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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tor navorski Oct 12. 2021

가을이 오면 필요한 노래

가을 아침, 가을 산책을 즐기자. 그리고 가을의 외로움을 견디자.

누군가 나에게 가을이 느껴지는 순간이 언제인지 묻는다면 주저 없이 가을 아침이라고 말할 것 같다.

어느 날 문득 다가온 가을 아침은 살결에 느껴지는 서늘함과 눈에 보이는 청명한 하늘 그리고 놀랍도록 산뜻한 냄새가 함께한다. 그리고 '가을 아침'은 단연코 이 모든 것이 느껴지는 노래이다. 너무 진부하지만 그렇다고 빠질 수도 없다.



이른 아침 작은 새들 노랫소리 들려오면

언제나 그랬듯 아쉽게 잠을 깬다

창문 하나 햇살 가득 눈부시게 비쳐오고

서늘한 냉기에 재채기할까 말까

눈 비비며 빼꼼히 창 밖을 내다보니

삼삼오오 아이들은 재잘대며 학교 가고

산책 갔다 오시는 아버지의 양손에는 효과를 알 수 없는 약수가 하나 가득


가을을 느끼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은 듯한 하이퍼 리얼리즘 가사말도 명작이지만, 이 노래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무반주로 시작하는 첫 7마디이다. 이 부분은 양희은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아이유의 가을 아침에서도 변하지 않는 핵심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아이유의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무반주 7마디가 가지는 매력을 현대의 녹음기술로 더 극대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아이유 특유의 맑고 서늘한 음색이 힘을 발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기도 한다.


가을에는 이상하게 아침 일찍 깰 때가 많다. 찌는듯한 열대야에 잠 못 이루던 여름에 점점 익숙해질 때쯤 찾아오는 가을의 냉기가 낯설어서인지 깨끗하고 상쾌한 아침 공기가 반가워서 인지 아니면 그저 사라진 더위에 푹 자고 일찍 깨어버리는 신체의 신비 때문인지. 아침 일찍 개운한 마음으로 일어나 한결 상쾌해진 아침 공기를 맡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또, 가을 아침은 조용하다. 물론 제일 큰 이유는 평소보다 일찍 깨어버린 것과 기분이 좋은 몇 안 되는 날들에 주위 소음조차 긍정적으로 느껴져서 이지만, 더위와 소음이 함께 사라진 듯 유난히 아침의 고요함이 크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가을 아침'의 첫 7마디는 그렇게 서늘하고 조용하며 상쾌하고 깔끔하며 기분 좋은 가을 아침이 가장 잘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아이유의 가을 아침이 이 점을 더 극대화했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빵빵한 에코 때문에 조금은 춥게 느껴지는 가을 아침이 잘 떠오르기 때문이다. 반면 원곡의 가을 아침은 현장감이 장난없다. 양희은의 첫마디가 시작되기 전부터 알 수 없는 현장음이 먼저 들리는데 가을 아침에 일찍 잠에서 깨어 조용한 방 안에서 들뜬 기분에 핸드폰 녹음기를 켜고 가을 아침을 부른다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어 진다. 지구온난화로 가을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가을 아침'은 숨이 다하는 날까지 가을이 찾아오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노래일 것이다. 가을 아침을 더 가을 아침답게 만들어주는 노래니까.


 


또 한 번 가을이 들어간 노래를 고르면 분명 진부하게 느껴지겠지만, 어쩔 수 없다.

이상은 '가을 수채화'만큼 산뜻한 노래는 없으니까.


깊어간다고

가을이 깊어 간다고

높아지고

높아지는

물빛 파란 하늘


서늘한 가을 아침 공기를 만끽하며 듣기 좋은 노래가 가을 아침이라면, 가을 수채화는 길바닥 가득 깔린 노란 은행나뭇잎은 밟으며 걷는 가을 산책길에 어울리는 노래다. 기타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바이 올리는 더더욱 아닌, 어쨌든 노래를 지배하는 '차르르르륵'한 악기 소리를 들으면 바람에 휘날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리고 비현실적으로 노란 비단 같던 가을날의 보도블록을 걸으며 공상에 빠지던 순간과 중간중간 톡톡 발에 밟히던 냄새나는 은행조차 재미있던 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여기까지 적다 보니 어쩌면 가을에는 이상은과 같이 맑고 서늘한 음색이 잘 어울리는 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이미 맑고 서늘한 아이유 음색이라고 말하지도 않았던가?




마지막은 그래도 가을이란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 곡을 고르려 고심했다.

어떤 곡을 쓸까 긴 고민 끝에 고른 곡이지만, 이제 보니 그냥 좋아하는 곡을 소개하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마지막 곡은 신해철의 안녕이다.




