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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준희 Apr 27. 2021

낙오 걸

처음 해보는 언니 노릇

 


둘째가 결국 특박(특별외박)을 나오지 못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코로나 확진자 수 때문이다. 부대 내에서 나름 체육대회와 보물찾기 등 그에 상응하는 휴식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는데 엄밀히 말해 그 행사들이 휴식으로 느껴질지는 미지수다. 그동안의 고된 훈련을 생각하면 그나마도 다행히 놀이 수준에 그칠 테지만. 어찌 되었든 치콜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맥주 한 캔씩이 할당될 가능성도 있는 듯하여 무척이나 기대되는 눈치였다. 그동안 쉽고 빠르게 즐길 수 있었던 인스턴트를 두어 달만에 접할 수 있다는 기쁨을 외마디 탄성으로 짧고 굵게 내던진 희(편의상 '희'라고 부르는 편)가 정말 민간인의 일상을 벗어나고 있구나 싶어 눈물이 다 날 뻔했다.



      티 내지 않아도 내심 특박을 못 나오는 아쉬움이 컸을 둘째는 그곳에 들어간 지 2주째 되는 날, 울먹이며 집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말했다. 막연히 버텨 보라고 할 수도, 마음처럼 그냥 돌아오라고 할 수도 없는 문제였기에 선택은 둘째 네 몫이라 말할 수밖에 없었던 그 날. 마음을 굳게 먹었던 건지, 어쩐지 희는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만들었던 그 날 통화를 기점으로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는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주지 않았다.


      7이라는 끄트머리의 숫자를 달고 가장 연로한 후보생이 된 둘째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언니 노릇을 하게 되었다. 나이는 제일 많은데 내가 가장 아기 같아 언니. 집에서는 습관처럼 엄마와 내가 챙겨주다시피 했고,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대부분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어울렸던 희는 그곳에 발을 들이면서 언니 노릇을 처음 해 본 터라 동생들에게 줄곧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였나 보다. 지금도 완벽히 언니 노릇을 하고 있지는 않는 듯 보이나, 동생들의 귀여운 지지와 심심찮은 위로를 번갈아 받으며 어느 정도 잘 지내는 것 같다. 집에서 노심초사한 나와 엄마도 희의 밝은 목소리를 들으니, 그 나름대로의 폐쇄적 일상을 즐길 줄 아는 후보생이 된 것 같아 내심 뿌듯했다.



      다른 형태의 격리라면 격리일 한 달여의 훈련 적응기를 지내던 어느 날, 주말 핸드폰 사용이 허가되었다. 그 덕에 자연스레 나와 엄마는 뭔지 모를 군대 용어를 점차 깨치게 되었다. 각개전투와 전투 뜀걸음 그리고 유격훈련, 장총의 무게를 비롯한 비밀스러운 군 조직의 일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둘째에게 숫자 7은 깨나 무거운 짐이었다. 그 기수에서 스물일곱이라는 나이는 손에 꼽을 만큼 적었기 때문이다. 가장 작은 체구였기에 체력도 체력이거니와 회복 역시 다른 친구들보다 더뎠던 희는 핸드폰을 받게 된 순간 내게 바로 전화를 걸어 그간의 일화를 하나 둘 풀어놓았다. 언니~ 언니~ 나 여기서 완전히 낙오 걸이야 캬하하. 울지 않고 실소하듯 말하니 좀 무섭기도 했지만 다시 시트콤 같은 우리 집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아 반가웠다.


     전투 뜀걸음을 시작한 이래로 한 번을 제외하고는 낙오의 연속을 보냈다던 둘째는 어쩌다 보니 대대장님께 특별한(?) 후보생으로 각인되었다고 한다. 매일 아침 3KM씩 장총을 들고 배낭을 멘 채 하염없이 달려야 했다는 희는 그렇게 건장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매일같이 낙오자가 되었다.


                         OOO후보생, 또 만났네?

                      OOO후보생, 또?

                      OOO후보생, 아직도?


뜻하지 않게 대대장님과 자주 마주치곤 하는, 나이 많아 슬픈 내 여동생. 부디 훈련기간 막바지쯤엔 보기 좋게 낙오 딱지를 날려 버리고 돌아오기를.



