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담 Apr 15. 2019

7 쏟아지는 성수를 맞으며 기도하는 사람들

우붓에서의 마지막 날

원데이 투어의 다음 목적지는 띠르따 엠풀 사원(Pura Tirta Empul)이었다. 이곳은 힌두교를 바탕으로 한 ‘물의 사원’이다. 제물을 바치고 성수에 들어가서 몸을 씻으면 영혼이 깨끗하게 씻긴다고 한다. 라이스테라스에서 차로 약 10분만 달리면 도착할 수 있을 만큼 가깝다.


띠르따 사원에 도착해 차에서 내렸을 때부터 독특한 향냄새가 풍겨왔다. 입구에 세워진 사원의 머릿돌에 수많은 향이 종이 접시 위에서 꽃과 함께 태워지고 있었다. 기도를 드리기 위한 제물인 것 같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후각이 둔해지기 마련인데, 이곳의 향은 사원을 나갈 때까지 계속 내 후각을 자극했다.


사원 입구 제단에 독특한 냄새가 나는 향이 많이 놓여있었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별과 상관없이 사롱(sarong)을 착용해 다리를 가려야 한다. 사롱은 화려한 인도네시아 전통문양이 그려진 긴 천이다. 다행히 입구에서 무료로 대여할 수 있었다. 제대로 세탁은 하는 것일지 걱정도 들었지만 일단 사롱을 두르자 왠지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저절로 뛰어다니거나 소리를 크게 내지 않게 되었다.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종교와 문화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입구 옆에 바로 사롱 무료 대여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사원에 들어가기 위해선 남녀노소 모두 사롱을 착용해야 한다.


띠르따 엠플 안의 ‘성수’는 사람들을 독으로부터 지켜주었던 신에 대한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수가 있는 곳은 야외 온천과 비슷하게 생겼다. 일렬로 있는 꼭지에서 물이 쏟아지는데, 각 꼭지의 물은 서로 다른 죄를 씻어준다고 한다. 나는 곧바로 타야 할 이뇨만의 차를 생각해 하반신을 담그는 데서 그쳤지만, 사람들은 보통 한 줄로 서서 왼쪽 끝부터 오른쪽 끝까지 모든 물을 맞는다. 더운 날씨에 비해 물은 굉장히 차가웠다. 발을 담글 때부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띠르따 사원의 하이라이트인 성수 존. 왼쪽에서부터 차례로 성수를 맞으며 이동한다.


물에 몸을 담그니 괜히 어린 아이처럼 들뜨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바로 옆에서 기도 소리가 들려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성수를 맞으면서 기도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제물을 바친 제단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관광객들이 방해가 되진 않을지 걱정이 될 정도로 주변은 어수선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들은 마치 폭풍의 눈처럼 조용히 기도에 집중했다. 자신만의 고요한 시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그런 사람들을 뚫어지게 바라보게 되었다. 저렇게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라도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성수가 있는 곳에는 사원 입구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띠르따 사원 외에 낀따마니 화산 지대(Kintamani Volcano Area), 뜨그능안 폭포(Tegenungan Waterfall) 등 하루 안에 갈 수 있는 모든 곳을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붓에서의 생활도 내일이 마지막이었다. 마지막 날에는 우붓의 생활을 돌아보며 시간을 마음껏 낭비하기로 다짐했다. 우붓에서 본 장면들 하나하나 머릿속에 새겨놓고 싶었다. 사원에서 본 사람들처럼 폭풍 속에서 고요를 유지할 자신이 없어 혼자 집에서 있기로 했다. 우붓에서 먹는 마지막 야식으로 길었던 원데이 투어를 마무리했다.


자주 갔던 작은 식당의 세트 메뉴. 밥과 반찬 여러 개를 선택해서 먹을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6 논 옆 오두막 식당에서 깨달은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