선물가게의 포장지처럼

예쁘게 꾸민 미소만으로

모두 반할 거라 생각해도

그건 단지 착각일 뿐이야

부드러운 손길 달콤한 속삭임

내가 원한 것은 그것만은 아니었지

내가 사랑한 건 당이 아니야 네 환상일 뿐



앞서 소개한 두곡의 형식에 맞춰 가사말을 썼지만, 사실 이 곡에 빠져드는 시간은 5초면 충분하다. 뚜뚱뚜뚜 뚜뚜뚜 뚜두둥- 베이스 분명 이건 베이스 소리다. 이 미쳐버린 베이스 라인은 '어쩌다 마주친 그대' 만큼 절묘한 리듬감에 마음을 뒤흔들지는 않지만 어쨌든 베이스... 그거 나도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 똑같다. ;) 이쯤에서 갑자기 너무 708090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대체 베이스 소리가 뭔데 싶은 분에게는 마지막으로 산울림의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까지 언급해두고 싶다. 싱어게인 이승윤의 그 곡이 맞다. 물론 앞선 두곡에 비해 '반주가 언제 끝나는 거지' '이 불쾌한 일렉기타 사운드는 뭐지' 싶지만 자꾸만 생각나는 음악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은 가을이 느껴지는 곡을 소개하는 글이기에 다시 신해철의 안녕으로 돌아오자면, 이 곡은 그냥 기분이 좋아지는 곡이다. 마치 청명한 가을날 지루한 수업을 끝내고 하굣길에 마음 상태를 표현한 느낌이랄까. 숨기려는 마음과 달리 자꾸만 가벼워지는 발걸음과 신나 버린 마음에 집으로 갈 수 없는 그 계절 그 시간 그 상태로 순간 돌아간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사는 잘 들리지 않는다. 3분 32초간 그저 뚜뚱 뚱뚱 뚜뚜뚜 뚜두둥 반복하는 베이스라인에 심장을 맡겨버린다. 상쾌한 가을 날씨에 빠져버려 친구와 큭큭 캭캭 웃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고 또 걷게 되는 하드코어 가을 산책에 어울리는 곡이다.






이대로 끝나버리기엔 이 글을 준비하며 골라둔 곡들이 너무 많아 마지막으로 한 번에 소개하고자 한다. 아마도 다음 계절까지 더 이상 가요를 소개할 일은 많지 않을 것 같기에.


샤이니 JoJo

누구나 계절의 기억을 담은 앨범이.. 적어도 노래 한 곡이 있다고 생각한다. 샤이니 JoJo는 가을에 발매되어 가을의 기억을 담고 있는 곡 중 하나이다. 링딩동이라는 한 시대를 풍미한 타이틀 곡을 담은 앨범의 수록곡인 JoJo는 가을과 연관 지어 말할 만한 특징 있는 곡은 아니다. 단지 어느 날 JOJO를 듣다 너무 들떠버린 마음에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공유한 적이 있는데, 같은 시절은 보낸 친구들에게 연이어 답장이 왔다. 그 시절의 가을이 생각난다고. 가을 아침 학교 가는 버스에서 kpop 팬이라면 누구나 JoJo 한번씩은 들었으니까.



이소라 track9

이소라 7집에 수록된 9번째 트랙이다. 가을을 떠올리면 산뜻하고 청명한 날씨에 몽글몽글했던 감정이 먼저 떠오르긴 하지만, 사실 행복에 젖어있던 날들만큼 가을바람에 슬픔을 느꼈던 날들이 더 많다. 가을의 찬바람이 느껴지면 꼭 일 년의 끝이 다가왔다는 사실에 갑자기 조급하고 허무하며 외로워질 때를 생각한 선곡이다. 분명히 과학적으로 찬바람은 사람을 센티멘털하게 만든다.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도 그대를 기다리다 바람에 날려가는 노란 은행잎을 보고는 갑자기 감성에 젖지 않는가. 우연한 생각에 빠져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고민하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이 홀로 설 수 있을지 걱정하기에 이른다. 가을에는 그냥 불어오는 찬바람이 당황스러워서, 알 수 없이 기분이 다운되며, 설명할 수 없는 외로움에 빠지는 거다. 그래도 그 괴로움이 감성을 넘어 힘에 부쳐질 때가 있으니. 그때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갖춘 헤드폰을 쓰고 세상 모든 것에서 벗어나 track9를 들으며 펑펑 울고 털어내자.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걷고 말하고 배우고 난 후로 난 좀 변했고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화나게 하고

당연한 고독 속에 살게 해

Hey you, don't forget 고독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살아가

매일 독하게 부족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흘러가


나는 알지도 못한 채 이렇게 태어났고

태어난지도 모르게 그렇게 잊히겠지

존재하는 게 허무해 울어도 지나면 그뿐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강하게 하고

평범한 불행 속에 살게 해


Hey you, don't forget 고독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살아가

매일 독하게 부족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흘러가


Hey you, don't forget 고독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살아가

매일 독하게 부족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흘러가


이 하늘 거쳐 지나가는 날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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