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옥수수
엄마는 늘 좋아하는 것을 잘 말하지 않는다. 일이 늘 힘들다고 하시지만 일 외의 일을 즐기는 것을 본 일이 별로 없다. 드라마도, 영화도 볼 시간이 어딨냐며 타박이다. 나는 간혹 내게 누군가가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물어봤을 때의 당혹감은 엄마를 닮은 게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엄마가 바쁘고 힘들어서 좋아하는 게 없는 게 아닐까 했지만 요새는 엄마의 좋고 싫음이 그렇게 뚜렷하지 않은 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 좋은 일이 확고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좋고 부럽다고 생각한다. 고집이 강한 것과는 조금 다르다. 우리 엄마의 고집은 엄청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이 확고하고 중요한 사람들만 있다면 다들 피곤하지 않을까. 때로는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일이 쉽게 내가 좋아하는 일로 변할 때면 이것도 꽤 복 받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억울해하면서 맞춰주는 거랑은 역시 궤가 다르니까.
그럼에도 내가 아주 잘 아는 엄마의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찐 옥수수다. 길거리 노점에서 파는 찐 옥수수. 엄마는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자라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단신 유학을 왔다고 한다. 워낙 어릴 때부터 가족들 품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너무 외롭고 강하게 자라신 것 같기도 하지만, 그때는 당연한 일이라며 힘들었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세상이 떠나가라 서럽게 우셨던 걸 빼면 말이다. 그런 엄마에게 찐 옥수수란 외할머니의 따뜻한 손길이고, 고향 시골집 아랫목의 온돌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사를 하고 출퇴근을 하며 지하철을 탄다. 요새는 찐 옥수수를 파는 집이 많지 않아서, 세 정거장이나 일찍 내려야 옥수수를 파는 가게가 있다. 옥수수를 파는 분들은 다들 연세가 지긋하시다. 요새 유행하는 간식들, 이를테면 닭꼬치나 와플이나.. 치즈가 들어간 핫도그.. 전통의 떡볶이. 닭강정.. 이런 걸 파는 분들보다 대체로 나이를 많이 드셨다. 아무래도 찐 옥수수라는 게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인 간식은 아닐 터였다.
엄마는 사카린이나 설탕물로 간이 된 찐 옥수수를 엄청 좋아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역 근처의 찐 옥수수를 좋아하신다. 찰옥수수를 사서 집에서 쪄도 그 조미료 맛이 안 난다며. 하지만 본인 지갑을 열어가며 옥수수를 사시는 일은 거의 없다. 두 개, 세 개 들이 에 삼천 원이라는 가격이 못내 비싸다고 느껴지시는 탓이다. 삼천 원이 요새야 워낙 별것 아닌 돈이라지만, 엄마에게 옥수수는 그보다 훨씬 값싸면서도 든든한 간식이었을 테니까.
퇴근길에 찐 옥수수를 산다.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는 어째 젊은이가 옥수수를 다 사가냐는 눈빛으로 흘긋거린다. 보기 좋고 맛있는 놈으로 주셨으면 좋겠는데.. 무슨 옥수수가 맛있는지 잘 모르는 나로서는 담아주는 대로 가져갈 수밖에 없다. 지하철 세 정거장을 걸어가려면 꽤 먼 길이다. 옥수수가 식지 않으면 좋겠는데 하며 가방에 넣는다. 방금 꺼낸 뜨끈함이 손바닥을 맴돈다.
우리 엄마는 뭘 사가도 이런 걸 왜 사 오냐며 돈 아끼라고 하지만, 찐 옥수수만큼은 그런 적이 없다. 퇴근길에 옥수수 집이 있다니 이런 행운은 썩 나쁘지 않다. 버스 한 번에 오가던 이전 출퇴근길이 편하긴 했지만, 좀 불편해진 대신 이런 즐거움도 있다니. 그러고 보면 돈을 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어쨌거나, 내가 옥수수를 사다 찌는 재주는 없으니까. 맛있어야 할 텐데. 걱정과는 다르게 발걸음에 살짝 신이 난다. 참 나, 엄마는 맨날 나보고 잔소리만 하는데 왜 신이 난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