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ictor navorski Jul 27. 2021

이 세상 가장 서러운 곳으로부터

풀들은 말없이 기도만 하였다. 쏟아지는 비가 그만 내리기를, 짧은 봄 얕게 내린 뿌리가 흔들리지 않기를. 하늘은 무심하게 계속 물을 쏟아냈고, 미처 단단하게 자리잡지 못한 풀들은 세차게 흐르는 강물에 섞여 멀리멀리 떠내려 갔다.


어느 정도 되면 그치겠지 당연하게 생각했던 비가 아직도 내리고 있다. 산책길로 유명했던   하천 가는 흙탕물이 넘실거리고 있다. 전국의 산사태 경보가 심각 수준이다. 심각은 4단계 경보  가장 높은 단계의 경보 수준이다. 커다랗고 단단한 산이 비를 머금다 못해 진흙처럼 무너져 내릴 거라고 경고한다.  주째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를 보고 있다면 단단해 보이던 산이 무너지는 상황이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산이 무너져 내린 다니, 신기한 마음에 진흙이되어 무너지는 산사태 영상을 찾아봤다.


24시간 에어컨이 돌고 있는 사무실에 앉아 있는 이들은 출퇴근길 바지단이 젖고 제때 빨래를 하지 못하는 정도로 장마를 실감했다. 기록적인 장마가 이어지는 시간에도 일상적인 고민을 이어간다. 장마가 끝나는 날을 기다리며 일상적인 계획세운다.


TV 틀면 재해 소식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누군가는 집을 잃었고, 누군가는 가족을 잃었다. 집을 잃고, 가족을 잃은 이들의 숫자로 재난의 무서움 실감 나게 설명한다. 아니, 기록적인 장마에도 일상을 살아가는, 재난을 실감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전시된다. 습한 날씨에 에어컨 강하게  시무실과 집을 오가는 이들은 tv  울부짖는 이들과 불어난 강물이 쓸어버린  마을의 전경을 보며 재난의 무서움을 실감한다.


‘전문가’들은 각종 연구결과를 설명했다. 그들은 올해에는 폭우가 내년에는 폭염이 내후년에는 한파가 ‘기록적’인 수식어를 달고 올 것이라 말했다. 그 뒤로 매해 갱신되는 기록적인 재난으로 인해 집을 잃고, 가족을 잃고, 직업을 잃은 이들의 숫자가 그래프로 소개되었다. 가장 낮은 곳이 재난으로 사라지고, 그다음 낮은 곳에서, 그다음 낮은 곳으로 이어졌다.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된 재난이 매년 그 위로 위로 올라오며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비가 쏟아지고, 세상이 뜨거워지고, 얼음장 같은 찬바람이 몰려오거나, 땅이 흔들리는 시기마다 그 당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이 사라지고 숫자가 되었다. 숫자가 모여 재난의 위험성을 위로, 위로, 위로 올려 보낸다. 올해도 쏟아지는 비는 바쁘다. 이 세상 가장 서러운 곳에 별똥별 씨앗을 하나 밀어 올리느라.


2020년 7월

작가의 이전글 엄마와의 드라이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