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괴물은 '가출'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져버린 사람들과 이들을 기다리는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을 다룬다. 차라리 시체로 발견되길 바라면서도, 언제든 소식이 들려오면 전국 각지로 찾아 나서는 실종자의 가족들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가족의 죽음과 삶의 회색 지대를 끝없이 배회한다.
실종되지 못하는 실종자와 남겨진 사람들
드라마의 배경인 만양은 연쇄살인이 벌어졌던 곳이다. 20년 전 벌어진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은 신체의 일부분(절단된 열 손가락 또는 열 손가락이 없는 시체)만 발견되었다. 그렇게 20년이 지나고 만양에는 유가족과 실종자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남아있다.
드라마 ‘괴물’의 신하균(이동식 역) 역시 범인에 의해 잘린 열 손가락만 남겨진 채 사라진 여동생을 기다린다. 그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가족은 부서졌다. 기다림을 끝내기 위해, 범인이 숨긴 여동생을 찾기 위해 그는 괴물이 되어 범인을 유인한다. 그리고 만양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기다림을 끝내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동식 돕거나 그의 범죄를 묵인한다.
시청자는 여진구(한주원 역)를 통해 관찰자의 입장에서 기다림 속에 있는 만양 사람들을 만난다. 극 초반 죽은 딸을 기다리는 치매노인의 모습을 시작으로 그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가족을 기다리는 만양 사람들의 고통을 마주한다. 주원이 동식의 범죄를 알고도 그의 추적을 돕는 결정은 앞서 마주한 유가족의 고통을 관찰하던 그가 만양의 고통 안으로 들어가 함께 괴물이 되기로 결정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주원과 함께 시청자도 그 고통을 함께하기 시작한다.
드라마는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드라마의 메시지는 지금 이 사회에 이 드라마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드라마를 제작할 가치이자, tv 채널을 시간을 차지하는 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드라마 괴물의 메시지는 '실종과 남겨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실종 신고되지 못하는 실종자들과 이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유가족)이 고통을 다룬다.
‘괴물’은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감정에 집중한다. 장르물의 특성상 범인을 찾는 과정을 통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괴물’은 피해자의 가족(이동식)을 범인으로 설정해 피해 가족들의 서사에 집중한다. 그 결과 진짜 범인들의 서사보다 피해자 가족인 동식의 고통스러운 감정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장르물에서 서사를 위해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과정이 문제시되지만, ‘괴물’은 선을 잘 지킨 드라마다. 범죄를 저지르는 범인에게 서사를 부여하지만, 그의 범죄를 묵인하지 않는다. 선한 의도의 범죄도 같은 범죄로 다룬다.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인물이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고 반성하는 모습을 정직하게 다룬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수갑을 채우라는 ‘자수’를 통해 법적 대가를 받는 것 또한 빼놓지 않았다. 덕분에 동식을 향한 주원의 감정에 공감하고 동식이 대변하는 현실 속 인물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괴물의 마지막 회에서 울컥하는 마음을 숨길 수 없다. 괴물이 되었지만, 기다림의 고통을 끝낸 동식의 편안한 웃음 앞에 선 한주원이 된다. 안도와 죄책감, 고마움과 안타까움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지만, 붙잡지도 놓지도 못할 것 같은 마음으로.
괴물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큰 화제가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소재를 알 수 없는 성인 실종자는 단순 가출로 처리됩니다, 그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의 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작은 단서라도 발견하시면 반드시 가까운 지구대 파출소에 신고 부탁드립니다”.
어떠한 사회적 문제는, 그 문제를 다루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
대한민국에서 18세 미만의 아동이거나 지적장애, 자폐성장애, 정신장애인 그리고 치매환자가 실종되었을 경우 실종 신고를 접수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유일한 실종법에 포함되지 않는 성인은 실종 신고가 아닌 가출신고만 접수할 수 있다.
지난해(2020년) 성인 가출신고 6만 7천6백12건은 아동 실종 신고의 3 배이다. 성인 실종은 비자발적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우며,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가출 접수 시에도 적극적인 수사와 수색이 어렵다. 이 같은 제도적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가출인이 숨진 채 발견된 경우는 지난 5년 동안 7867건에 달한다. 생사를 알 수 없는 미발견자도 2863명이나 된다. 성인실종법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드라마 괴물 종영 이후(4/10), 실종아동법 개정 간담회가 열렸으며, 성인 실종법의 공백을 다루거나 언급하는 기사가 게재되었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52815190594847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52815025284211
https://view.asiae.co.kr/article/2021041609145052867
https://www.segye.com/newsView/20210523508120?OutUrl=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