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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갓 Mar 28. 2023

고양이 1

망상

 내가 처음 그를 만난 것은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가 쏟아지던 4년 전 어느 여름날이었다. 그날은 비 소식이 있어서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러다 순식간에 온 세상이 어둠을 삼킨 것처럼 어두워지더니 건물도 뚫을 것 같은 장대비와 함께 이따금씩 천둥번개가 내리쳤다.

 나는 지게차를 타고 창고 정리를 하고 있었고, 비를 쫄딱 맞고 사무실로 돌아갈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일단 얼른 끝내고 보자'

 지게차를 후진하는데 '빡' 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났다.

 '뭐지? 나무판자라도 밟았나?'

 운전석에서 내려 뒷바퀴 쪽을 확인하는데 작은 새끼 고양이가 바퀴에 깔려 죽어 있었다. 나는 그 순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우발적으로 누군가를 죽이게 된다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한동안 고민하다 나는 고양이를 종이 상자에 담았고, 창고 근처 야산에 묻었다. 잠시 후 사무실에 있던 동료가 나를 데리러 왔고, 나는 동료의 차를 타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날은 계속해서 그 고양이 생각이 났지만 비가 그치고, 며칠이 지나자 그 일은 서서히 내 머릿속에서 희미해져 갔다.


 ​공기에서 역겨움이 사라져 가는 가을이 막 시작될 무렵 나는 양양으로 향했다. 전에도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바람을 쐬러 그곳에 가곤 했다. 높고 울창한 산도 있고, 드넓게 펼쳐진 동해 바다도 있어서 기분 전환에 딱이었기 때문이다. 바닷가 근처에 차를 대충 세우고, 거기에 있는 벤치에 앉아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인기척이 느껴져 내 옆을 보니 웬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나는 흠칫 놀랐다. 그날이 생각나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단지 고양이가 내 옆에 있어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때였다.

 '기억이 안 나는 거야? 모르는 척하는 거야?'​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뭘 그리 놀래? 너한테만 들리는 거야.'​

 

나는 고양이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겁먹지 마. 네가 날 죽인 것은 맞지만 사실 나한테 죽음이란 건 큰 의미가 없어. 어차피 이렇게 다른 고양이가 되니까.'​

 

 나는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아무 말 없이 그의 크고 동그란 눈만 멀뚱멀뚱 바라볼 뿐이었다.

 '여기는 어쩐 일이야?'

 "어.. 그냥 바다가 좋아서.."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웃기시네. 뭔가 답답하니까 바다에 다 던져놓고 가려는 거겠지.'​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창피해 할 필요 없어. 바다는 입이 무거워서 비밀을 다 지켜주니까.'​

 

 그리고 그는 바다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한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나도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우리는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때로는 고민거리가 있는 너희들이 부러워.'

 

 나는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고민거리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나 행복한 일도 있다는 뜻이잖아? 물론, 슬픈 일이나 화나는 일도 있겠지만.'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어. 죽음조차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사실 나는 죽음이라는 뜻만 알지 그게 어떤 것인지는 전혀 알지 못해. 어떤 기분인지 전혀 모르겠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그 기분이 어떨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냥 매일매일 신선한 생선을 먹는 거야.'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고기나 야채 따위는 못 먹는 거지. 그냥 매일 신선한 생선만 먹는 거야. 굶어 죽을 일은 없지만 더 맛있는 음식도, 더 쓰레기 같은 음식도 못 먹는 거야.'

 나는 그게 어떤 기분일까 한참을 생각했다. 썩 좋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생선 요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러고 나서 고개를 돌렸을 때 그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아마, 때가 되어 신선한 생선을 먹으러 간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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