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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tor navorski Aug 31. 2021

뚱땅 뚱땅 피아노 연습기

피아노 치는 비트 위의 나그네


악기를 잘 다루고 싶다는 오랜 꿈이 있었다. 한 편으로는 취미와 특기로 더 이상 독서와 영화감상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았던 시절에는 악기를 배울 시간은 없었기에, 하고 싶은 일이 많이 사라진 지금에서야 피아노를 배워보기로 했다. 많은 악기 중에 피아노를 고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조성진의 센세이션 한 연주에 마음을 빼앗기진 않았다.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베토벤 교향곡으로 위로의 말을 대신하는 피아니스트식 대화에 홀린 것도 아니다. 어쩌다 유튜브에서  유희열의 연주나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의 신명 난 연주를 보고도 피아노를 배우겠단 생각을 하진 않았다. 그러나  사사로운 모든 순간이 쌓이고 쌓여 문득 피아노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재미있지는 않았다.’ 문장을 시작해야   같지만 놀랍게도 처음부터 좋았다.

가끔은 정말이지 상상만큼 처음부터 좋은 것들도 있을  있다. 그게 피아노 소리일 줄은 몰랐지만.


피아노를 배우는 연습실에는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가 있다. 키보드가 아닌 그랜드 피아노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몇 주는 커다란 몸체에서 뚱-하고 울려 퍼지는 소리가 좋아서 열심히 수업에 갔다. 낮은음에서는 ‘뚱’- 높은음에서는 ‘땅’-하고 소리가 울린다. 자주 연습을 할수록 손가락에 근육이 생긴다. 조금만 힘을 줘도 무너져 내리는 관절 인형 같은 내 손가락에도 힘이 생겼다. 친구들이 복근에 팔과 다리와 등에 근육을 만들 때 나는 손가락 첫마디에 소소한 근육을 만들고 있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자 더 멋진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둥둥’ 하던 소리가 ‘뚱뚱’ 정확한 음을 낸다. 레가토, 스타가 토, 메조피아노, 포르테, 악보에 적힌 기호에 길이와 크기를 달리해 ‘뚱 땅 뚱 땅 두두웅 뚜두웅’ 울리는 소리가 매력적이다. 페달을 밟기 시작한 뒤로는 ‘뚜우웅’ 길에 퍼지는 소리에 감격하다 박자를 놓치는 일이 종종 생긴다. 특히 낮은 음역대에서 웅장한 소리를 내고 사라지는 음들이 좋다.


악보를 읽고, 손가락에 힘을 주어 정확한 소리를 내고, 페달을 밟기 시작했을 때 박자기를 켰다. 그리고 깨달았다. 피아노를 치며 느끼는 최고의 짜릿함은 박자를  라는 걸.

딱딱 딱딱’ 박자기 소리를 배경으로 박자를 타며 건반을 눌러 소리를 내면,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는 출연자가  기분이다. 랩핑 대신 손가락과 피아노로 박자를 탄다. 쪼개고 쪼갠 음표와 쉼표로 얼룩진 마디를 박자기 소리에 맞춰 연주할 때면 화려한 래핑에 환호하는 관중이 되어 내적 환호를 내지른다. “내가  박자를 탔다니!” 피아노를 치면서 박자를 쪼개 래핑을 하고 춤을 추던 이들이 자꾸 떠오른다. , 비트 위의 나그네가 되어가고 있다. 힙합 음악을 들으면 피아노가 치고 싶어 진다. 한참 틀어두었던 박자기를 끄면 어느새 환청처럼 딱딱 딱딱 박자기 소리가 울린다. 머릿속에 울리는 소리 위에 피아노 소리를 더하면 이 순간 만을 위해 연습할 가치가 있다고 느껴진다.


페달의 즐거움을 빼놓을  없다. 페달을 밟으며 느끼는 음의 변화도 짜릿하지만, 페달로 박자를 타는 느낌이 제일이다. 페달을 정확히 사용하기 위해서는 건반을 누른 뒤 페달을 밟아야 한다. 피아노 건반을 정확한 박자에 맞춰 누른다면, 페달을 뒷박을 타며 누르게 되어있다. 나는 비트 위의 나그네가 되어 건반을 누르고, 탭댄서처럼 발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왜 아무도 말을 안 해줬을까 피아노가 종합예술이라고. 뒷박을 타며 발을 자연스럽게 까딱-까딱-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 또 갑자기 감격한다 ‘내가 뒷박을 타고 있다니.’ 그렇게 집중력을 잃고 틀려버리고 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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