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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Jun 10. 2023

평가받는 게 두려워 도망쳤다.

독립 출판을 준비하다 갑자기 멈춘 이유



작년, 12월 친구가 먼저 제안했다. 이전 직장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점들을 정리해서 독립출판물을 만들려고 하는데 같이 해볼 생각 있냐고. 대략 내년 상반기 중으로 완성할 계획이고, 서로 응원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려고 한다고 말이다. 나에게 책을 만드는 일은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일이라서 이전까지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스스로 시도해 볼 생각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친구의 제안대로 따라가다 보면 나도 멋진 책을 완성할 수 있지 않을 거란 생각으로 좋다고 대답했다.


올해 1월, 친구는 12주 출판사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12주 동안 독립출판을 함께 준비하는 것이 주된 활동이었다. 나는 이 모임을 통해서 ‘오늘의 영감’이라는 컨셉으로 책을 기획했다. 이전에 올려둔 영감 중에서 내게 큰 인사이트를 주었던 것들만 모아 보고 싶었다.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 것들은 또다시 비슷한 고민이 들 때 나에게 씨앗을 던져줄 것 같았다. 또, 나와 비슷한 시기를 지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현재 살고 있는 ‘일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은 사람들, 가볍게 출퇴근 길에 읽을거리를 찾는 사람들을 타깃으로 정했다. 겉표지는 감 박스 디자인을 생각했다. 레트로한 느낌으로. 에리카 팕님과 우연히 만났다가 얘기를 꺼내니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주셨는데, 영감이 여러 가지이기도 하고, 책으로 많은 영감들을 하나로 묶어놓았다는 점에서 박스라는 컨셉이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표지도 간단하게 시중에서 나오는 감 박스와 유사하게 디자인했다. 이렇게 나름 부드럽게 책 만드는 과정이 진행되는 듯싶었다.


하지만, 인디자인에 옮기는 작업을 하던 중 나에겐 커다란 변수가 찾아왔다. 내 글 별로야, 사람들이 별로라고 할까 봐 두려워. 일명 얼굴 없는 두려움병. 내가 이전에 썼던 글들을 다시 보면서 내가 책을 통해, 화면을 통해 만난 글과 내 글을 비교하게 됐다. 비교하기 시작하니 한도 끝도 없이 정체 모를 불안감은 커져갔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 나서 시간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야 할 텐데, 이 책을 지인들 빼고 누군가 관심 가져줄까, 이 책을 냈는데 마케터라는 내 커리어에 먹칠하는 건 아니겠지. 형태가 없는 불안은 제약 없이 덩치가 부풀어 오른다. 어디가 사실이고, 어디가 거짓인지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당장의 두려움에 미래를 걱정하는 것. 내가 그 당시 할 수 있었고 했던 것은 그것뿐이었다. 결국 불안감으로 시름시름 앓던 나는 지금 상태로는 멀쩡한 책을 낼 수 없을 거 같아 잠시 멈추었다.


그러다 어느 날 소식을 들었다. 리틀 프레스 페어. 독립출판물을 만든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독립 출판을 잠시 멈추겠다고 선언해서인지 갈지 말지 고민됐다. 완성도 못한 내가 여기에 가서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만 얹는 꼴이 될까 봐 망설였다. 하지만 글쓰기 모임을 함께한 지인과 가기로 결심했다. 기발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작품들을 만나고 싶어서기도 하지만 창작자로서 동기부여를 얻고 싶었다. 누군가가 내 글을 보고 별로야라고 했을 때의 두려움보다 이걸 만들었을 때 얻는 기쁨이 크다는 걸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아니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역시나 이곳에서 만난 창작자분들의 에너지는 두려움이 컸던 내게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었다. 100% 완벽한 형태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이 이야기를 책의 형태로 만들었는지, 사람들이 이것을 통해서 무엇을 보았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창작자의 생각만 명확하다면 그것을 응원하는 단 한 사람이상은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고민 없이 내 책장에 들이기로 결정한 나처럼 말이다.


나는 왜 얼굴 없는 사람들로 인해 만들어질 평판을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었을까. 얼굴이 없다는 건 실체가 없다는 것인데, 실체가 없다는 건 내 생각과 달리 없을 수도 있고, 극도로 미미할 수도 있다는 얘긴데. 실체 없는 두려움이  나를 잡아먹게 내버려 두었을까. 지금 내 나이에 하는 도전은 실패라는 딱지로 인한 불이익보다 실패라는 경험을 쌓아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고, 비슷한 관심사와 결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공명할 수 있다는 이익이 더 큰데…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일로 지금의 내가 하는 일을 폄훼하지 않는 것. 어렵지만 그럼에도 나를 지키기위해 꼭 필요한 태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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