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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담 May 14. 2019

13 발리의 '압구정 가로수길' 스미냑

쇼핑 갔다가 말문이 막힌 사연

스미냑(Seminyak)에서는 집에서만 지낸 날이 반 이상이었다. 우붓과는 달리 도로가 복잡하고 차가 많이 다녀서 스쿠터를 몰기에 위험하기도 했고, 음식 배달 서비스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어 굳이 나가지 않아도 쉽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당에 있는 풀장에 아무 때나 풍덩 뛰어들어 물놀이를 하는 게 재미있어서 나가고 싶은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침실에서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물놀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담이 높고 울창한 나무로 덮여있어 편하게 놀 수 있었다.


음식 배달 서비스는 매일 숙소를 청소하러 와주시는 하우스메이드 아주머니께서 알려주셨다. '우버 이츠(Uber Eats)' 앱을 이용하면 우리나라처럼 스마트폰 쉽게 음식을 주문할 수 있다. '우버 이츠'가 식당들과 제휴를 맺어 고객과 식당 사이의 배달원을 배정해주는 방식이다. 배달 팁이 더 들긴 하지만 대략 7000원이면 한 끼를 해결한다. 그전까지는 집 앞 마트에서 베이컨, 계란 등을 사서 아메리칸 브랙퍼스트를 해 먹곤 했는데, 배달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거의 배달 음식을 더 많이 먹었다.


음식은 주로 간단한 메뉴로 골라서 시켰다. 배달이 빨라서 따뜻할 때 먹을 수 있다.


그러다 하루는 친구와 스미냑 중심 거리로 나갔는데, 쇼핑하고 먹기만 해도 하루가 금방 갈 정도로 구경할 곳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미냑이 한국인 관광객 사이에서는 '발리의 압구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유를 실감했다. 중간중간 큰 쇼핑센터도 있지만 길거리에도 크고 작은 기념품 가게가 늘어서 있다.


특히 스미냑에서는 뱀가죽으로 만든 지갑, 가방, 클러치 등이 인기가 많다. 유명한 뱀가죽 가게가 'E biza', 'Abbraci', 'Syang' 등 세 군데 정도 있는데, 어느 시간대에 어느 곳을 가든 관광객이 붐빌 정도다. 나는 뱀가죽 제품에는 큰 관심이 가진 않았지만 여행 선물로 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들어가서 구경하기 시작했다. 색깔, 크기, 촉감, 가격이 다양해서 고르는 데 꽤 오래 걸렸다. 3시간 넘게 고른 끝에 가족에게 줄 지갑과 파우치, 클러치를 샀다. 약 20만원이 들었다.


뱀가죽 제품들은 품질이 좋은 편이지만 가격도 비쌌다.


계산을 마치고 포장을 기다리는데 한 점원이 내게 “어디서 왔어요? 몇 살이에요?" 같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온 대학생"이라고 대답하자 그는 깜짝 놀라며 학생이 발리까지 여행 올 돈이나 이렇게 비싼 물건을 살 돈을 어떻게 구했냐고 물었다. 그의 질문이 조금은 무례하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나는 여기서 1년 동안 일한 돈을 모두 모아도 한국 여행을 갈 수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별 다른 반응도 하지 못하고 가게를 나왔다.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6개월 동안 학업과 병행한 아르바이트 덕분에 여행을 하고 있는 내 상황을 새삼 다시 실감하게 되었다. 발리에서 머물 날이 5일도 남지 않았지만, 남은 날들을 최대한 만끽하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멋진 기념품도 샀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스미냑의 쇼핑거리. 이날 유난히 노을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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