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여름이 끝났다.
바람이 서늘해지기 시작하면서 아침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잠에서 깨어나곤 한다.
이 증상은 큰 아빠의 칠순잔치를 다녀오고 더 심해졌다.
내가 그리워하는 얼굴은 단 한 명이다. 바로 사촌언니.
2018년 11월 마지막 날에 세상을 떠난 언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라이벌이자 비빌 언덕이었다.
일개 사촌동생인 나도 가을만 되면 기분이 땅끝까지 떨어지는데 큰집 식구들은 오죽할까,
나보다 더 큰 무게를 얹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기에 내 마음의 무게는 애써 털어버리려 노력한다.
하지만 올해는 유독 아침마다 언니생각이 난다.
이럴 땐 언니가 잠들어있는 납골당으로 향해야 내 마음이 놓인다. 난 언니 생전엔 연락도 거의 하지 않는 냉정한 동생이었다. 하지만 언니 사후엔 1년에 한 번은 꼭 이곳에 찾아간다. 나의 이런 행동은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말 언니를 추모하기 위해 가는 건지, 슬픈 척을 하려고 가는 건지, 난 언니를 잊지 않았어를 광고하기 위해 가는 건지 아니면 내 마음의 무게를 덜기 위해 가는 건지,
그 어떤 이유든 언니는 두 팔을 벌려 날 환영해 줄 것이다.
그걸 알기에 염치 불구하고 자동차의 시동을 건다.
추모공원 제일 아래쪽에는 할머니가 계신다.
언니를 보기 위한 목적으로 오지만 이곳에 오면 반드시 할머니께도 들른다.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할머니 주변 납골함을 살펴본다.
나랑 나이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았던, 굉장히 예쁜 여자분의 납골함이 있었는데 이번에 왔을 땐 그분의 자리가 사라져 있었다.
그 여자분의 사진이 날이 가면 갈수록 바래져 갔었는데, 그녀를 알고 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그녀가 바래져 버린 걸까.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사람이지만 괜히 씁쓸해졌다.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언니의 납골함을 향해 걸어간다.
언니 납골함은 이 추모공원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올 때마다 납골함의 개수가 늘어나서 내가 언니 납골함을 못 찾는 건 아닐까 걱정을 늘 한다. 하지만 수많은 납골함 사이에서도 눈이 부시게 웃고 있는 언니의 얼굴은 언제나 한눈에 들어온다.
언니의 사진을 옷깃으로 닦다가 사진 위에 플라스틱 가리개가 붙어 있는 걸 보았다.
다른 납골함에도 있나 살펴보니 오직 언니에게만 붙어있다. 왜 이게 붙어있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가리개가 있으면 언니의 사진이 비에 젖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죽은 딸의 납골함에 붙어 있는 사진이 젖지 말라고 가리개를 붙이는 마음을 난 이해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나에게 왜 아직도 슬퍼하느냐 묻는다.
나의 슬픔이 타인에 비해 작을지라도, 과거에 비해 흐릿해질지라도 가을이 돌아오면 이 슬픔의 불씨는 산불처럼 커진다. 아마도 난 영원히 슬플 것이다. 하지만 언니를 잊고 싶진 않다. 언니에 대한 기억이 바래지 않도록 난 문득문득 언니를 그리워하며 영원한 가을 속에서 슬프게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