게다가 정확한 병명을 찾기 위해 CT나 MRI 같은 최신 기술이 필요한 검사를 권유 받게 되면 수십만 원의 병원비는 우습지도 않다. 실비보험이 있는데 뭐가 문제냐고 말할 수 있지만, 그 돈 역시 결국은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일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모두 실비보험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니, 나보다 사정이 더 좋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긴 몰라도  견딜 수 있을 만큼 견디다 병원을 방문하거나 그것도 어렵다면 아픈몸을 팔자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다반사지 싶다.       


점점 현실화되어 가는 백 세 세상에서 곱게 늙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해야 하고, 아픈 곳이 생기면 바로바로 병원으로 가 미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큰 병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란 믿음 때문이다. 각종 건강보조제를 아침저녁으로 챙겨 먹는 건 기본이고, 최신 업데이트 된 건강정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보가 곧 건강이자 돈이자 미래기 때문이다.  


돈은 단지 아픈 몸을 위해서만 필요하지 않다. 무엇보다 몸과 마음 사이의 노화 속도가 불일치하다못해 엇받자가 되어가는 세상인 지금, 늙어가는 외모를 감추기 위해서도 돈은 필요하다. 흰머리를 감추기 위해 주기적으로 염색을 해야 하고, 늘어지는 피부를 감추기 위해 피부과에 가서 시술도 받아야 한다. 운동은 말할 것도 없이 필수인데 건강을 위한 운동과 몸매를 위한 운동은 같지 않은 탓에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운동을 각각 찾아 등록해야 한다.  


건강에 좋은 것을 다 해도 먹는 게 엉망이면 다 소용없다는 (반) 전문가의 말을 따라 탄수화물이나 가공식품을 줄이고 단백질과 채소 위주의 식생활을 하려고 해도 팍팍한 지갑과 치솟는 물가 앞에서 하나를 먹어도 건강하게 먹겠다는 다짐은 바람에 갈대가 흔들리듯 마구 흔들린다. 특히나 요즘 같은 고물가, 패스트푸드 시대에 저렴하고 간편한 인스턴트식품이나 대기업 밀키트를 선택하지 않고 시간과 돈이 드는 건강식을 챙겨 먹는다는 건, 생계와 직결되는 일을 하고, 가족의 돌봄을 책임져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며, 자기 계발까지 해야 비로소 ‘오할운'(오늘 할 일 완료)이 종료되는 사람에게는 늘 포기 일 순위다.      


이 모든 투덜거림이 늙어가는 것을 부정하려는 잘못된 태도 때문이 아니냐며, 돈 안 들이고 건강할 수 있는 방법도 많은데 그걸 하지 못하는 건 오로지 당신의 게으름 때문 아니냐며 말할 수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늙어가는 몸을 인정하자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거부하고 싶은 내면의 실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젊고 건강한 몸을 디폴트로 하는 사회적 분위기, 노화는 예방의 대상이라는 불가능한 환상, 그리고 이런 분위기에서 신체와 마음의 나이가 일치하지 않는 데서 오는 불안 때문은 아닐까.

이건 늙어가는 몸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철없는 태도나 게으름과는 다른 문제다.     


 사회 한쪽에서는 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어른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위로하는 척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나이보다 건강한 신체를 갖지 않으면, 젊은 외모를 갖지 않으면, 젊은 라이프 스타일을 갖지 않으면 차별하고, 혐오하고 배제하는 것을 당연한 것, 공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한경쟁사회에서 지치지 않은 척 살아남으려면, 최소한의 경제활동이라도 하려면 돈을 들여서라도 젊고 건강한 몸으로 보여야 한다.  

     

결국 늙은 몸과 돈은 따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곱고, 예쁘게 늙는 건 생각보다 어렵고 힘들다. 마음까지 곱게 늙는 건 더 힘들다. 현실과 욕망 사이의 괴리감을 어떻게 해서든 줄이려는 게 목적인 인간인 이상, 괴리감을 느끼면 느낄수록 튀어나오는 불안과 도태감은 그것을 수용하지 않는 이상 비용을 들여서라도 없애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므로.


공짜로 얻을 수 없는 건 어쩌면 진짜 제대로 늙는 몸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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