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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의 끝은 무엇인가?

맨날 마케터들 보면 후회한다는데..

by 파타과니아

1. 예전에 패션회사에 자암깐 있었을 때, C레벨이라는 사람은 늘 두 종류의 옷만 입었다.


명품 or 친구가 만든 거


물론 C급 레벨의 친구라 하면 한따까리 하는 사람은 맞지만, 개인적으론 의문이 들었다.


하루에도 수백개의 브랜드가 생겨나고 사라질 텐데, 저 사람은 대체 무슨 기준으로 친구의 옷을 입는 걸까? 잘 만든 옷은 맞겠지만 에루샤 미만에도 좋은 브랜드들이 많은데 왜 그건 안 입으면서?


이렇게 생각하면 저 사람이 입으면서 홍보되고 알려지는 건, 그냥 저 사람 친구여서가 제일 큰 이유 아닌가? 옷을 잘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건 유명한 사람과의 친분일까?


2. 잘 파는 거랑,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는 건 다르다. 그리고 보통 후자처럼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는 건 돈을 벌기가 힘든 거 같다. 봉사는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는 일이지만 돈을 버는 일은 아니니까. 물론 같이 가는 경우도 있지만 흔치 않은 거 같다.


물론 사회인들은 각자의 무언가를 제시해 상대방에게 가치를 주고 거래한다.


미용사는 미용기술과 시간을 팔고, 고객은 돈을 지불한다.

카페는 공간과 커피를 제공하고, 애플은 OS와 기기, 감성을 제공한다.


그렇지만 필수적인 건 전부 나왔다.


이제 우린 못 먹어서, 못 입어서, 정말 살 곳이 없어서 죽진 않는다. 이제 우리가 파는 건 못 먹은 거 같은 느낌. 잘 먹은 거 같은 느낌. 잘 입는 거 같은 느낌. 잘 사는 거 같은 느낌. 느낌이다.


건기식 마케팅에서 많이 나오는 문구들이 있다. 정력, 스포츠기능 등등. 필자는 충격먹었다. 그렇게 파는 영양제들이 우리가 근본이라고 하는 가성비 영양제 성분의 반도 못하는 걸 보고.


그들이 파는 건 아르기닌인가? 아르기닌을 먹어서 정력이 세졌다는 느낌인가?


소비자들의 욕구를 창출해낸다는 건 한편으론 멋진 일이지만, 한편으론 허상을 파는 거 같아 의문이다.


3. 돈이 되면 시스템화되고 과장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노포스러워서 가는 가게들은, 이제 프랜차이즈들이 굳이 돈을 들여 가게를 낡게 만들어 소비자를 속인다.

개인의 일기장 같은 먹스타그램은, 이제 그것만 찍어내는 회사도 있게 됐다(쇼츠도 마찬가지다)

웹툰도 이젠 시스템화됐다.


돈을 버는 이들은 늘 돈을 쓰는 이들 위에 있다.

돈이 된다면 예전 소비자들이 좋아했던 감성은 사라지고 만다.

돈이 된다면 뭐든 한다.


4. 마케팅 다큐멘터리라고 해서 보면 가끔 무슨 CMO급이었는데 그렇게 홍보하고 팔아제낀 걸 후회한다고 늘 말한다. 팔아제낀 걸 당당한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는 거 같다. 뭐 이제는 철학에 빠졌다고 철학을 파는 시대니, 그렇게 후회를 파는 건가 의문도 들지만 만약 곧이 곧대로 듣자면 나중에는 이 일을 후회하게 되는 걸까?


사업하는 친구들도 가끔 있고, 자영업하는 친구의 애인들도 가끔 마케팅 어떻게 하는지 묻는다. 그러면 뭐 되도 않는 지식으로 나름 이것저것 정리해서 주긴 하는데. 잠깐, 의문이다.


친구의 애인이 하는 브랜드는 정말 좋은 브랜드인가?

다른 좋은 브랜드들이 숨어있지 않나?

다른 좋은 기술력을 가진 회사들도 많지 않나?


내가 꼭 얘네들 거를 홍보해야 할 이유가 있나? 미래에는 후회될 일이 아닐까?


이 세상에 수백만 개의 브랜드가 있지만 굳이 친구 옷을 입고 다니는 그 사람처럼, 나도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 하면 더 좋게 보는 그런 건가? 나는 정말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건가?


5. 마케터는 파는 사람이지 그 뒤에 얼마나 잘 쓰는지 확인하는 사람은 아닌 거 같다. 그래서 마케팅을 대중화한 사람들이 철학에 빠지는 걸까. 스스로가 한 일이 옳은 일인지 아닌지 의문이 멈추지 않아서.


그래서 만약 무언가를 맡게 된다면 아주 깊이 이야기를 나누고, 내가 흠뻑 빠질 정도로 좋아하게 된 무언가를 홍보하고 싶다. 그런데 또 어떻게 생각하면 내가 만족할 정도로 스토리도 있고 괜찮은 무언가라면 또 사회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일 거고, 그건 또 돈이 잘 안 되는 아이템일 텐데.. 반대로 사회에 도움이 되면서도 돈도 잘 버는 거면 나한테 오진 않을 거고...


이렇게 생각하면 내가 마케팅을 너무너무 잘하게 되서 얻고 싶은 건, 나중에 마케팅을 안 하는 삶일 거 같다. 물론 지금의 짧은 생각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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