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면지언니 Jun 06. 2020

지금은 우리가 서로를 만날 때

2019 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 캠프 : 홍콩-마카오-광저우


“와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용감합니다.”


첫 만남의 자리에서 홍콩의 프로듀서가 인사를 건넸다. 물대포가 쏟아지고, 최류가스가 대기를 가득 채우던 그 날에, 우리는 홍콩에 있었다. 폴리텍 대학교에 모여 시위를 하던 학생들에 홍콩 경찰의 무력진압이 시작되던 그 날이었다.


지난 11월 17일부터 24일까지 홍콩, 마카오, 광저우에서 여섯 번째 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 캠프(Asia Producers’ Platform Camp; 이하 ‘APPCamp’)가 열렸다. 올해 APPCamp의 장소가 결정된 것은 이미 1년 전이었다. 중국어권의 도시들이 국경을 넘어 어떠한 교류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 도시들의 변화로부터 우리는 어떠한 관계망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터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19년 3월부터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법에 반대하는 시위가 시작되었다. 사태는 해결될 것 같아 보이지 않았고, 시위는 점점 커져만 갔다. 온라인에서 가끔 보게 되는 홍콩의 모습들은 처참했다. 이에 출발 며칠 전 참가자들에게 홍콩에 갈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자는 투표가 진행되었으나, 다수에 의해 변동 없이 홍콩행이 결정되었다. 나는 계속 홍콩 시위 관련 뉴스를 검색하며 공항으로 향했다.


일요일 정오에 도착한 홍콩의 모습은 이전과는 달리 한산했지만 그래도 평온했다. 골목의 국수 가게는 늘 그렇듯 완탕면과 밀크티를 팔고 있었고 제법 관광객들도 보였다. 어느덧 저녁이 되었고, 우리가 묵던 곳은 시위의 거점인 폴리텍 대학교로 가는 길목이어서 우리는 시위대의 모습을 바로 내려다볼 수 있었다. 낮에 평화로웠던 도로는 금세 검은 옷을 입은 시민들로 가득 찼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차와 물대포차가 빠른 속도로 시민들을 향해 달려왔다. 시위대는 좁은 골목으로 급히 피해 들어갔고 대기는 순식간에 최류가스로 뒤덮였다.


홍콩 시위 현장 ⓒSteph K Walker

“지금 제일 위험한 건 경찰입니다. 시위대는 위험하지 않아요.”


현장은 상상 이상이었다. 경찰은 소방차와 구급차까지 동원해서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우리는 도대체 왜 이곳에 왔을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모인 이들은 아니었다. 나는 사실 짐짓 이곳에서 무슨 사고라도 날까 봐 두려웠다. 우리의 참가 의지가 괜한 영웅심리는 아닌지 계속 의심했다. 게다가 참가자들 중 대만의 프로듀서들은 홍콩과 비슷한 외교적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홍콩에 오는 것을 더 어려워했을 테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마주하고 나니, 이 시간의 목격자로서 더 이상은 돌아갈 곳이 없었다.


곳곳에서는 시민들이 보도블록을 깨어 도로 위에 경찰차의 진입을 막는 장애물들을 설치했고, 거리의 벤치와 버려진 가구들은 곳곳에 바리케이드가 되어 쌓여갔다. 돌 깨는 소리와 물 대포 소리, 함성과 비명 소리가 번갈아 오고 가며 도시를 가득 채웠다. 다음날 시위는 더 심해졌고 함께 공연을 보고 돌아오던 우리는 전용 버스도 택시도 길로 진입할 수 없어 시위의 사이를 가로질러, 골목으로 피하고 숨으며 한 시간 만에 겨우 숙소로 돌아왔다. 그 거리에서 마주한 홍콩은 정말로 전쟁터였다. 시민들은 우리에게 마스크와 생수를 건넸고, 외국인으로 보이는 우리가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길을 살펴주었다. 마스크 너머 그들의 앳된 얼굴을 보며 우리의 광주가 생각났다.


