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학기 후기
MIT박사과정 첫 학기가 끝났다. MIT에서 박사과정을 하는 것을 막연하게 꿈꾸던 것이 지난 12년, 미국 유학을 구체적으로 준비를 했던 것이 지난 5년이다. 한국 대학생분들과 직장인 분들을 만나면 요즘 점점 더 미국 유학에 관심을 가지시는 분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한 학기가 끝난 시점에서 그토록 꿈꾸던 미국유학, MIT 박사과정을 선택하는 것이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는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의외라고 느꼈던 단점부터 시작해 보자.
1. MIT에 들어갔다고 행복이 보장되진 않는다. 사실 당연하다. 인생은 무언가 하나를 성취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꽃밭 같은 세상이 열리지 않는다. 그저 막연하게 내가 오랜 시간 동안 꿈꿔왔을 뿐이다. 나는 지금까지 인생에 힘든 일이 있을 때, MIT에서 박사과정을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어왔다. 돌아보면 어리석은 믿음이지만,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연구가 힘들면, 나는 연구하기 좋은 환경이 아닌 학교에서 연구를 하기 때문에 연구가 힘들고 내 삶이 괴롭다고 믿었다. 상사가 내게 소리를 지르거나, 내 지금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기회들은 무엇이 있을까 탐색할 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MIT로 상징되는 "그곳"에 가면 내가 가진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아쉽게도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연구는 원래 힘든 것이며, MIT에 있어도 인성이 좋지 않은 상사는 있는 법이고, 이곳보다 더 좋은 기회는 언제나 존재한다.
2. 비교를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1번과 이어지는 측면이 있다. MIT에서 박사과정을 하면 분명히 내게 좋은 기회들이 주어지고, 내가 기대할 수 있는 연봉과 명예가 그전보다 높다. 하나의 문제점은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돈으로 따지면 정말 끝이 없다. 컨설팅을 다니는 친구는 연봉 3~4억을 번다길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데 그 친구는 자기 친구가 OpenAI를 다니며 연봉 14억을 받는다며 부러워한다. 화룡점정으로 OpenAI를 다니는 친구는 자기 친구가 창업을 해서 Exit를 최근해 해서 300억을 받았다며 부러워한다. 이건 뭐 끝이 없다. 나의 능력도 마찬가지다. MIT에 오기 전까지 나는 코딩을 제법 잘하고, 의료데이터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두 가지 독립적인 장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오니 나보다 코딩을 잘하는 친구들은 연병장 두 바퀴고, 의료데이터를 잘 이해하는 것으로는 MD(Medical Doctor), 의사들이 있다. 심지어 나보다 코드도 월등히 잘 짜는 의사도 만났다. 나의 장점은 대체 무엇인가.
3. 나는 이방인이다. 미국에서 이제 거의 1년 반을 살아가지만, 대학원생으로서 미국에서의 삶을 장기적으로 생각한 것은 처음이다. 미국에서 미래를 꾸리려 하니 내가 이방인이라는 것이 끊임없이 상기된다. 내가 당연하게 잘 알고 있던 거었다고 생각한 사회의 규범들을 하나씩 다시 배워야 한다. 팁은 언제 얼마를 주어야 하는지, 신용카드는 어떤 순서로 만들어야 하는지, 처음 보는 사람과 어떤 주제로 대화를 하면 좋을지 다 배워야 한다. 영어는 제법 잘하는 줄 알았더니 미국 친구들과 파티를 하면 농담을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나만 빼고 다 같이 웃을 때의 그 공허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또 미국에 주는 대체 왜 이렇게 많은지 공부를 해도 끝이 없다. 친구의 고향을 간신히 기억해 켄터키에 대해 대화를 열었더니 그 친구의 고향은 알고 보니 켄서 스였다.
신용카드 관련해 에피소드가 있었다. 미국에 온 지 몇 달 지나 SSN(Social Security Number, 우리나라의 주민등록번호와 비슷한 시스템)이 겨우 나왔다. 다들 미국에선 신용카드가 필수라고 하니, SSN이 나오고 바로 신용카드를 신청했다. 어느 신용카드를 신청해야 하는지 몰라 학생들에게 좋다는 체이스(Chase)라는 곳에 온라인으로 신청했다. 온라인으로 신청하니 신청하자마자 온라인에서 거절당했다. 무언가 온라인에서 오류가 있나 싶어 바로 다시 신청했지만 연속으로 거절당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에 가서 카드를 다시 신청했더니 또다시 거절당했다. 신용카드 신청을 3 연속 거절 당한 것이다. 듣자 하니 신용카드를 신청하려면 최소한 은행계좌를 만들고, 그 계좌에 돈을 어느 정도 넣은 이후에 신청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하고, 한번 거절을 당하면 시간을 가지고 좀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아니면 그 거절에 대해 Reconsideration, 재고려를 신청하거나. 그런 걸 몰랐으니 3번 연속 거절을 당했다. 심지어 신용카드 거절은 기록에 남아 추후에 다시 신용카드를 신청할 때 기록에 남는단다. 골머리가 아프다. 이 문제 처리하느라 몇 주가 걸렸다.
