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껍데기는 어색하기만 하고
빛은 서쪽 너머로 지는데
걸음걸이를 멈춘다. 음악을 끈다. 하늘을 본다.
언덕을 따라 줄지어 세운 아파트 단지 너머로
노을이 진다.
자동차는 옆을 씽씽 달리고
거대한 다리 가장자리 에는 숨을 멈춘 내가 우두커니 서 있다.
물빛이 묵빛으로, 아무리 쳐다봐도 물길 속은 보이지않고
해져가는 반대편 하늘은 안개로 뿌옇다.
나는 멈춘 줄 알았던 숨을 토해낸다.
슬슬 흐르는 구름따라 걸음을 옮긴다.
매일 걷던 길이 무척 어색하다.
느릿한 발걸음의 발도,
천천히 휘적이는 손도,
마스크 탓에 눈가에 서리는 입김도
꼭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일이 이렇게 어색했나.
나는 마치 3인칭이 된 듯한 기분으로
오른발, 왼손,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왼발, 오른손 하며
길을 걸었다.
집에는 가야 했으므로.
노을녘 좇아 영혼은 훌쩍 떠나갔는지
젖어드는 우울한 마음도 어떤지 알 수 없어지면
나는 그저 열심히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빈 껍데기라도 살아 있어야 했기에.
돌아갈 곳은 있어야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