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닿는 만큼 어른이 되는 순간들
우리는 언제부터 어른이 되는 걸까? 작가는 온전한 ‘자립’이 시작되는 순간을 어른의 탄생이라고 정의했다. 서울에 내 방 하나를 갖게 된 시점, 내 손으로 모든 것을 계약하고 오로지 내 힘만으로 꾸려나가는 삶의 형태를 갖게 되는 것. 비좁은 고시원과 하숙방에서 월세 원룸으로 옮기고, 동생과 살기 위해 조금 더 넓은 전셋집으로 옮겨가는 모습이 어른으로서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과 닮아있는 듯하다.
서울에 내 방 하나를 갖게 된 5년 전을 기억한다. 갑작스러운 서울 발령에 친척 집에 신세를 지며 빠르게 집을 구해야 했다. 홀로 열심히 알아보다 괜찮은 신축 원룸을 발견했고 주변에 아무것도 생기지 않는다는 부동산 중개인의 말을 믿고 덜컥 계약금을 넣었다. 그러나 1년도 채 되지 않아 내 방 유일한 창문과 팔 하나 간격으로 다른 원룸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공사 소리로 돌발성 난청이 재발했고 결국 햇빛도 완전히 가려져 6층이 순식간에 반지하가 되어버렸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환경의 변화가 주는 좌절감이란 어떤 것인지 또 한 번 쓰라리게 느낄 수 있었다. 마음 졸이며 느꼈던 불안이 확신이 되었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어른이 되면 나의 선택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 이미 벌어진 일에 누구를 탓해봤자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친구들에게 중개인을 탓해보는 작은 볼멘소리 정도 해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방에 햇빛 한 줄기가 갑자기 다시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막막함은 여전히 그대로다. 당시 전쟁 같은 회사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도 나의 답답함과 부정적 에너지는 환기가 되지 못했다. 마치 집 안 어둠 속에 날이 갈수록 부정의 기운이 꽁꽁 쌓여가는 듯했다.
다행히 그 억울한 고통도 꽤 오래가진 못했다. 1년이 채 되지 않아 않아 나에게 작가와 같은 이유로 거처를 옮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오빠와 같이 살기 위한 결정이었고, 답답한 환경에서 탈출하고 싶은 열망이 추진력을 더해주었다. 온전히 내 돈으로 마련한 집은 아니었지만 대출의 힘을 빌려서라도 점점 더 확장되어가는 범위가 꽤나 뿌듯하고 만족스러웠다
햇빛이 들어오는,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니 숨통이 트였다. 회사까지 40분이 더 걸렸고. 시끄러운 차도 앞이었지만 적응 후에는 이전의 환경과 비교할 수 없이 좋은 곳이라는 걸 깨닫고 그저 감사해했다. 특히 가끔 올라온 엄마가 아들 딸이 조금 더 넓어진 환경 속에 같이 사는 걸 보며 안정감을 느낄 때, 본인 스스로도 편안해하고 행복해할 때 결정과 변화에 더더욱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가 어른으로서 성장하는 그대로 환경도 함께 변화하니, 삶을 만들어가는 묘미가 있어 괜스레 내가 뿌듯했다. 시작점이 비슷했으니 내 삶도 그렇게 흘러갔으면 하고 마음을 투영하며 읽기도 했다.
수많은 청년들, 서울에 내 방 하나로 자립을 시작한 많은 또래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내 발로 오롯이 서는 그 모습이 마냥 위태위태해 보일 것 같지만, 막상 서보면 생각보다 균형과 위치를 잘 잡는 스스로를 보며 놀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