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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혼혈아기 육아 12주 차 아빠의 글쓰기

by 안건

벌써 아기가 태어난 지 세 달이 지났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너무 행복하다. 이전 글에서도 몇 번 이야기한 것 같지만, 이렇게 행복한 감정을 이 전까지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아기가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이런 행복을 지속하고 싶고, 앞으로 어떻게 아이에게 좋은 삶을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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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려고 한다. 다만 나의 생각을 점검하고 글로 정리하는 시간을 만들기가 어렵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난이도가 훨씬 높다. 글이란 보통 쓰면 쓸수록 쓰고 싶은 내용이 많아지는 것 같다. 오랜 시간 동안 앉아서 나의 생각에 침잠하여 그것을 언어라는 모양으로 만들어 내는 것. 내가 참 좋아하는 행위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의식적인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하루 종일 아이와 놀아주고 아이를 재우고 났을 때의 정신력으로 이루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고, 지친 정신으로 흰색바탕에 깜빡이는 커서를 보는 일은 어떨 때는 제법 괴로운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대체 왜 고통을 사서 받으려 하는 것일까. 2018년 하버드 대학교 연구진이 발표한 사이언스 논문에 나온 개념 중 '빈도에 의한 개념 변화(prevalence-induced concept change)'이라는 것이 있다. 복잡한 내용이지만 결국 쉽게 정리하면 사람은 문제가 없어지면 어떻게 서든 문제를 찾기 마련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즉, 아무런 문제 없이 모든 상황이 무탈한 상황을 살기란 심리학적으로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어떤 자극의 빈도가 감소할 때 그것의 개념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현대 사회가 분명히 물질적으로 훨씬 더 좋아졌고 아동사망률의 경우는 혁신적으로 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고 믿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즉, 어느 정도의 고통은 기술의 진보와 상관없이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어떻게 고통과 함께해야 하는가.


잘 산다는 건 고통을 피하는 게 아니라, 올바른 이유로 고통받는 걸 의미한다. <희망 버리기 기술> - 마크맨슨

고통을 피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어떤 것에서든 고통을 찾기 마련일 것이다. 어차피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대신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며 고통을 받기로 선택을 하는 것이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다. 글쓰기는 분명히 어떤 의미에서 고통스러운 일이다. 다만 내가 정말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니 글쓰기를 하면서 고통을 받도록 선택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글을 쓰며 고통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나의 허리통증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고 싶다. 2020년 갑자기 심각한 허리통증으로 꽤 오랫동안 고생했다. 그전까지 항상 앉아있는 삶을 살았지만 이런 강한 강도의 허리통증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고생하다 정형외과 의사에게 진단받은 것은 나의 경우 오히려 허리통증을 방지하기 위해서 꽤 강한 강도의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허리디스크를 판정을 받은 경우라면 다를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꾸준하게 근육에 적당한 과부하를 가하며 내가 선택적으로 고통을 받으면, 오히려 나는 더 건강해진다. 하지만 운동을 하지 않고 오랜 시간 동안 시간이 지나면 나의 허리는 굉장히 불쾌한 방식으로 나에게 고통을 선사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꽤 오랜 시간 동안 운동을 꾸준히 하지 못했다. 이제는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분명히 존재한다. 내가 조금 더 노력하면 잠깐의 시간 동안 짬을 내서 운동을 할 수 있다. 피곤할수록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해야 한다. 내가 의도적으로 가하는 고통이 있어야, 내가 원치 않는 고통을 피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때에, 나 좋을 대로 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자유인의 정의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

내가 사랑하는 작가 하루키는 자유인을 위와 같이 정의한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때에, 나 좋을 때로 하면서 고통을 선택적으로 받는 것"

을 좋은 삶을 사는 레시피라고 말하겠다. 정말로 가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어느 정도는 과정에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신 그 고통을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와 연구를 통해서, 그리고 달리기와 하체 단련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때에 좋아하는 방식으로 고통을 받겠다. 그것이 내가 아이가 잠이 든 사이 얼른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글을 쓰고는 달리기를 하러 나가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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