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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면지언니 Jun 06. 2020

축제, 서로 다른 이들의 조우

Fira Tarrega, Teatre al Carrer

타레가는 스페인 카탈루니아 지방에 자리한 인구 17,000명의 작은 도시로, 축제가 아닌 이상은 외부에서 찾을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은 소박한 마을이다. 바르셀로나에서 버스로 2시간을 달려 일 년에 단 한 번, 전 세계로의 문을 여는 피라 타레가 축제의 장에 발을 디뎠다.


피라 타레가의 공식 명칭은 Fira Tarrega - Teatre Al Carrer로, 명실상부하게 스페인 카탈루니아 지방을 대표하는 거리극 축제이다. 피라 타레가가 말하는 거리 위 연극(Teatre Al Carrer)은 다양한 형태와 방식을 통해 현재 진행형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여러 기관과 단체의 후원으로 2014년부터 거의 매년 축제에 전문가로 참여하며 작품을 소개하거나, 축제에 초청할 작품을 찾고, 유럽과 세계의 거리예술 흐름을 흥미롭게 읽어왔다. 이중 가장 흥미롭게 축제를 읽었던 2016년의 축제에서는 거리예술이 지닌 대표적인 가치들 중 하나인 ‘다양한 문화(Multiculturalism)’에 대한 접근으로 축제를 바라볼 수 있었다. 저마다의 사회적 맥락들로부터의 서로 다른 공동체들이 거리예술을 통해 서로를 마주하고 가까워지는 것을 지향했다는 예술감독의 말에서도 이러한 시도를 찾아볼 수 있었다.


Cie Kiku Mistu - The Last Cabaret (c) Jin Yim / Diana Gadish - Handle with Care (c) Jin Yim

#얼룩말의영역 #도시국가 #시선들


프랑스와 스페인의 주요 거리극 축제들이 대부분 공식 초청작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 구성하거나 혹은 공식 초청작과 자유 참가작의 두 트랙으로 구성되는 프로그램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달리 피라 타레가의 프로그램은 최근 몇 년간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프로그램의 분류를 구체화함으로써 피라 타레가는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맥락을 축제 안에서 찾고 관객들에게 이를 전달하고자 했다.


공식 참가작을 제외하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프로그램은 ‘제작지원(Platform)’ 섹션이다. 축제가 신작을 선보이는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참신한 아이디어를 지니고 있는 신진 예술가들의 작업을 제작 지원하고 축제에서 창작을 위한 시설과 제작비 등을 사전 지원하는 방식의 프로그램으로서, 각 작품들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예술감독이 자랑하는 프로그램들 대부분이 ‘제작지원’ 섹션의 프로그램일만큼 피라 타레가가 지향하는 점을 잘 드러내 준다. 타 축제와는 달리 독특한 이름을 한 프로그램 섹션들이 눈에 띈다.


2016년 도입된 섹션인 ‘얼룩말의 영역(Espaizebra)’은 젠더 이슈라는 민감한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는 섹션으로 전문가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던 작품인 컴퍼니 Baal의 작품이 속해있었다. 한국의 거리극 축제에서 시도하기 힘든 18세 이상 관람 등급의 작품들이 더러 있는 점이 눈에 띄었다.


Cia Maduixa - Mulier (c) fira tarrega


‘도시 국가(Urban Nation)’ 역시 다른 거리극 축제에서는 외면하는 경우가 많은 장르인 비보잉, 힙합, 라이브 드로잉, 그래피티 등의 장르를 통해 현대 사회 속에서의 거리예술의 형태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장르의 특성을 보다 강하게 드러낼 수 있는 방식으로, 뉴욕의 섬머 스테이지 페스티벌과의 2년째 이어지는 협력을 통해 힙합 댄서들이 교류할 수 있는 공동의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었다.


‘시선들(Mirades)’ 역시 새로운 프로그램 섹션으로, 유럽이 아닌 두 국가―한국과 멕시코―의 예술가들이 선보이는 도시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담고자 했다. 한국의 비주얼시어터 꽃(대표 이철성)이 선보인 작품 ‘마사지사(Massager)’는 안산국제거리극축제와의 교류 사업의 일환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이러한 분류들로부터 동시대의 다양한 이슈들을 담은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선보이고자 하는 축제의 의도를 찾아볼 수 있다. '마사지사'는 타레가에서의 초연 이후 영국, 프랑스, 러시아, 스페인의 다양한 축제에서 작품을 소개하게 되었다.


