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밥심'
이미 아프게 겪었던 죽음들을 다시 제대로 애도할 기회를 갖는 동시에, 언젠가 이런 커다란 상실을 마주했을 때, 시간을 들여 요리한 칼국수를 맛보고 씹고 삼키는 행위에만 온전히 몰두하며 추상적인 고통이 마음에 그어놓은 어지러운 선들을 지워내고 구체적인 감각으로 삶을 채워가기 시작했던 정연을 떠올리며 어떤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쌓아둔다.
조해진 작가의 [겨울을 지나가다] 소설 초반부에 김혼비 에세이스트가 소설에 대해 쓴 글을 보면 위와 같은 구절이 나온다.
소설 주인공인 정연은 '요리한 칼국수를 맛보고 씹고 삼키면서 '고통'이라는 추상적인 아픔을 지워내고 구체적인 감각으로 삶을 채워나간다.'
밥심이라는 말은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밥이라는 건, 그 찰나의 맛을 위해서 한 달 전의 예약을 감수하고, 무더위에서 두시간의 웨이팅을 감수하는 간절한 사치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오늘 하루도 얻어맞은 나를 위한 작은 보상이며, 누군가에겐 앞의 모든 것들이 그저 사치로 보이는 생존 수단이고, 마음의 고통으로 삶과 죽음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에게는 다시 삶으로 한 발짝 들이게 해주는 입장권 같은 것이다.
요리하는 자취생이 대단하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닌것처럼, 혼자 자취를 하게 되면 제대로 된 한 끼를 챙겨먹기가 힘들다. 특히 바쁘다바빠 현대사회에서는 배달로 한 끼를 떄우거나, 집에 잘 들어가지도 못해서 밖에서 세 끼를 모두 해결할 때가 다반사다.
나는 20대 초중반에 몸 한 곳의 건강이 안 좋아, 정기적으로 조직 검사를 받고 정기 검진을 하며 혹시 조금이라도 건강이 어긋나서 인생이 불행으로 점철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현실에 치여 나를 위한 밥 한끼조차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 적이 많았다.
그랬던 내가 교환학생을 하러 스페인 남부로 떠나게 되었는데 그 때 나를 위한 한 끼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은 적이 있다.
적어도 내가 어느 정도 철이 든 이후로 그만큼의 자유 시간은 나에게 처음 주어지는 것이었다.
성향상 다른 학교에서 온 학생들과 파티를 하고, 술을 마시며 어울리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던 나는 자연스럽게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늘었다.
우리나라처럼 정해진 양이 포장되어 있지 않은 재료들이 많아서 내가 원하는 만큼 재료를 사는 것이 가능했기에(원하는 만큼 체리를 담고, 원하는 만큼 양파 1알만 사는 것도 가능했다.) 신선한 재료를 구매하기 위헤 거의 이틀에 한 번씩 나를 위한 장을 봤다.
고기는 동네 정육점이나 집 바로 앞에 있는 메르까도나에서, 과일이나 야채는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다른 슈퍼마켓에서, 품목마다 장을 보는 곳도 세분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매끼니마다 직접 양파 껍질을 까고(깐 양파가 없었다..) 생닭고기를 잘라서 볶고, 야채와 고기들을 한데 넣고 스튜를 끓이고, 맛있고 신선한 과일들을 그릇에 담아 곁들였다.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를 하고, 먹고, 설거지를 하고 주방 청소를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시간도 노력도 많이 드는 행위였지만 마음도 시간도 여유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그 떄 나를 위한 정성들인 한 끼가 얼마나 중요한 지 처음으로 꺠달았다.
나도 아마 그 떄 그 일련의 행위들을 하며 걱정으로 점철되어있던 나의 삶을 다시금 비우고 구체적인 감각으로 나의 삶을 채워나갔던 것 같다.
어느덧 노동을 하는 사회의 구성원이 된 지금도 나를 위한 한 끼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을 때 스페인에서의 그 때를 떠올리며 내 삶이 그저 건강하지 않은 것들로 채워져 흘러가지 않도록 경계하곤 한다.
그 한 끼는 반드시 내가 직접 요리한 음식이 아니어도 좋다. 당연히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에서 직접 요리한 한끼를 매끼니 보장하는 것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일이다.
다만, 일주일에 한 번은 직접 나를 위해 요리한다거나, 그저 회사 앞의 식당, 위장에 채워넣는 배달 음식뿐만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나만의 식당, 골목을 탐방하다가 발견한 식당, 꼭 찾아가고 싶었던 식당 등 어찌되었건 나를 위한 음식을 나에게 대접하곤 한다.
이런 나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당신과 당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위한 한 끼를 대접하기 위해 어떤 음식에 진심인 공간들에 대해 알아갔으면 좋겠고, 그게 내가 다양한 F&B 브랜드 및 공간들을 소개하고 기획하고 싶은 이유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