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올림픽은 스포츠로 대신하는 국가 간의 경쟁이었다. 미디어 또한, 올림픽을 단순한 스포츠 경기가 아닌 국가 간의 대항전으로 다루는 경향이 강했으며, 선수들 역시 국가를 대표해 전쟁에 나가 싸우는 듯한 정신력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국가주의 아래서 올림픽은 과정보다 결과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선수 개인의 경기 과정보다 메달 개수, 특히 금메달 개수가 결과로써 국가의 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2020 도쿄올림픽을 즐기는 우리는 모습에서는 결과에 대한 기대가 희미해졌다. 여전히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대표선수들을 응원하지만, 과거와 달리 다수의 국가 사이에서 최고의 자리에 선 선수를 통해 국가의 위상을 만끽하기보다는 한 사람의 노력과 그 노력이 거두는 성취를 응원하는 마음이 전면에 드러났다. 그 결과 결과보다 과정에 주목하는 스포츠의 본질이 다시 올림픽의 메인 키워드가 됐다. 메달과 상관없이 경기에서 최선을 다한 과정이 더 많이 언급되었다. 여자배구팀, 우하람, 우상혁 선수들이 화제가 되었던 것은 올림픽을 즐기는 달라진 태도다.
승패와 상관없이 선수들이 노력한 과정에 주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올림픽을 다루는 미디어와 새로운 해설위원의 역할이 컸다. ‘아쉽다’는 말이 중계에서 사라졌다. 승패라는 결과보다 경기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투혼을 조명했다. 메달권에 들지 못해도 선수 개인 거둔 기록의 가치를 언급한다. 아쉬운 동메달 대신 여자 체조 최초 메달 획득을, 아쉽게 메달권에 진입하지 못했다는 말 대신 한국 최고 기록 달성, 한국 최초 올림픽 결선 진출 등 승패라는 결과에서 보이지 않는 의미를 언급했다. 5년간 이어진 선수들의 노력은 그렇게 결과가 아닌 최선으로, 투혼으로, 땀과 눈빛으로, 후회를 남기지 않은 웃음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바라보는 관점은 우리가 처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최선을 다해도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하는 현실이 당연해졌다. 태어나 한 번도 경제성장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가 어느새 성인이 되어가고 있다. 전 국민과 사회를 뒤덮은 성장의 결과와 그 분위기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현실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도 좋은 결과가 뒤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매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결과로써 증명해야만 인정받는 현실에 지친 이들의 마음이 올림픽에 모였다. 결과보다 과정을 바라보는 마음은 어쩌면 각박한 사회에서 결과에 가려 빛을 잃은 나의 최선도 위로받길 바라는 마음과 맞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신체적 한계와 비인기 종목의 부족한 지원에 최선을 다한 선수들을 모습에 환호했다. 98년 만에 올림픽에 진출한 한국 럭비 대표팀은 부족한 실력으로 단 1승도 기록하지 못했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이들의 도전은 ‘아름다운 꼴찌’로 기록되었다. 첫 경기 상대였던 뉴질랜드는 세계 최강팀이며, 럭비는 뉴질랜드의 최고 인기 스포츠다. 그에 비해 한국에서 럭비는 비인기를 넘어 비인지 스포츠다. 인기를 논하기 전에 알고 있는 사람 자체가 적다. 그 결과 두 팀의 실력차는 분명했다. 한국의 득점 시도는 번번이 막혔고, 검은 경기복을 입은 뉴질랜드 대표팀은 날개를 단 듯 경기장을 달렸다. 하지만 패색이 짖은 경기에도 온몸을 내 던져 공을 안고 달리는 선수들의 모습은 감동을 넘어 위로가 되었다. 인기 스포츠와 비인기 스포츠의 차이가 만든 기울어진 운동장은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았다. 이미 시작부터 패배할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에게 우리는 매일매일 최선과 좌절을 오가는 우리들의 현실을 투영한다. 그 마음은 럭비경기장에도, 육상경기장에도, 배구경기장에도, 클라이밍 경기장에도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