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냑(Seminyak)에서는 집에서만 지낸 날이 반 이상이었다. 우붓과는 달리 도로가 복잡하고 차가 많이 다녀서 스쿠터를 몰기에 위험하기도 했고, 음식 배달 서비스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어 굳이 나가지 않아도 쉽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당에 있는 풀장에 아무 때나 풍덩 뛰어들어 물놀이를 하는 게 재미있어서 나가고 싶은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침실에서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물놀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담이 높고 울창한 나무로 덮여있어 편하게 놀 수 있었다.
음식 배달 서비스는 매일 숙소를 청소하러 와주시는 하우스메이드 아주머니께서 알려주셨다. '우버 이츠(Uber Eats)' 앱을 이용하면 우리나라처럼 스마트폰 쉽게 음식을 주문할 수 있다. '우버 이츠'가 식당들과 제휴를 맺어 고객과 식당 사이의 배달원을 배정해주는 방식이다. 배달 팁이 더 들긴 하지만 대략 7000원이면 한 끼를 해결한다. 그전까지는 집 앞 마트에서 베이컨, 계란 등을 사서 아메리칸 브랙퍼스트를 해 먹곤 했는데, 배달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거의 배달 음식을 더 많이 먹었다.
음식은 주로 간단한 메뉴로 골라서 시켰다. 배달이 빨라서 따뜻할 때 먹을 수 있다.
그러다 하루는 친구와 스미냑 중심 거리로 나갔는데, 쇼핑하고 먹기만 해도 하루가 금방 갈 정도로 구경할 곳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미냑이 한국인 관광객 사이에서는 '발리의 압구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유를 실감했다. 중간중간 큰 쇼핑센터도 있지만 길거리에도 크고 작은 기념품 가게가 늘어서 있다.
특히 스미냑에서는 뱀가죽으로 만든 지갑, 가방, 클러치 등이 인기가 많다. 유명한 뱀가죽 가게가 'E biza', 'Abbraci', 'Syang' 등 세 군데 정도 있는데, 어느 시간대에 어느 곳을 가든 관광객이 붐빌 정도다. 나는 뱀가죽 제품에는 큰 관심이 가진 않았지만 여행 선물로 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들어가서 구경하기 시작했다. 색깔, 크기, 촉감, 가격이 다양해서 고르는 데 꽤 오래 걸렸다. 3시간 넘게 고른 끝에 가족에게 줄 지갑과 파우치, 클러치를 샀다. 약 20만원이 들었다.
뱀가죽 제품들은 품질이 좋은 편이지만 가격도 비쌌다.
계산을 마치고 포장을 기다리는데 한 점원이 내게 “어디서 왔어요? 몇 살이에요?" 같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온 대학생"이라고 대답하자 그는 깜짝 놀라며 학생이 발리까지 여행 올 돈이나 이렇게 비싼 물건을 살 돈을 어떻게 구했냐고 물었다. 그의 질문이 조금은 무례하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나는 여기서 1년 동안 일한 돈을 모두 모아도 한국 여행을 갈 수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별 다른 반응도 하지 못하고 가게를 나왔다.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6개월 동안 학업과 병행한 아르바이트 덕분에 여행을 하고 있는 내 상황을 새삼 다시 실감하게 되었다. 발리에서 머물 날이 5일도 남지 않았지만, 남은 날들을 최대한 만끽하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멋진 기념품도 샀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