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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면지언니 Jun 17. 2022

2년 6개월만의 해외공연 투어

어느 공연기획자의 작은 출장기

더운 나라 싱가포르. 다채로운 문화, 언어, 삶이 공존하는 도시 국가. 동남아시아. 섬나라. 말레이시아와 붙어 있는 곳, 아시아이지만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 화려한 호텔들. 쇼핑과 관광.

싱가포르, 싱아푸라.


처음 싱가포르와 연결되었던 것은 2014년 한국에서의 한 국제교류 네트워크 자리였다. 에스플러네이드 극장(Esplanade)의 프로듀서와 이야기를 나누며, 거리예술과 서커스에 대한 공통의 관심사를 발견하고 당시 일하던 축제의 프로그램 중 하나를 골라 소개했더랬다. 이전까지는 주로 해외 아티스트를 초청하는 일을 해왔던 나로써는 국내 작품을 해외에 알릴 수 있을까 실험해보고 싶기도 했고, 비로소 아웃바운드(Outbound, 수출) 영역의 일을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반신반의했던 마음과는 달리 공통의 관심사는 우리를 연결시켜주었고, 2015년과 2016년, 2019년, 그리고 올해 2022년에 한국 작품을 에스플러네이드 극장의 플립사이드 페스티벌(Flipside Festival)에 소개했다.


처음으로 아티스트들과 함께 해외 여정을 떠났던 때는, 나도 아웃바운드로 해외에 작품을 가지고 가는 업무가 처음인터라 기획 매니지먼트에 대한 사례비를 받지 않겠다고 했었다. 어떤 프로세스가 적용되는지, 내가 알고 있는 방식이 맞는지를 실험하고 나를 위한 투자를 하는 것이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이 투어에서의 경험은 해외 축제와 극장에 한국 작품을 알리는 방식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예술 시장에서 새로운 역할을 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2019년에 싱가포르에 갔을 때는 공연단체 체험예술공간 꽃밭의 '거인의 책상(Giant's Table)'과 함께였다. 대극장, 스튜디오, 전시장, 콘서트홀, 블랙박스 극장, 야외 극장으로 구성된 에스플러네이드의 여러 공간 가운데에서 가장 관객과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는 경험을 하게 해주었던 블랙박스 극장 애넥스(Annex)에서 공연을 올렸다. 공연은 싱가포르의 어린이 관객들과 진-한 만남을 가졌고, 환대가 가득했던 에스플러네이드에서의 경험은 투어 멤버들 모두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플립사이드 페스티벌은 어린이, 가족, 그리고 모두를 위한 축제이다. 축제에서 일하고 있는 스태프는 이 축제를 일컬어 '예술의 여러 모습들 중 즐거운 면들을 보여주는 축제(Flipside is all about a fun part of arts)'라고 이야기했는데 이들의 정의가 사랑스럽기도 하고, '예술의 여러 모습들'을 다채로이 보여줄 수 있다는 극장의 힘이 내심 부럽기도 했다. 플립사이드는 정말 그런 축제였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전의 축제와는 또 다르게, 단순한 재미만을 놓고 공연을 구성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과 몸에 대한 탐구, 새로운 시각과 공간에 대한 고민들을 실험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의 공연 '충동(Impulse)'도 그러한 축에 속했고, 관람할 수 있었던 '온리 본즈(Only Bones)'와 '밀푀유(Millefeuilles)' 역시 신체와 일상의 재료들을 세심하고 내밀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며, 새로운 감각들을 찾는 것을 권유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에스플러네이드에는 다양한 장르, 관객을 위한 축제들이 구성되어 있는데 각 축제의 홈페이지에는 어김 없이 '프로듀서의 글'이 실려있다. 어떠한 관점에서 프로그램을 짜고자 했는지, 관객들에게 어떤 경험을 전하고 싶은지를 전하는 프로듀서들의 진솔한 글이 축제를 더욱 신뢰하게 한다. 플립사이드의 프로듀서 Shireen Abdullah는 몸꼴의 '충동'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Momggol’s Impulse (Korea) demonstrates the precarious equilibrium that comes from the tension between opposing forces, reminiscent of our own struggles to find balance or equanimity. Featuring specially constructed steel hemispheres, the performance is an exhilarating alchemy of physics and artistic expression.

몸꼴의 '충동'은 대립하는 힘과 긴장에서 오는 위태로운 평형을 보여주며, 균형이나 평정을 찾기 위한 우리 자신의 투쟁을 연상시킨다. 특별히 제작된 철제 반구를 특징으로 하는 이 공연은 물리학과 예술적 표현의 신나는 연금술이다.


'충동'은 거리와 광장에 적합한 신체극이다. 철제 반구를 사용하는 대규모 공연이기도 하고, 배우들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역동과 미장센이 순식간에 관객을 사로잡곤 한다. 한국에서 초연을 올린 이후로 포르투갈과 대만의 축제에서 공연을 올렸고, 이내 코로나가 찾아와 무산되었지만 영국, 스페인에서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기도 했다. 2019년 12월 마지막으로 해외 공연을 마친 이후, 2년 6개월 간 충동의 반구는 한국에 머물렀다. 철이 다 닳을 때까지 공연을 해보겠다는 의지와는 달리 현실은 녹녹치 않았다.


