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햇수로 13년째 귀염둥이 갈색 강아지 나루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루를 보면 사슴이나 노루 같이 생겼다면서 견종이 뭐냐고 물어볼 때가 많아요. 나루는 생김새만 보아서는 미니어처 핀셔, 줄여서 미니핀이라고 부르는 견종의 강아지 같긴 하지만 개 버릇 다 망치는 오냐오냐 큰누나 사랑을 많이 먹어서인지 사실은 6.8kg의 빅핀입니다.
나루도 여느 강아지들처럼 산책을 참 좋아합니다. 바쁠 때야 짧게 집 주변을 돌지만 틈틈이 시간을 만들어서 나루가 좋아하는 공원도 가고 뒷산도 가요. "나루야, 내일 아침에 나루 시간 돼? 시간 되면 누나하고 내일 호수공원 갈까?" 하면 나루가 좋아합니다. 그럼 그래 누나랑 내일 가자고 꼬리 걸고 약속하고 자요. 노루 꼬리처럼 짧은 나루 꼬리에 제 새끼손가락을 거는 거지만 사실은 피곤에 찌들어 밍기적대고 싶을 내일 아침의 저에게 하는 약속이지요.
진한 갈색이었던 털이 어느덧 카푸치노 거품 색깔처럼 많이 옅어지고 군데군데 흰 털도 많이 생긴 우리 강아지이지만 호수공원에 가면 엄청나게 신나게 여기저기 다닙니다. 귀여운 콧구멍이 쉴새없이 벌름거리고, 아껴 쓰라는(!) 누나의 당부는 들리지 않는 듯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죠.(물론 저는 나루가 준 선물들을 잘 챙겨요)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하고 오면 그 날은 노곤한지 낮잠도 깊이 자는 것 같아요.
그러다가 오후 네다섯 시쯤 되면 나루는 다시 나가고 싶다는 눈빛을 보냅니다. 데리고 나가는 건 뭐 어렵지 않지만 문제는... 분명 자기가 나가자고 했으면서 조금 걷다가 이제 못 걷겠으니 자길 안고 가라고 합니다. 기억나시죠? 우리 강아지는 6.8kg의 빅핀이잖아요.. 개가 네 발로 걸으면서 냄새를 맡는 것이 산책인 줄 알았는데 나루가 요즘 개발한 '협동산책' 이라는 것은 큰누나 다리에 앞발을 올리면 큰누나가 "오구 우리 강아지 이제 다리가 아파요? 그럼 누나가 안아줘야지요~" 하면서 안아서 걸어다녀 주고, 나루는 안긴 채로 조금 더 윗 공기를 벌름벌름 맡는 것이더라구요. 나루도 점점 노령견이 되어 그러는 걸까요? 음.. 사실 나루는 다른 가족들에게는 협동산책을 시도조차 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졸지에 7키로 강아지를 안고 동네를 하염없이 걸어다니는 사람이 되어도, 팔과 어깨가 뻐근하게 아파도 누울 자리를 귀신같이 알고 발을 쭈욱 뻗는 이 강아지가 그저 기특할 뿐입니다.
사실 저는 살면서 대부분의 일은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34년 인생 내내 진행 중인 다이어트도, 치과에서 꼭 하라고 강조한 치간칫솔질도, 사람동생에게 주는 생일 선물 고르기도, 매일 쓰리라 다짐했던 일기쓰기도 그렇네요. 뭐 일부러 대충 했다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모든 것에 다 백 프로 불태울 수는 없는 거라며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으로 마무리지은 때가 많았지요. 강아지를 대하는 일도 그럴까요?
아침에 호수공원 돌았으니까 오늘 산책은 이만하면 됐어.
간식 성분이 좋은 거라니까 이만하면 됐어.
아까도 많이 안아 줬잖아 오늘은 이만하면 됐어.
그런데 저는 나루를 생각할 때면 '이만하면 된 것'이 없습니다.
호수공원을 돌았지만 또 나가고 싶어하면 (심지어 협동산책인 줄 알면서도) 하네스를 입히고, 개토피(강아지 아토피)가 있는 우리 강아지를 위해서 더 순한 간식은 없는지 헤매고, 핸드폰을 보기보다는 나루를 한번 더 쓰다듬고 안아주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만하면 된 것이 아니라, 재고 따지는 것 없이 해 주고도 더 해 주고 싶어서 먼저 손 내미는 것이 사랑이구나.
우리 강아지가 알려 주고 넓혀 준 저의 사랑은 저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 같다고 생각해요. 아직 자녀가 없는 제가 나루를 통해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기도 하구요. 지금도 제 옆구리에 기대 누워서 제 옷에 털을 잔뜩 묻히고 있는 강아지를 가만히 쓰다듬어 봅니다.
따뜻하고, 행복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