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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Dec 08. 2019

핀란드 대학 연구실의 분위기

수평적, 다양성

현재 필자는 오울루 대학에서 연구실 인턴을 하고 있다. Affective coputing (감성 컴퓨팅, 인간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인공지능 개발)과 관련된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다.

이런 데모를 만드는 곳이다.

당연히 교수님 별로, 랩실 별로 다르겠지만 한국의 혹자는 연구실을 교수님의 왕국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다분히 보수적이고 딱딱한 분위기로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가 다니고 있는 연구실의 인턴은 어떤 분위기 일지 한번 소개하겠다.


1. 연구실의 구성


연구실은 Guoying Zhao 교수님의 필두로 운영된다. 중국 출신의 교수님으로 오울루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을지는 10년이 넘는다.


교수님이 중국분이다 보니 핀란드에서 인턴을 하고 있음에도 중국인들이 많다. 절반 정도는 중국인인 것 같다.


그 외에 베트남 출신의 학생이 뒤를 이어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아프리카, 파키스탄, 인도, 중동 국가에서 온 학생들이 있다. 오히려 핀란드인은 소수이다.


컴퓨터 공학이고 외국인(비 핀란드인)이 교수로 있다 보니 핀란드인이 특히나 많이 없다. 하지만 오울루대학 석박사 과정 자체의 절반 이하가 핀란드 일이고, 전체적으로 굉장히 국제적인 분위기이다.


필자의 지도교수님뿐 아니라 중국인 교수님이 여럿 있고, 그 외에도 다른 국가에서 오신 교수님들이 많이 계신다.


2. 연구실의 분위기


중국인 교수님이 팀을 이끌고 있고, 다수가 핀란드인이 아니다 보니 이 집단을 일반적인 핀란드의 연구소의 예라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핀란드에서 석박사를 하고 있는 과정이고, 교수님도 핀란드에서 일을 하신지 오래되었으므로 어느 정도 핀란드의 분위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위 그림처럼 지도교수님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한다.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에도 교수님을 first name을 부르진 못하고, 보통 sir 혹은 mr 등 공손한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핀란드에서는 교수님의 first name을 부르고 정말 친구처럼 지낸다. 친구에게 하듯 농담을 하고 함께 식사를 할 때에도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교수님과 학생 관계가 그렇다 보니 당연히 사수나 선배들의 관계는 더욱 수평적이다.


한국에서는 학부 인턴이나 새롭게 석사를 시작하여 연구실에 들어간 신입의 경우 선배들도 꽤 어렵게 느껴지고, 선배들께도 깍듯이 예의를 차려야 한다. 선배들은 하대를 하고, 후배들은 존대를 하는 경우도 꽤 많다. 가끔 선배가 후배보다 "높은"존재로 느껴질 때도 있다. 한국의 특성상 나이가 중요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선배가 나이가 많은 경우가 많은 것도 영향이 클 것이다.


그러나 핀란드에서는 나이가 매우 뒤죽박죽 하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 보면 50~60대로 보이시는 아주머니, 아저씨 분들께서 코딩 수업에 종종 보인다.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일을 하다, 시대가 바뀜을 느끼고 지금이라도 코딩을 배우기 위해 석사과정을 하시는 것이다. 외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혹은 일을 하다가 오울루 대학에서 석박사를 하기 위해 온 학생들도 많다. 그렇다 보니 나이가 워낙 뒤죽박죽 하다. 사실 원래 핀란드에서 나이는 큰 상관없이 모두가 수평적으로 지낸다. 그렇다 보니 연구실에서 사수에게 뭔가를 물어볼 때에도 참 편하다. 분명히 나보다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를 해왔고, 지식이 훨씬 많다. 그러나 나보다 높은 존재라고 느껴지진 않는다.


3. 일하는 분위기


일하는 분위기 역시 정말 자유롭다. 필자는 인턴으로 출퇴근 시간은 없다. 그러나 필자뿐 아니라 석박사 생 모두 특별히 출퇴근 시간은 정해지지 않은 것 같다.