그럼 장점은 없을까. 당연하게도 장점도 많다.
1. 문제의 원인을 안에서부터 찾게 된다. 지금까지는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가 MIT라는 환경에 가지 못해서 생겼다고 여겼다. 내부가 아닌 외부의 환경에서 그 이유를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핑계가 통하지 않는다. 연구가 힘들다는 문제를 봉착한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연구를 하는 MIT에서 연구가 힘들면 이건 연구의 본질 그 자체다. 이곳보다 더 좋은 연구 환경은 세상에 없다. 누굴 탓하겠는가. 연구라는 것은 본질이 힘든 것이다. 그렇게 힘든 것을 하니까 대학원 입시를 할 때 이걸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만 뽑는 것이고, 이렇게 힘든 것을 하니까 그만큼 사회에서 보상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에도 인성 안 좋은 교수와 상사는 많다. 그런 곳에서 굳이 성과를 위해 견디지 말고 다른 곳으로 옮기면 되는 것이다. 연구가 힘들 때면 여기서도 다른 길은 없나 막연하게 찾아본다. 만약 다른 길이 더 좋다고 생각이 되면 과감하게 그 길을 찾으면 되고, 아니라면 힘든 것을 이겨내고 이 길을 가면 된다. 어차피 무엇을 선택하든 힘든 점은 있기 마련이다. 이제는 문제가 생겼을 때 밖을 바꾸기보다는 내가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나의 관점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그만큼 외부의 상황이 바뀌지 않아도 내 관점을 바꾸면 어떤 상황에서도 잘 적응하고 살아나갈 수 있다는 점을 배웠다.
2. 나의 가능성의 상방이 무한하다. 비교를 하면 끝이 없는 것을 다른 관점으로 생각한 것이다. 내가 비교할 수 있는 친구들의 상방이 열려있다. 그 말은 내가 노력하고, 좋은 네트워크를 만들고, 좋은 운이 따라준다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나의 미래에 한계가 없다는 말이다. 커리어적으로 성공한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며 나를 자책하는 것으로 접근한다면 괴롭다. 하지만 주변에 너무도 많은 성공한 친구들에게 그들이 어떤 점에서 성공할 수 있었는지 배우고, 내가 더 잘되기 위해서 노력하면 그만큼 성장할 수 있다. 내 미래를 상상할 때 제한이 없다. 이 얼마나 달콤한 상상이란 말인가. 다들 더 성장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니 나도 그렇게 된다. 코딩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코드를 짜보고 연습을 하면 되고, 의학지식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병원을 가서 실습을 할 수도 있고, 수업을 들어도 된다. 부족하면 노력하면 된다. 성장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배운다.
3. 새로운 관점을 또다시 배운다. 이방인이니까 모르는 게 당연하고, 이방인이니까 또 새로운 관점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한국에서 20여 년을 살다가 핀란드에 처음 교환학생을 갔을 때 내가 알던 모든 규범들이 다 무너졌다. 세상에 하나의 유일한 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문제를 풀 수 있는 해가 언제나 여러 개 있다는 것을 배웠다. 미국에 오니 또 다른 맥락을 배우는 것이다. MIT와 하버드가 있는 미국의 도시 캠브리지의 아주 큰 장점 중 하나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이방인이라는 것이다. 대학원생 중의 절반은 미국인이 아니고, 절반의 미국인조차도 거의 대부분 캠브리지 출신이 아니다. 다 이방인이라서 이방인이 저지르는 실수에 관대하다. 이방인이 많으니 다양성이 보장된다. 세상은 넓고 문화는 다양하다는 것을 책에서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다. 다르게 생긴 사람들의 색다른 문화가 보이고, 평생 들어 보지 못한 새로운 언어가 들린다. 시야가 넓어진다.
4. 후회가 없다. 내가 느끼는 가장 큰 장점이다. 할까 말까 고민할 때는 하라고 하지 않는가. 해도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고 안 해도 분명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었을 거었다. 인생에 완벽한 선택지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안 해봤으면 평생 아쉬움이 남았을 것이다. 평생 후회하고 살았을 것 같다. 이건 꼭 유학이라기보다는 내가 원하던 것을 노력해서 이뤄보았다는 것에서 오는 감정이다. 도전하자. 하고 싶은 건 도전해 보고, 안되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자. 다시 한번 더 도전해 보거나, 인정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것이다. 도전해보지도 않고 막연하게 꿈꾸기만 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일단 해보자.
당연하지만 미국 유학도 선택이고, 모든 선택에는 언제나 장단점이 있다. 완벽하게 모든 측면에서 더 나은 선택지란 존재하지 않는다. 관점의 차이고, 내가 더 초점을 맞추고 싶은 곳에 초점을 맞춰서 나에게 잘 맞는 선택지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