우리를 초대한 플립사이드 페스티벌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 2년간 싱가포르 자국의 아티스트들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해오다가 비로소 다시금 해외 작품을 초청하기로 결심했을 때만해도, 우리는 실제로 해외투어가 가능할지 가늠할 수 없었다. 여전히 불안정한 방역 지침과 수시로 바뀌는 국경의 규칙들이 모든 것을 불투명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쩌면 다시 연결될 수 있으리라는 상상으로 여러 계획들을 조금씩 구체화해나갔다. 축제에서는 변화하는 출입국 관련 규정들을 2주에 한번 꼴로 업데이트 해주었고, 우리도 이전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차근차근 투어 계획을 검토해야 했다.


다행히도 비로소 국경의 제약들이 조금이나마 완화되어 공연을 올렸다. 도착한 다음 날 공연 세트들을 장소에 반입할 때, 그리고 리허설을 시작했을 때 축제와 극장의 스태프들이 우르르 공연 장소에 몰려들었다. 어떤 마음이었을지 알 것 같았다. 고생하며 고대하던 축제의 공연을 앞둔 이들의 설렘이 거기 있었다. 이들은 제각각 세트의 반입을 돕거나, 과정을 영상으로 스케치하고, 리허설의 장면들을 보면서 어떻게 손을 보탤 수 있을지 바지런히도 움직였다. 새삼 고맙고 벅찼다. 늘 열악한 인력으로 축제를 힘겹게 해내곤 했던 나의 모습을 반추하며, 어쩌면 우리의 공연 하나에 이렇게 많은 이들의 조력이 필요했던 것이 맞는데, 한국에서는 너무 버겁게 일해왔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공연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역할로만 기억해보면, 축제의 프로듀서 2인, 무대감독 1인과 무대 스태프 6인, 아티스트 리아종(컴퍼니 매니저의 역할), 관객 안내를 담당하는 하우스 매니저 1인과 하우스 어셔 4인, 그리고 기술 장비팀의 음향, 조명 담당 4인, 장비 반입을 도왔던 분들과 보안 요원분들까지. 참 많은 이들이 우리를 환대해주었고, 덕분에 더운 날씨도 너끈히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 땀으로 흠뻑 젖은 배우들의 옷을 공연 후 의상실에서 세탁하여 관리해주기도 했다는... 고마워요.


리허설을 마치고, 공연을 올렸다. 애정하는 공연 충동이 해외 관객들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참 행복한 일이었다. 어린이 관객들은 공연과 함께 숨죽이다가 이내 소리도 지르며 자유로이 공연을 즐겼다. 이 공연이 넓은 폭의 관객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이 축제에서 비로소 다시 체감한다.


공연의 움직임이나 장면들이 아슬아슬한 감각을 자아내는터라 사실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전에 기억하던 에스플러네이드는 정돈된, 깔끔한, 규칙이 존재하는 공간이었기에 더 그랬다. 어쩌면 무거운 반구가 깔끔한 보도블럭에 흠집을 낼지도 모르는데, 관객들이 등받이 있는 의자가 아닌 바닥에 털썩 앉아야 하는데, 보통은 에스플러네이드가 공연으로 활용하지 않는 광장에서 공연을 올려야 하는데, 이 모든 것들 어떻게 가능할까 싶었다. 역시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안전 관리, 공간 적합성, 관객 안내 등의 이슈들이 제법 까다로웠다고 했고, 쉽지 않을 것이 분명함에도 해보지 않았던 시도를 하며 공공의 광장을 조금 다른 풍경으로 만들어낸 축제 스태프들, 참 대단하다.


새로운 장소, 도시, 만남은 늘 설렌다. 일상이던 산책도 새로운 도시에서는 더 즐겁고, 이곳의 사람들이 무엇을 즐기는지, 어떤 삶을 사는지 살펴볼 계기라도 생기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의 사람들이 한 데 섞여 사는 싱가포르라는 국가. 이곳에서는 다양성, 포용성을 위한 고민과 실천의 결도 우리의 현장과는 또 달랐다. 최신식의 고층 건물들을 지나치고 마주했던 차이나 타운, 리틀 인디아의 풍경들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도 친구가 데려가 주었던 커먼웰스 디스트릭트에서는 무엇보다도 진한 삶들을 만났다. 퇴근 후 치킨과 국수를 파는 집에서 삼삼오오 모여 있던 동네 주민들, 그날의 장터를 상상하게 하는 흔적이 가득한 어느 상가 단지, 함께 제사도 지내고 결혼식도 올린다는 공동체 광장까지.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참 잘 아는 현지의 친구들 덕에 늘 감각의 호사를 누린다.



시간과 시대, 그리고 여러 층위의 공간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가늠해본다. 이 도시의 다채로운 스펙트럼, 종종 마주하게 되는 양면성도, 보태자면 맛있는 음식과 하루의 휴가까지도 한껏 만끽하고 돌아왔다.


더웠다. 뜨거웠다. 만나니 참 좋았다. 함께 해보고 싶은 것들이 참 많다.

글이 길었는데, 아무튼 잘 다녀왔다는 그런 이야기!


#myunzeetravel  #독립기획자_요즘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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