     주말에는 소대 막내의 청유에 따라 아이유 노래로 버스킹을 한다고 했다. 눈썹을 간신히 넘어선 길이의 앞머리를 최근에 다시 잘린 관계로, 다시금 애송이처럼 짧고 뭉툭해진 앞머리를 한 채 군복을 입고 소녀감성의 노래를 부른다니. 상상만으로도 웃기고 귀엽다. 버스킹은 처음이라 아무래도 몹시 긴장되는 모양이다. 예상하기로는 특박이 취소된 주말 저녁이라 버스킹 분위기도 탈 겸 특식으로 맥주 한 캔씩을 주나 본데, 부디 맥주라도 한 모금 마시고 단상에 올랐으면 좋겠다. 이건 상이 걸렸다 하면 어디서든 노래 부르는 것을 즐겼던 아빠 류가 써먹곤 했던 일종의 릴랙스 팁인데, 아빠는 알코올로 긴장을 달랬다지만 엄마는 외려 그 방법이 더 좋지 않다고 일렀다. 호기롭게 한 잔을 비운 후 발갛게 상기된 볼로 무대에 올라간 아빠의 목소리가 연습 때보다 더 안 나왔기 때문에. 가끔 팝송을 부를 때는 혀가 제멋대로 꼬이기도 했으므로. 어떤 방법이든 흑역사 생성만 아녔으면 좋겠다.



     이어서 희는 저번 주일에 교회가 아닌 성당을 다녀왔다고 고백했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둘째의 특성상 그곳에 들어가자마자 군인들 사이로 전해 내려오는 관습에 일찍이 물들 것이라 예상했기에,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그 당시 둘째의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고 한다. 성당에서 에그 드랍을 준다고 했단다. 그 전 주까지는 교회에 가서 싸이 버거를 먹었다 던데, 그 와중에도 같은 걸 두 번 먹기는 싫었다나. 이런 소극적 변절자. 이번 주에는 다시 교회에 나가겠다고 했는데 뭘 주기에 선택한 것일지 굉장히 궁금하다. 꼭 물어봐야지.



       그간 아침마다 나를 따라 모카포트로 내린 아메리카노를 3잔 이상 마시던 애가 그곳에 들어간 이후 어쩔 수 없이 카페인을 끊게 되었음에도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고 한다. 고된 훈련이 외려 약이 됐던 걸까. 이번 주에 가장 힘들었다던 유격 훈련을 마친 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도넛을 먹었다고 하는데, 근 두 달 만에 맛본 아메리카노는 무슨 맛이었을까. 입안의 단 꿀처럼 느껴졌을 그 목 넘김이 너무 궁금하다.


      본인 역시 민간인의 신분을 뒤로한 지 고작 세 달째 되어 가건만 적응이 좀 되었다는 느낌을 주려는 건지, 근래 통화에서는 입버릇처럼 말이 안 통한다며 센척하듯 그것도 모르냐는 말을 자주 한다. 편지 끊기고 싶냐는 말로 되갚아 주면 금세 미안하다고 꼬리를 내리지만 이제 진짜 돌이킬 수 없는 공군이 되었구나 싶은 것이, 이상하리만큼 적응이 안 되지만 대견하게 느껴진다.








      나란히 막내의 유모차를 밀며 누가 더 엄마랑 비슷한지 시합하고, 부모님의 결혼기념일마다 우리들의 파티인 양 편지를 쓰고 선물을 고르러 다니던 나와 희. 쌍둥이처럼 붙어 다니며 서로에게 가장 친한 벗이 되어주던 자매가 이렇게나 오래 떨어져 본 것은 처음인 지라 아직도 어색하고 서운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가도 동시에 사람 마음이 이렇게나 간사한 것이구나 느낀다. 보낼 때는 그렇게도 아프고 저릿해 새드엔딩 드라마를 찍는 듯하더니. 지금은 씩씩해진 희가 임관식 때 경례할 모습을 상상하며 그 모습이 썩 어울리지는 않아 웃음이 터지는 시트콤 같은 한 장면을 연상하게 되고.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출근하듯 책상에 앉아 둘째에게 편지를 끄적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엄마 뽀송에게 인터넷 편지 쓰는 법을 일러주었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여러 번 되물으며 나를 귀찮게 하더니 이제는 알아서 척척 빠르게 자판을 두드린다. 막내는 아마도 자신이 입대할 쯤엔 아무도 울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는 것 같다. 누나도 다녀왔는데 인마! 하는 소리가 맴돌 만큼 이 상황에 익숙해진 덕에. 입대 후 본인도 편지를 받으려면 꼬박꼬박 써야 할 터인데, 쯧. 아직 그곳의 일상을 가늠하지는 못한 듯하다.

예고 없이 벌어진 일련의 과정들로 꽤 오래 상처를 받았던 터라 급작스러운 변화는 늘 무섭기만 했는데, 달가운 변화라는 게 어떤 느낌인 건지 조금씩 실감하는 것 같기도 하다. 편지 말의 시작은 늘 그렇듯 희야~. 오늘도 보고 싶은 마음의 무게를 담아, 노트북 키보드를 꾹꾹 눌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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