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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태현 Aug 06. 2020

말벡에 관하여(3-1)

프랑스에서 쫓겨난 말벡의 기구한 역사

중세 시대부터 프랑스 남서부 로트 밸리(Lot Valley)의 카오르(Cahors)는 힘 있고 짙은 색의 레드 와인으로 유명했다. 당시 카오르 와인은 코(Cot) 혹은 오세루아(Auxerrois)라고 불리는 적포도로 만들어졌는데, 당시에도 얇은 포도 껍질과 낮은 수분율, 질병과 추위에 약한 포도여서 키우기 까다로웠다. 말벡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이 포도는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메를로보다 더 많은 햇빛과 높은 온도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 까다로운 조건이 모두 충족되면, 많은 양의 안토시아닌과 향 성분이 포도 껍질에 쌓이고, 짙은 보랏빛에 자두, 블랙베리 향이 강렬한 레드 와인이 만들어진다.


History & Story
1225년, 잉글랜드의 헨리 3세는 보르도 지자체가 카오르 와인에 세금을 매기는 것을 금지했다. 당시 아키텐 지방에서 영국으로 향하는 모든 와인은 프랑스 최대 규모 항구였던 라 로셸(La Rochelle)을 통했는데, 이때 보르도 외에서 생산되는 와인에 세금을 매겨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곤 했다. 카오르 와인을 무척 좋아했던 헨리 3세는 보르도의 이런 부당한 처사를 막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황 요한 22세(1244~1334)는 미사주로 카오르 와인을 사용했고, 17세기 러시아 제국의 초대 황제인 표트르 대제도 카오르 와인을 즐겨 마셨다고 전해진다.


말벡이라는 이름은 1780년대 이후에 쓰이기 시작했다. 헝가리 출신의 포도 재배자 ‘무슈 말벡’이 보르도에 처음으로 이 포도를 소개했다 하여 이 사람의 성을 따와 “말벡”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직은 하나의 설화에 불과하다. 1780년대 이전에는 프랑스에서 ‘코’(Cot) 혹은 ‘오세루아’(Auxerrois)라고 불렸다.


프랑스 보르도의 말벡
말벡의 진한 색과 강렬한 풍미는 보르도 클라레에 깊이를 더해줄 수 있었다. 보르도의 6개 공식 품종 중 하나로 인정받은 말벡은, 순식간에 보르도 포도밭의 50%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특히 샤토 라투르, 샤토 슈발 블랑과 같은 탑 티어 와이너리에서도 말벡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컸다.


그러나 19세기에 프랑스에서 뿌리 진드기(Phylloxera)가 터지고 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질병에 약한 말벡은 외면받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미국 포도나무 뿌리와 접목한 말벡은 나뭇잎이 너무 왕성하게 자라는 부작용이 있었다. 따라서 나뭇잎을 제거해주는 불필요한 노동이 추가로 발생했고, 이 작업을 시행하지 않을 경우 나뭇잎이 햇빛을 차단해 포도에 충분한 페놀 성분이 쌓일 수 없었다.


그로부터 약 70년이 지난 1956년, 보르도에서 말벡을 지워버린 재앙이 발생했다. 1709년 이후로 프랑스 최악의 봄 서리가 온 것. 며칠 사이에 보르도 전체 포도나무의 1/4이 죽어버렸고, 말벡의 75%가 동사했다. 그 뒤 추위에 약한 말벡은 식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결국 위 두 사건으로 인해 말벡은 보르도에서 깨끗하게 사라진 것이다.


프랑스 남서부의 말벡
카오르(Cahors)에서 ‘Cot’라는 이름으로 재배되고 있고 나머지 아펠라시옹에서는 거의 재배되지 않는다. 루아르 밸리에서도 앙주-투렌 지역에서 ‘Cot’가 재배되고 있지만 극소량에 불과하다.


다음 글은 아르헨티나에 말벡이 정착하게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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