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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tor navorski Feb 11. 2020

우린 투쟁하는 여자가 떠오르나요?

KBS1 시사적격 15화 <겁 없는 여자들>


‘단결’ ‘투쟁’이 적힌 조끼를 입고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모여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외친다.

투박하게 쓰인 플래카드를 걸어두고 그 플래카드 속 구호를 외친다. 

앞, 뒤, 양 옆에 경찰들이 그들을 가로막고 서있다.


광화문 광장 한가운데, 두 위인의 동상 사이에서 천막을 치고, 노숙을 하기도 한다.

옥상, 크레인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하며 며칠 몇 달간 내려오지 않기도 하고,

회사 건물을 점거해 대화를 요구한다.


미디어에서 자주 봤던 노동투쟁의 현장은 흔히 수십, 수백 명의 남성들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런데 중년 여성들이 하나가 되어 필사적으로 투쟁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까.


작년 7월,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1500여 명이 대량해고됐다. 자회사 설립을 통한 고용전환을 거부한 요금수납원 전원이, 일시에 계약을 해지 당한 것이다. 해고 요금수납원들은 본사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즉시 투쟁을 시작했다. 그들은 서울 톨게이트 지붕에 올라가 100일 가까이 고공농성을 벌였고, 이강래 사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며 김천 도로공사 본사를 점거했다. 몇 차례의 면담에도 끝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해고 수납원들은 광화문과 청와대 앞 노숙농성과 집회 또한 이어가고 있다.


<겁 없는 여자들>의 포스터를 봤을 때, 서로의 팔을 동여 잡고 있는 중년 여성들의 모습에 놀라 핸드폰 화면의 스크롤을 빠르게 내리던 손가락을 멈췄다.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며 대치하는 해고 수납원 분들을 서로가 서로의 팔을 잡고 버티며 단호하고 필사적으로 그러나 그 누고 겁먹지 않은 모습이다. 카메라는 이들을 겁먹은 여성들, 혹은 불쌍한 노동자들로 담지 않았다. 포스터 속 여성들은 누구보다 역동적이고 강인해 보인다. 


이토록 역동적인 모습으로 필사적이고 강인하게 싸우며 겁먹지 않은 표정의 중년 여성들을 본 적이 있을까. 그동안 노동현장의 역사를 바꿔 온 노동자들이 있다. 70년대 방직공장에서 ktx 승무원분들 까지. 하지만 이들을 기억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억울한 듯 눈물을 펑펑 흘리거나 울음 가득 찬 목소리로 무언가를 외치는 '여성'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겁 없는 여자들>의 해고 노동자들은 조금은 색다른 모습으로 카메라에 나타난다.


울지 않고 함께 모여 웃으며 수다를 떨기도 하고, 태풍이 몰아치는 날에도 옥상에서 천막을 밧줄로 동여 메며 고공 농성을 이어간다. 중년 여성은 취직도 결혼도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다며 한 겨울의 노숙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도 개의치 않아한다. 가족들의 걱정과 만류에도 뜻을 굽히지 않으며, 끝내 가족들을 설득하고 응원을 받으며 동료들의 곁으로 집을 떠난다.


광화문 화장실에 한 할머님은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는 해고수납원 중 한 분의 모습을 보고는 새댁이 이런 곳에서 씻으면 안된다며, 몰래 찜질방 갈 돈을 주머니에 넣어주고 떠났다. 그 속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분명 머리를 감던 그를 투쟁 노동자로 보지 않은 것만은 확실할 듯하다. 


새댁으로 비치는 그들을 하지만 그들은 '투쟁하는 새댁'을 보여준다. 노숙 중에도 밥을 먹기 위해 신문지로 식탁을 준비하고, 노숙으로 힘들어진 배변 고민을 나눈다. 도로공사 본사 점거가 길어지자 각자 물건을 쌓아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고 그곳을 마을이라 부르며 사이에 생겨나 길을 교차로라 설명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걸레로 잠자리를 꼼꼼히 닦는다. 거친 투쟁의 현장과는 같이 떠오르지 않는 모습이지만.


이들에게 투쟁은 빼앗긴 권리를 되찾는 것을 포함해 사라졌던 자신을 되찾는 모습이기도 하다. 

자신의 목소리를 줄이고,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던 과거에서 나아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희생하고, 누구보다 크게 목소리를 낸다. 


영상 속 해고 수납원분들은 '나이가 들어 취업, 결혼과 같은 걱정이 없으니 무모하게 덤빌 수 있다'고 했지만, 영상을 보는 많은 사람들은 안다. 당당하게 맞서고 도전하지 못하게 막아서는 건, 단순히 취업과 결혼을 넘어 자신이 만든 스스로에 대한 편견의 틀이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이들을 바라보고 기억에 남기는 모습은 눈물을 한가득 흘리며 소리치는 힘없는 모습만을 아니길 바란다. 나 역시도 포기하지 않고 동료들과 힘을 합쳐 강인하게 맞서고 무너지지 않은 투쟁의 모습이 먼저 기억에 떠오를 수 있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그 모습을 일상에서 만났을 때 더이상 놀라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드릴 수 있었으면 한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투쟁하는 남성노동자'가 아닌 '투쟁하는 노동자'의 모습이 되기를.   


톨게이트 해고 수납원들은 한여름에 투쟁을 시작해 매서운 겨울을 지내고 있다. 태풍과 한파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켰고, 금세 포기하게 될 거란 시선을 보란 듯이 뒤집었다. 작년 도로공사는 15년도 이전 입사자를 기준으로 직접고용을 하겠다 발표했지만, 입사 시기와 상관없이 투쟁에 참여한 모두가 직접 고용되기를 요구하며 다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아직 바람이 매서운 겨울이지만,  몸은 차가워도 가슴을 뜨거운 이들이 아직 광화문과 청와대, 본사 앞을 지키고 있다. *법원은 2차례에 걸쳐 '톨게이트 수납원의 원청인 도로공사가 이들을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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