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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 루시 Sep 11. 2023

엄마는 우리 키울 때 언제 제일 힘들었어?

어느 날, 딸아이가 물었다. 요즘 딸내미는 육아에 관해 관심이 많아졌다. 한 살배기 사촌동생을 인스타로 염탐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그날도 애기들이 걷는 게 어떻니, 기어 다니는 게 어떻니 하다가 본인들의 흑역사가 궁금해졌나 보다.


"엄마, 엄마는 우리 키울 때 언제가 제일 힘들었어? 지금이야?"


식탁을 치우다 말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언제가 제일 힘들었을까?


외벌이일 때 애들 태권도학원, 피아노학원을 못 보내줄 때였을까?
큰아들이 재수한다고 한 달에 200씩 들어가서 가세가 기울어질 때가 제일 힘들었을까?
고3 딸내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매일 눈치 보는 지금일까?


분명한 건 '지금은 아니다.'라는 거다.

돈이 많이 들긴 하지만, 힘들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좀 지난 듯하다.

제일 힘들었을 땐 지금으로부터 한 12년 전 한 여름. 네 아이의 샤워를 나 혼자 감당했을 때였던 것 같다.

아이들이 8살, 6살, 4살, 7개월 때였고 한 여름이어서 샤워를 매일매일 해야 할 때였다. 남편은 한창 회사일이 바빠서 2박 3일 동안 회사에 있었다. 그땐 독박육아란 단어가 생기기 전이었는데 요즘은 그 단어를 절실히 알것같다. 그때가 바로 한창 독박육아할 때였다.


큰애는 그나마 좀 씻길만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큰아이여서 그런가 크게 까탈스럽진 않았다.

문제는 6살짜리 딸내미였다. 한국인은 템빨이라고 육아도 아이템 싸움이지만 그때만 해도 샤워캡이란 게 없었다. 나는 매일 무거운 아이를 안고 머리를 감겨야 했다.


라떼는 말이야... 이런 것도 없이 말이야


 어른처럼 허리 좀 숙여서 머리를 감으면 편할 텐데. 눈에 물이 들어가서 무섭고, 코로 들어가서 매워 죽겠다며 징징거렸다. 엄마가 지를 죽이기라도 하나. 허리 좀 숙이라고 할라치면 난리가 나는 것이었다.


셋째까지 씻기고 나면 힘이 빠져서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하는 막둥이는 좀체 엄두가 안 나는 것이었다. 조금 멍 때리다가 내가 이 미션들을 해내야지만 육퇴를 할 수 있다는 사명감을 쥐어짰다. 마지막 힘을 내어 커다란 아기 욕조에 물을 받고 막둥이를 씻겼다. 지금 생각해도 30살의 어린 엄마였으니 그게 가능했던 것 같다.


그때만 생각하면 조금은 울컥해진다. 부모님이나 남편 도움 없이 독박육아를 해야만 했던 내 신세가 처량하기도 하고 씩씩하게 잘 키워낸 게 기특해서인 것 같기도 하고, 복잡 미묘하지만 서러움이 조금은 더한 것 같다.


아직도 육아의 길이 많이 남아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퇴근 후 힘들었던 지난 얘기를 술안주 삼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감개무량하다. 그 녀석들이 이젠 다 커서 스스로 샤워를 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한 줄 요약

네 녀석을 한꺼번에 씻기는 게 가장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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