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울출장

by 랩기표 labkypy

세상에는 여러 가지 삶이 있지만,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결국 내가 직접 겪어보는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이런저런 예측과 공감이라는 형식을 통해 그것을 평가하거나 엿보려 하지만, 정작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이해하는 세계, 자신이 지닌 지식과 경험 안에서 만들어낸 예측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안다고 자각하는 것’ 자체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 스스로 알고 있다고 착각한 채 아는 척하다가는, 그 세계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기도 전에 이미 그 앞에 스스로 높은 담을 쌓아버리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갇힌 체계 안에서 갇힌 생각으로, 결국 우물 안 개구리밖에 되지 못한다.


최근 서울 출장을 다녀왔다. 몇 날이 지나 돌이켜보니, 그 공간이 주는 특이함보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거제에 살았다면 쉽게 경험하지 못할 클래식 공연과 전시를 보았다. 두 경험 모두 간접적으로는 즐기던 장르였지만 직접 접하기는 어려운 것들이었다. 이번 기회에 눈과 귀를 넘어 온몸으로 그것을 느꼈다. 그러나 결국 내게 돌아온 것은 그 작은 이벤트의 의미심장함보다 내가 매일 눈을 뜨고 잠들기 전까지 이어지는 어떤 ‘습관적인 하루의 일상’이 가진 위대함을 더욱 감사하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매일 읽고 쓰는 일, 좋아하는 음악을 귀에 감길 정도로 듣고 흥얼거리며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그 흐름 자체가 너무나 소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창작자의 반열에 들어서거나 세상이 부여한 역할이 아닌 내가 스스로 만든 정체성을 지켜가려면 필수적으로 고요한 고독과 찬란한 외로움이 따라붙는 법이라고. 그렇다면 어쩌면 지금처럼 버겁지 않은 삶을 살아내는 이 순간이야말로 최적의 시간이 아닐까.


여하튼 출장길은 즐겁기도 했고, 다시 한 번 감사함을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리는 진짜 안전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