시민들은 도시를 마비시키며 정부에 저항하면서도 아침이 되면 서로의 안부를 챙기고 도시를 돌보고 있었다. 늘 그렇듯 국수가게가 다시 문을 열었다. 예술계도 마찬가지였다. 관객의 안전에 위험이 있는 장소에서의 공연이나 대규모 상업 행사들은 일부 취소 결정을 내린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공연들은 다행히도 그들의 무대를 지키고 있었다. 무대에서의 발설도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까. 동시대 공연예술의 프로듀서를 자청하는 우리들은 그 공간들을 하나씩 방문했고, 그들의 강한 의지를 통해서 홍콩의 지금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홍콩의 한 프로듀서를 통해서 홍콩의 시민들이 어떻게 저항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저항의 시간들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 예술가는 지속되는 시위의 모습을 보며 옛 홍콩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오래된 공중전화박스를 도로 한복판에 놓고, 전화기 안에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을 할 수 있는 기능을 넣어두었다. 시위가 매일 이어지며 한 두 사람씩 공중전화에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어느덧 수백여 명의 목소리가 시위대의 한가운데에서 쌓여갔다. 이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중요한 아카이브가 되었는데, 그 생생함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엄마, 이곳에 나와 보니 왜 내가 시위에 가는 것을 반대했는지 알 것 같아요. 저는 너무 무서워요.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제가 미래를 위해 싸우는 것을 멈추는 것이에요. 저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이 투쟁을 멈출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날 밤, 수백 명의 대학생들이 경찰의 무력에 의해 체포되었다.



국경을 넘어 마카오로,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APPCamp 셋째 날, 참가자들은 네 팀으로 나뉘어 홍콩, 마카오, 주하이, 광저우에서의 그룹 리서치를 이어갔다. 주하이로 향했던 나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다는 안도감과 홍콩을 뒤로하고 떠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교차했다. 홍콩에서 마카오로 넘어가는 이들은 홍콩과 마카오 사이를 잇는 현존하는 가장 긴 다리를 버스로 건너 홍콩의 국경을 한 번, 그리고 마카오의 국경을 한 번 넘었다. 그리고 다시 마카오에서 주하이로 넘어가는 이들은 국경을 오가며 출퇴근하는 수많은 이들과 육로 국경을 통과해 중국에 도착했다. 홍콩에서 광저우로 가는 이들은 좀 달랐다. 혹시라도 국경을 넘을 때 시위의 장면을 찍은 사진이 휴대폰에서 발견되지는 않을지, 우리를 홍콩의 대학생으로 오인하지는 않을지 염려하며 핸드폰에서 페이스북과 메신저, 시위 현장의 사진들을 지웠다. 그 국경의 분위기는 차가웠고, 그렇게나 서로 달랐다. 우리는 그렇게 여정 중 수 차례 국경 아닌 국경 넘기를 마치 미션처럼 수행해냈다.


‘하나의 국가, 두 개의 제도(one country, two systems, 一國兩制])’는 이들의 현재를 설명하는 말이다. 국경을 넘는 범죄인 인도법으로부터 시작된 홍콩과 중국의 갈등은 이전 우산혁명으로도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이는 법적으로 중국의 특별행정구에 해당하는 홍콩, 마카오를 비롯하여 이 도시들의 중국 접경 도시인 선전(深圳)과 주하이(珠海)의 상태와도 연관한다. 이 도시들을 포함하여 주강삼각주(Pearl River Delta; PRD, 珠江三角洲)로 불리는 광둥 성 일대 지역은 중국의 동서부를 연결하며, 중국이 외부와 경제적으로 협력하는 거점으로서, 지속적으로 큰 자본이 유입되는 등 중화권 변화의 중심이 되고 있다. 특히 올해 초 중국은 광둥 성의 9개 도시와 홍콩, 마카오를 하나의 경제특구로 묶는 계획인 GBA(Greater Bay Area)를 발표하기도 했다. 식민지로부터 반환(독립)된 이후에도 영국과 포르투갈의 정치 경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홍콩과 마카오는 중국과의 협정에 의해 각각 2047년과 2049년에 중국으로 실질적인 체제 통합을 하게 된다. 중국 정부는 이를 준비하기 위하여 주강삼각주 일대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며, 점차 그 권한과 통제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 접경 도시들의 경제적 개발 속도와 사회 문화적 인프라의 변화는 현격했다.

