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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담 Dec 09. 2020

모순을 품고 살아가는 용기

양귀자 장편소설 <모순>을 읽고

나는 늘 지루했어. 너희 엄마는 평생이 바빴지. 새벽부터 저녁까지 돈도 벌어야 하고, 무능한 남편과 싸움도 해야 하고, 말 안 듣고 내빼는 자식들 찾아다니며 두들겨 패기도 해야 했고, 언제나 바람이 씽씽 일도록 바쁘게 살아야 했지. 그런 언니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나도 그렇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어. 무덤 속처럼 평온하게 말고.
- <모순> 중에서 '이모'의 말


차고 넘치는 부, 다정하고 유능한 배우자,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있는 사람은 과연 행복할까? <모순>에서 진진의 이모는 남들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모두 갖춘 사람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불행하다 여긴다. 늘 평온하고 잔잔한 일상이 '무덤'이었다고 말한다.


반면 진진의 엄마는 매일 복작복작한 일상을 견뎌내야 했고, 삶의 위기를 매번 극복해야만 했다. 어쩌면 동생처럼 우울함을 느끼기엔 생각에 잠길 잠깐의 틈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삶의 활력은 모순적이게도 '난관' 속에서 나온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인생과 그것을 매번 맞닥뜨리는 인간은 눈앞에 주어진 과제를 헤쳐나가며 함께 성장한다. 그 덕에 인생은 수많은 도전으로 꾸려지고, 인간은 성숙하고 단단해진다. 모든 게 뻔하게 짜인 대로 흘러가는 인생이라면 인간은 제자리에 머물게 된다. 그렇게 '무덤' 같은 일상 속에 갇혀버린다.


내 삶이 마냥 순탄하게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뭐 하나 쉽게 되는 게 없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언제 한 번은 다사다난한 일상 속에서 뜻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어 막막한 마음에 밤새 눈물을 삼킨 적도 있다. <모순>을 읽고 나서 '어쩌면 내 인생이야말로 진정한 내 편이 아닐까' 생각을 바꾸게 됐다. 늘 어려운 인생을 통해 나는 하나씩 더 배워왔고, 느리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박막례 할머니가 "실패가 뭔 줄 아냐. 했다는 증거야. 실패가 쌓이면 그게 경력이지, 경력이야."라고 말한 게 생각난다. 인생이 주는 과제에 모두 실패한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이 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수없이 도전했다는 훈장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인생이다. 지금 내가 실패에 연속에 있고 눈 앞에 또 다른 난관이 있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 그것 또한 나를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자 디딤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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