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바쁜 하루를 보냈다. 6교시 동안 꼬박 수업을 했고, 점심 시간에는 급식을 받던 아이가 실수로 식판을 엎어서 꽃게탕이 바닥에 나뒹구는 사건이 있었으며, 아이들이 하교하고 난 다음에는 쌓여 있는 쪽지를 보며 밀린 업무를 하나하나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지났다. 운동 시간 늦겠네, 하고 부랴부랴 나가려는데 작년에 가르쳤던 아이가 보낸 톡이 도착했다.
"선생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3학년이면 원래도 귀여울 나이이긴 하지만 작년에 만난 아이들은 유난히 순하고 귀여워서 마치 내 자식들 같았다. 내가 예전 학교에 계속 있었다면 아이들은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틈틈이 우리 교실에 들러서 간식도 얻어 가고 폭 안기기도 할 것이다. 나도 이 아이들이 크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응원해 주고 싶었는데, 발령이 나서 학교를 옮기는 바람에 미안하게 됐다. 자랑할 일이 있거나 속상한 일이 있거나 그냥 간식이 좀 먹고 싶거나 하면 찾아갈 '작년 선생님'은 넓고 큰 학교에서 아이들의 비빌 구석이 되어주는 법인데..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떠나기 전 내 휴대폰 번호를 알려 주었고, 정이 많은 아이들은 종종 연락을 해 왔다. 그렇게 오늘 온 톡도 지친 마음에 반가움이 가득해지는 아이의 연락이었다.
"선생님은 3월에 바빴지~ 새로 만난 언니오빠들하고 적응하느냐구.."
그러자 우리 어린이는 나의 말에 대한 리액션은 가볍게 생략하고 대뜸 일상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아~ 저는 오늘 반티 사이즈 정했어요. 근데 ㅇㅇ이는 XL에요 우리 선생님은 L인데"
작년에도 같은 반, 올해도 같은 반인 퉁퉁이 남학생의 사이즈가 냅다 공개되었다. 순식간에 퉁퉁이와 후배 선생님의 티셔츠 사이즈를 알게 되어버렸다. 어린이와의 대화는 이런 맛이다. 깜빡이도 없이 갑자기 훅 들어온다. 먹는 것 좋아하고 넉살도 좋았던, '우리 엄마는 제가 뱃살이 많아서 안으면 기분 좋대요 선생님도 한번 안아보세요' 하던 우리 퉁퉁이의 푹신한 뱃살을 한번 떠올린 뒤 말을 돌렸다.
"그렇구나~ ㅇㅇ이는 나중에 키 많이 클거야. 그나저나 오늘 단원평가 봤는데 시험지에 너랑 작년 우리 반 친구들 이름 넣어서 문제 냈어. 문제 내면서 안그래도 네 생각했는데 톡 오니까 신기하네."
그러자 문제를 읽어본 우리 어린이가 감동이라면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근데 왜 잘못 계산한 사람이 ㅁㅁ이에요? ㅁㅁ이는 공부 잘하는데.. 특히 수학 잘하잖아요."
차마 바쁘고 바쁜 선생님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이름을 배치한 거지 별 의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어서 대답했다.
"진짜로 수학 어려워하는 친구 이름으로 하면.. 시험지에서까지 잘 못하면 속상하잖아~"
그러자 우리 어린이는 아 그런 뜻이! 라고 하며 선생님의 사려깊음에 크게 감탄했다. 그리고 다음 번에 내가 학교에 놀러 가면 만나기로 약속하며 대화가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나의 순발력과 임기응변에 스스로 감탄하면서 생각해보니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시험지에서 틀린 답을 말하는 친구 이름은 공부 잘 하는 아이 이름으로 해야지. 오늘도 얼렁뚱땅 감동 둘러대기처럼 보이지만 이게 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기본으로 깔려 있으니까 되는 거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그럼 이제 얼른 자고 내일 또 사랑의 임기응변 발휘하러 가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