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 사표를 냈다
이른 아침. 날씨는 화창했지만 머리가 아팠다. 키가 190센티가 넘는 남동생은 어린아이처럼 소리 지르며 보채기 시작했고, 나이 든 부모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달랬다. 나는 짜증과 한숨으로 '다녀오겠습니다'는 짧은 인사를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채 얼른 집을 나왔고 누구보다 먼저 회사 사무실에 도착해서 창을 열고 불을 켰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 안. 책상에 앉아 커피 한 모금을 마실 때 나를 감싸고 도는 잠시 동안의 고요를 무척 좋아한다. 한 달 동안 나눠서 읽고 있는 책을 가방에서 꺼내 펼친 후 기억을 더듬어 이전 내용과 이어 붙이기 시작했다. 단수된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주인공은 덤덤하게 불행을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거짓말 같은 홍수로 인해 아픈 엄마를 잃어버려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 발버둥 쳤고, 굶주림과 체력 고갈로 의식을 점점 잃어가는 장면에서, '삑' 카드 찍는 소리와 함께 동료들이 하나 둘 문을 열고 인사를 했다.
"굿모닝"
나는 잠시 눈을 맞췄던 그와 그녀의 표정이 어땠는지 읽어내지 못했지만 책을 얼마간 더 응시했고, 주변 소리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지자 익숙하게 메일함을 확인했다. 눈에 띄거나 읽고 싶은 제목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미개봉 상태로 몇 개 지우고 나서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을 때, 휴대폰이 진동으로 떨렸다.
'아들, 오늘도 화이팅. 언제나 고마워.'
엄마가 문자를 보냈다. 영화를 하겠다고 갑자기 선언했을 때, 유일하게 나의 편을 들어주던 엄마였다. 여동생은 왜 그렇게 철이 없냐며 자신이 이 집 가장인 듯 조곤조곤 나의 말을 반박하며 불만을 토로했고, 아침에 일어나면 소리부터 지르는 자폐를 앓고 있는 남동생은 아빠의 큰 목소리가 싫어서 인지 날카롭게 날아오는 꾸중에 덩달아 삿대질을 하곤 했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미안해.
사랑해.
이 말만 반복했다. 그런 사실이 더 짜증이 나서 유일한 아군인 엄마의 간절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작정 뛰쳐나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작은 대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하게 되었다.
이후 내가 바랬던 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2년이 흐르자, 나와 우리 가족은 이미 어긋나 버린 나의 운명을 두고 왈가불가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서로는 할 수 없이 화해를 했고 나는 졸업과 동시에 집안 경제를 위해서 취업을 하겠다는 공약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통과의례처럼 지원했던 회사에 운 좋게도 들어갈 수 있었고 인사담당자는 나를 운송부에 배치하면서 한마디를 남겼다.
"영화 같은 회사를 만들어 봅시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피로가 밀려왔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 둘이 아니었다. 해결이 가능할지도 의문이었다. 원래 삶은 그렇게 덜컹거리면서 어떻게든 굴러가는 것이다며 일부러 일을 남겨 두고는 몸을 뒤로 젖히고 책상 구석 한 켠에 뒤집어 던져둔 폰을 잠시 들었다. 엄마와 친구들이 보낸 메시지 틈 사이에 낯선 연락처가 보였다. 스팸인가 하고 열어보니,
'복권 당첨을 축하합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갑을 뒤져 보니 다행히 복권이 있었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당첨 번호를 찾아보니
3, 8, 12, .....
나는 곧장 부장님께 달려가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말씀드리고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밖으로 나왔다. 차 안에서는 소리를 연신 내질렀다. 이게 무슨 일인가. 그저께 밤에 맥주 사러 갔다가 터지면 대박. 올해부터 새로 발행되는 연금복권에 많은 관심과 호응을 바란다는 계산대에 붙어 있던 문구가 거슬려서 호기심으로 샀는데... 인생이 바뀌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뺨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얼른 집으로 달려가서 내 평생의 우군인 엄마한테 이 소식을 전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다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쓴 시나리오로 멋진 영화를 만들어 보겠다고 결심했다. 이 다짐과 함께 복권 당첨 소식을 가족에게 전했다. 엄마는 그냥 울기만 하셨고, 아빠는 어느 때보다 내가 자랑스럽다고 연신 등을 두드렸으며, 남동생은 그런 나를 보고 한 번 웃고는 거실을 뛰어다녔다. 그리고 여동생에게 전화했다.
"우리 조카 그렇게 가고 싶다던 디즈니랜드 당장 가자!"
복권에 담청 된 어느 영국 청년의 기사(사표 던진 아마존의 직원)를 토대로 지어낸 허구입니다. 우리나라는 복권 및 복권기금법에 의해서 임대주택 건설 등의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과 국가 유공자 지원 사업 등의 복지 사업을 위한 재원 확보 수단으로 운용되고 있습니다. 이 법에 따르면 청소년은 구매가 불가능 하고 판매자는 최종 구매자 1인에게 10만원 한도 내에서 현금으로만 판매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또, 이 기사의 말미에는 복권 당첨 이후 인생이 피폐해진 사례 몇 가지를 들고 있으며, 이것들은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간다.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는 교훈처럼 복권 당첨 소식에 대한 보통 이들의 시기와 질투가 사행성 조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빠르게 소멸될 수 있도록 회자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인생은 한방이다라고 하는 이들은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온다고도 말하고는 합니다. 불행히도 우리 와이프는 매주 발표일이 되면 우울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