이 밖에도 ‘온두라 파크(Ondura Park)’는 전 연령대의 관객들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성 중심의 프로그램으로서, 어린이와 가족 단위 관객들을 공략한 무겁지 않은 공연들을 별도로 분리했다.



Market Booth Llotja - Exhibition (c) Jin Yim

제작 지원과 유통 채널로서의 축제


피라 타레가의 프로그램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은 축제의 공동 제작 혹은 제작 지원 작품 비중이 25%로 제법 높은 편이라는 것과 카탈루니아 지역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제작 지원 작품 역시 카탈루니아의 작품들이다.


축제는 창작 지원 프로그램(Creation Support Program)을 통하여 신작에 투자를 하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제작한 작품들을 플랫폼 섹션에서 선보인다. 신작 발굴을 위해서는 공식 참가작 공모에 앞서 작품을 공모하며, 축제의 제작팀에서 작품 개발에 함께 참여하거나, 타 축제와 공동으로 작품 개발에 투자하는 등 제작 방식을 다각화하고 있다.


축제의 프로그램북은 카탈루니아 지역의 예술가들과 이외의 스페인 지역에서 참여한 예술가들을 분리하여 표기하고 있다. 총 30개의 카탈란 단체, 10개의 스페인 단체, 17개의 해외 단체들이 축제에 초청되었다.


이러한 특징은 마켓에 등록한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런치 미팅에서도 두드러진다. 아트 마켓으로서 피라 타레가의 라벨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공식 런치 미팅 자리는 카탈루니아 정부 문화부가 주관하는 자리로, 해외에서 온 프로그래머들와 프로듀서들이 카탈루니아의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게 서로를 소개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서로 작품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주요한 장이다.


아트 마켓의 기능을 하는 프랑스의 주요 축제들이 프로그램 자체를 통해 마켓으로서의 역할에 집중한다면, 이곳 타레가에서는 카탈란/스페인어를 비롯하여 영어/프랑스어 등이 모든 프로그램에 병기되어 있으며 마켓에 전문가 등록 시 체계적으로 전문가 대상 프로그램들이 구성되어 있다는 점 등으로 비추어볼 때, 전문가 간 네트워크를 통한 마켓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프리젠터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우수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마켓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작품의 규모나 숫자가 이전보다 줄고 있으며, 실험적인 작품에 초점을 맞출수록 작품에 대한 평가가 어려워지는 것이 피라 타레가가 마주한 과제일 것이다.


축제 기간 중 만난 스페인의 예술가들과 기획자들은 스페인의 경제 상황과 문화 예술에 대한 지원이 이전과 같이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어쩌면 피라 타레가 역시 이러한 상황을 딛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활로를 모색하는 중일 테다. 젊은 축제 피라 타레가의 앞으로의 모습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피라 타레가 Fira Tarrega Teatre al Carrer

스페인, 카탈루니아, 타레가

매년 9월 중

 www.firatarrega.cat

info@firatarrega.com (공식) pro@firatarrega.com (전문가)

Plaça de Sant Antoni, 1, 25300 Tàrrega, Lleida, Spain


공연 프로그램

- 약 60여 작 (공식 프로그램, 제작 지원 프로그램 등)

- 약 30개 공연 장소, 극장 (유/무료)


전문가 프로그램

- 800여 명의 전문가 등록

- 50여 개 내외의 부스 전시

- 30여 개 전문가 네트워킹, 포럼 프로그램


※ 2019년 피라 타레가는 새로운 예술감독으로 Anna Giribet i Argilès을 임명했다. 10여 년 간 예술감독을 맡았던 Jordi D.Roldos의 임기가 끝남에 따라 신임 예술감독이 축제를 이끌게 된 것인데, 충분한 시간을 두고 예술감독의 선임 방식을 고민하고, 전임 감독과의 인수인계 기간을 넉넉히 가진 것이 인상적이다.


※ 본 글은 2016년 예술경영지원센터 해외 아트마켓 프로모터 참가 지원사업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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