주강삼각주와 GBA ⓒwebuildvalue


공식 일정 중 방문했던 광저우오페라하우스에서는 중국이 주강삼각주를 새로운 문화의 거점으로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극장 간의 관계망과 기능들을 이야기 들으며 GBA의 관점에서 하나의 중국을 향하고 있는 문화적 전략을 살펴볼 수 있었다. 점차 광둥 성의 도시들에서도 광둥어가 아닌 북경어(보통어)를 쓰는 비중이 높아지는 등 이곳의 사회와 문화의 지형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아시아 공연예술계에 어떠한 지형적 변화를 일으킬지는 쉬이 가늠할 수 없었다. 다만 국가라는 조직이 언제든 문화를 잠식의 대상이자 통제의 수단으로 삼지는 않을지 여전히 두려웠다.




우리의 지금으로 돌아와서

시위가 가장 심했던 밤의 홍콩 시위 지도ⓒHKmap Live

짧은 시간 홍콩과 그 주변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홍콩 시위의 현장을 실시간으로 안내하는 웹 페이지를 수 없이 새로고침 했다. 지도는 시민들이 함께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현재 경찰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경찰 병력은 얼마이고, 어디에서 최류가스가 터졌고, 무력진압으로 인한 폭력 사태가 발생했는지 알려준다. 우리가 홍콩에 머무르던 그날 밤의 지도는 바로 눈 앞의 현실과 교차되며 이상한 기시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평온한 나의 도시에 돌아와서도 이따금 그 지도를 다시 열어본다. 마치 홍콩과 나를 연결해주는 특별한 고리라도 되는 것처럼 지도를 들여다본다.

홍콩의 친구는 그들이 이제 트라우마에 대응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우산혁명이 마치 넘치는 연기를 그저 덮어두었던 것에 그쳤다면, 이번 홍콩은 그때와는 다르다. 우리의 방문이 그들에게 큰 용기가 되었다는 말을 기억하며, 앞으로의 숙제들을 공유하기 위한 이 글을 맺는다. 그 일을 마주했다는 것의 무게가 너무 크다. 우리는 중국과 그 이웃들의 변화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그리고 그 변화를 어떻게 인지하고, 받아들여 나갈까.



1) 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 캠프(Asia Producers’ Platform Camp; 이하 ‘APPCamp’)

매년 아시아 권역의 공연예술 프로듀서들이 한 지역에 모여 공통 워크숍과 연구, 그리고 해당 지역에 대한 리서치를 진행한다. 프로듀서 간 창의적 협력의 가능성을 마련하고 아시아 공연예술계의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2) 홍콩 시민들의 저항의 기록

2014년 우산혁명과 2019년 범죄자 인도법 반대 시위를 비교하여 아카이브 한 언론의 웹페이지.


3) 홍콩 시위의 현장을 실시간으로 안내하는 웹 페이지

지도에서 경찰은 개, 공룡은 무력진압을 의미



이 글을 쓰던 중 2019년 11월 24일 진행된 홍콩 구의원 선거가 역대 최고 투표율을 달성하였으며, 친중파를 누르고 범민주 진영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들은 ‘홍콩 시민들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소감을 건넸다. 많은 이들은 이 결과가 행정장관의 선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며 더불어 정치 개혁의 목소리가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서울문화재단 웹진 [연극 in]에 수록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축제, 서로 다른 이들의 조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