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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공남 May 09. 2019

너는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어?

임원이 생각하는 100점짜리 직원에 대해서 듣다.

우리 임원은 정부 관료 출신으로 다양한 경험을 두루 갖춘 인물이다. 가끔씩 직원들과 티타임을 갖거나 독대를 할 때면 과거에 성공했던 사례나 경험담을 들려주시곤 한다. 보통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일이 많지만 한 번씩 툭툭 내뱉는 말씀들이 가슴에 와 닿을 때가 있다. 며칠 전에 임원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자네 직장에서 100점을 맞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가?"


오늘의 저녁 메뉴는 흔히 맛볼 수 없는(내 돈 주고 먹기에는 아까운 고가의 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참치집이었기에 허겁지겁 맛있게 먹고 있던 나는 임원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눈을 마주하며 그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머리를 굴렸다.


씁쓸하게도 보통 관리자급 정도가 되면 임원이 하는 말 한마디가 나의 과오를 지적하는 것인지, 앞으로의 일을 격려하기 위한 것인지, 오늘 함께한 이유가 이 것 때문인지 등을 분석하는 이상한 습관이 갖게 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상급자의 눈치를 보는 것이 습관화된 것이다. 편한 자리는 아니겠구나 싶었는데 역시나..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나는 최근에 실수를 하거나 잘못한 일이 없었기에 생각을 마치고 답했다.


"요즘에 100점짜리 직원이 있기나 한가요? 하하.."


내가 눈치를 보며 말을 건네자, 임원은 눈에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하는 말을 잘 새겨들으면 일하는데 도움이 될 거야. 잘 들어봐. 내가 100점짜리 직원이 되는 길을 알려줄 테니."


혹시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무언가 있었던 걸까 싶었는데 잘못을 질타하려는 의도는 아닌 것 같다. 나는 마음에 안정을 찾고서 순간 자세를 고쳐 잡았다. 어른들이 말씀하실 때에는 경청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예 말씀하세요."


임원은 나를 한번 쓱 보고 말하기 시작했다.


"일을 할 때 말이야. 현재의 이슈와 현안을 잘 정리하는 직원은 몇 점일 것 같아?"


나는 현재 이슈와 현안을 잘 정리하면 자기 업무를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니 못해도 40점은 되겠구나 싶었다. 이 정도 수준도 안 되는 직원들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답을 하지 않았다. 항상 어른들의 말씀을 들을 때는 잘 알아도 모르는 척해야 된다. 내가 모르는 척하고 가만히 있으니 임원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30점이야. 동료들에게 내용을 공유하지 않거나 상급자에게 잘 보고하지 않는 유형을 말하지"


나는 순간 우리 직원 중에 저런 타입이 있나? 생각했다. 확실히 있다. 상급자임에도 관리자의 역할을 자각하지 못하고 보고서만 주야장천 쓰는 유형이. 지금은 그 사람을 꼬집어서 말한 것은 아니었기에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집중했다.


"그다음은 50점인 직원이야. 정리가 잘된 보고서를 가지고 상급자에게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타입이지."


나는 정리가 잘된 보고서를 가지고 상급자에게 알아듣기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50점이라면 나머지 50점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보통 직장에서 업무를 잘 정리하고 윗사람에게 보고를 잘하면 칭찬받지 않나? 이 정도면 우수한 직원에 속하는데 50점이라니 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머지 50점에 대해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70점은 일전에 보고한 일들에 대한 경과까지 설명해주는 직원이고."


나는 다수의 임원을 겪으면서 느낀 것들을 상기시켰다. 보고를 길게 하면 짜증 내는 사람부터 지난 보고 내용을 잊어버리고 다시 물어보는 사람, 관심이 없다는 듯이 결재만 해주는 사람 등 별별 인간상이 다 있었다. 이번에 임원이 들어준 예시는 바람직한 임원의 표본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과거에 보고했던 일이 궁금한 임원이라면 직원이 무언가를 말했을 때, 그것을 알아듣고 기억해낼 수 있는 지적인 능력을 갖췄다는 뜻이다. 어쨌든 나는 그동안에 보고했던 일이 잘 진행되고 있지, 문제는 없는지에 대해서 설명해드린 적이 없었나 생각해봤는데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앞으로는 세심히 챙겨야겠구나 하고 반성했다.


"90점은 앞으로 추진할 계획까지 설명하는 직원이야."


나는 이 말을 듣고는 전체적인 의미를 생각해봤다. 앞서 말했던 현안과 이슈를 정리할 수준이라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안다는 것이고, 추진되고 있는 일을 보고할 정도가 되면 계속 신경을 쓴다는 것이고, 앞으로 추진할 계획을 설명한다면 새로운 무언가를 기획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가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90점까지 받을 수 있다면 훌륭하고 믿음직스러운 직원이 되는 것이고 정말 우수한 직원에 속하는데.. 그렇다면 나머지 10점은 무엇일까? 데코레이션 할 수 있는 그럴싸한 것이 무엇이 남아있나 생각하는 찰나에 임원은 마지막 말을 이어갔다.


"나머지 10점은 앞으로 추진할 계획에 대해서 확신을 주는 사람이야. 1안과 2안을 들고 와서 무엇으로 하면 좋을지 묻는 것은 하수라고."


역시 마지막에 한방이 있었다. "앞으로의 추진 계획에 대해서 이렇게 추진하면 됩니다."라고 상급자에게 확신을 주는 직원이라고? 여기서 확신을 준다는 것은 내가 어떤 사안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책임을 지겠다는 것을 뜻한다. 일이 잘 못되면 징계를 받거나, 그 수준이 심하면 옷을 벗겠다는(직장을 그만두는) 정도의 배짱이 있어야 가능한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High Risk High Return'이라고 진급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임원은 말을 마치고 물을 한 번 마신 뒤에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의미를 잘 파악했는지를 묻는 것 같았다.


"오늘 배우는 것이 많았습니다. 앞으로의 회사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감사의 말씀을 드렸다. 이후로 3시간가량 많은 대화를 하고 식사를 마쳤다. 내게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임원과 직원 간의 관계는 수직적으로서 보고를 받고 보고를 하는 입장이라는 개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였다. 또한 팀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오늘도 무언가 배울 수 있는 하루가 된 것에 감사하며 내일도 무언가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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