다들 원하는 시간에 출근하고, 원하는 시간에 퇴근한다. 1주일에 한번 정도 있는 미팅과 세미나에 참여해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팀원들과 교수님께 보고하는 정도의 제약만 있고, 그 외 시간 활용은 본인의 몫이다.


아침 점심 저녁 시간대 별로 연구실에 분포하는 국적을 관찰하면 아주 흥미롭다.

아침: A그룹, B그룹
점심: A그룹, B그룹, C그룹
저녁: A그룹, C그룹
주말: A그룹

당연히 모든 집단이 이렇게 나눌 수도 없고 예외는 언제나 존재하지만, 우리 연구실의 30 이상의 집단을 3개월 이상 관찰한 결과 거의 대부분 이 패턴을 따라간다.


A그룹


A 그룹은 누구일 것 같은가? 다들 예상하겠지만 동아시아 출신이다. 중국인과 베트남인 그리고 이 연구실엔 한 명뿐인 나(한국인)도 포함된다. 정말 아침이고 저녁이고 주말이고 계속 연구실에 있는다. 대체 무슨 할 일이 그렇게 많을까 싶을 정도로 주중 주말 시간 관련 없이 계속 연구실에 출근한다.


다들 특별히 업무와 관련 없는 일을 하는 것도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중국이 요즘 기술력 측면에서 엄청난 성장을 하고 있는 일이 그리 놀랍지 않다.


유럽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대체 아시아 인들은 왜 이렇게 쉬지도 않고 일을 열심히 하는 거야?

와 같은 인종차별의 뉘앙스가 살며시 풍기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때마다 약간 기분은 언짢지만, 다양한 각도에서 셜 명해 보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연구실에서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 대충 왜 그런 질문을 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가 가기도 한다.


나는 연구실에 들어온 만큼 뭐라도 더 배우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연구를 하고 싶다. 당장 논문을 작성하고 연구를 할 수는 없겠지만, 뭐라도 열심히 해야 논문을 작성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중국과 베트남 출신의 친구들과 대화를 해보면 대충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본인이 직접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자라온 환경이 그렇다.


핀란드에서 연구를 한다는 뜻은 최소한 영어로 공부와 연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되고, 해외의 기회를 찾은 나름대로 진취적인 사고를 가진 친구들이다. 그렇다 보니 대게 좋은 점수와 좋은 논문을 작성해서 좋은 직장에 얼른 취업하고 싶다는 대략적인 사고방식은 비슷하다.


B그룹


그리고 아침 일찍 출근하는 B그룹은 주로 유럽 친구들이다. 핀란드인이나 동유럽 국가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대략 3~4시쯤 되면 보통 다들 퇴근한다. 대화를 해보면 참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 연구실에서 석사나 박사를 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학업과 여가시간의 균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더 좋은 논문의 결과나 좋은 성적보다는 그냥 자신의 연구를 자신의 리듬에 맞춰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C그룹


C 그룹은 중동국가 그리고 북부 아프리카 출신들이다. 대게, 점심 즈음 출근하여 저녁 정도까지 일을 하고 퇴근한다. 이 그룹의 친구들은 이슬람교도의 비율이 높은 편이고, 기후적으로 따듯한 곳 출신이다.


더 좋은 대학, 직장이나 연구에 대한 갈망은 A그룹과 비슷하다. 그러나 특유의 여유로움이 있다. 종교가 인생에서 높은 순위인 경우가 많은 편이고, 휴식에 굉장히 큰 가치를 두는 것 같다.


조화


이렇게 다양한 그룹의 학생들과 교수들이 함께 모여 연구를 하고 있다.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존중이 필수적이다. 그렇다 보니 일하는 분위기와 시간 역시 굉장히 자유롭게 형성된 것이 아닌가 싶다.


다들 자신의 가치관에 맞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다양한 문화에서 온 사람들이 있지만, 여전히 핀란드라는 국가에 감사한 것은 언제나 개인의 다름을 존중하는 분위기이다.


누군가에게는 일을 많이 해서 성과를 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특정 시간에 기도를 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일과 여가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모두를 아우르기 위해서는 참 성숙한 사회가 필요하고, 내가 경험하고 있는 핀란드는 그 성숙한 사회를 잘 만들어 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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