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나는 예전부터 머리 자르는 게 너무 귀찮았다. 특징 없는 생김새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어떤 헤어스타일을 해도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미용실을 여러 번 바꿔 보아도, 펌을 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실, 이런저런 헤어스타일을 시도해 본 적은 있다. 하지만 늘, 내가 디자이너에게 보여준 사진과는 다른 결과물이 나왔다. 물론, 나도 그것이 모델 차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사실은 그 이상)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구사항과 결과물이 너무 달라 말을 잇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와, 정말 잘 됐네요, 라며 활짝 웃는 디자이너들의 반응은 나를 더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몇 년 전 김포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나는 또 새로운 미용실을 찾게 되었다. 말수가 거의 없는 마른 체형의 남자 디자이너가 내 담당이었다. 나는 늘 그렇듯 큰 기대감 없이 디자이너에게 사진을 보여주었고, 그는 10초 정도 말없이 사진을 바라본 후 알겠습니다, 라고 했다.
나는 안경을 벗고 있어서 결과물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커트가 끝나고 안경을 쓰는 순간 깜짝 놀랐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나는 다음에는 펌을 한 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미용실을 나왔다. 그리고 두 어달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그 미용실을 찾았다. 이번에도 사진을 보여주었고, 디자이너는 저번처럼 잠깐 동안 말없이 사진을 바라본 후 알겠습니다, 라고 답했다. 나는 결과물이 어떨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한 시간쯤 지난 후, 큰 기대감을 안고 안경을 썼다. 이번에도 내가 원하는 결과물이 그대로 나왔다. 사진 그대로 만들어 주어서 놀란 것이 아니라 사진을 보고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파악한 다음 나에게 맞는 스타일링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두 번이나 놀란 마음을 제대로 가라앉히지 못한 채 미용실을 나왔다. 그때 나는 곧 부산으로 내려갈 예정이었는데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쯤은 김포에 올라와서 머리 손질을 받을까? 하는 진지한 고민을 했을 만큼 내 마음에 딱 들었다.
그런데 한 달 뒤 커트를 하러 다시 미용실을 방문했는데 그 디자이너가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때 내가 느꼈던 아쉬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김포까지 와서 커트를 할 뻔했는데 다행이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문득 그 디자이너를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 정도 실력이면 어디서나 사랑받고 있지 않을까? 나는 또 그런 디자이너를 만날 수 있을까? 아무튼 그가 잘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