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는 미국 갔어
큰아들의 길고 길었던 재수 기간이 끝났다. 그렇게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우리 집에서 재수는 없다고 부르짖었건만 재수를 하고 싶다는 아들 앞에서 우리의 주장은 별 힘이 없었다. 어쩌겠는가. 자식이 하고 싶다는데 빚이라도 내서 해줘야 부모의 도리이고 책임인걸.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나 몰라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번 더 속아주겠다는 마음으로 아들의 뒷바라지를 했다.
그리고 12월 9일, 드디어 아들의 성적표를 받아보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점수가 더 낮았다. 작년에 비해서도 그다지 나아진 상황은 아니었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과정이 잘못된 거야
결과 만능주의로 들리지도 모르겠지만 살아보니 결과를 통해 과정을 추측하는 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과정이 틀린 게 아니라 잘못되었다 라는 것이다. 결과를 분석하여 과정 방법을 수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재수하는 동안에도 몇 번이고 이 얘기를 들어왔던 아들의 표정은 또 굳어졌다. 그동안 본인의 수고로움과 고생했던 시간들을 부정당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비참함과 비통함을 느꼈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것도 세상에서 (아마도) 가장 사랑하는 엄마한테서 말이다
그런 모진 말을 하는 나의 마음도 좋지 않았다. 그 재수 학원비를 버느라 직장에서 버텨야만 했던 그 시간들. 마이너스 통장까지 개설해가며 인내했던, 그래도 엄마라고 그 상황에서 어려움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아들을 응원하던 시간들. 자존감이 떨어질까 봐 싫은 소리 맘껏 하지 못했던 나날들. 그 시간들이 무의미해지는 것 같았다. 나도 실망스럽고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원래 그다음 날 우리는 등산을 가기로 했었다. 하지만 아들은 가지 않았다. 그럴 기분이 아니라고 했다.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다. 나 또한 실망으로 가득 차있던 터라 아들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남편과 둘이서 산을 오르며 아들 흉을 엄청 봤다. 성에 차지 않던 아들의 태도들이 자꾸 떠올랐다. 저래 가지고 대학 가겠나 하는 염려들이 현실로 다가와서 무척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부부가 좋은 점이 이렇게 전우애로 더 끈끈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전쟁 같은 일들을 끊임없이 겪어내며 한 팀이 될 수 있었던 건 이 고난과 역경들을 겪어냈다는 것, 그래도 서로 의지하며 버티고 살아내는 것, 그것이 부부의 전우애인 것 같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다시 또 원래 시간과 자리들로 되돌아갔다. 언제고 시무룩해져 있을 수도 없고 지나간 것들을 부여잡고만 있을 수는 없다. 무거운 공기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다. 우리 가족의 좋은 점은 회복탄력성이 좋다는 것이다. 웬만하면 부정적인 기운에 끌려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하루 이틀 동안 상처 주고받았으면 그걸로 끝난 일이다. 어떤 지방대를 가야 할지 고민했고, 다시 웃으면서 우리는 농담을 했고, 중간중간 비난의 화살이 날아가도 아들은 잘 견디는 것 같아 보였다.
나는 참 못난 엄마다. 재수하는 내내 아들에게 늘 이렇게 버텨 주는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너는 최선을 다하는 거라고 말했으면서 결국엔 결과에 연연해버리는 언행불일치의 끝판왕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부모고 사람이고 감정이 있는데. 합리화라고 한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다만 그 상황과 그 시간이 잠식당하지 않고 빨리 빠져나오려고 노력할 뿐이다. 부모도 사람이다. 자식에게서도 상처받는다. 다만 부모이기 때문에 견디는 것이고 내색하지 않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