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냥 혼자 살아야겠다.
고백하자면 나도 내가 버거울 만큼 초예민하고,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었다. 지금이야 이런 나를 데리고 살다 보니 적당한 타협점을 찾았지만 그를 만난 첫해인 32살의 나는 나도 내가 버거웠다. 타고난 것이 없어 바등바등 발악했던 것 같다.
가장 가까운 엄마와 언니와도 라이프 스타일이 잘 맞지 않았다. 다행히 부처 같은 엄마와 K장녀인 언니는 이런 나를 이해해 주고 보듬어 줬다. 아빠와 남동생은 이런 나를 안쓰럽게 쳐다볼 뿐이었다.
결혼에 회의적이었다. 초예민 까칠 보스인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삶이 힘들어지는 걸 원치 않았다. 평생을 함께 한 가족과도 맞춰가기 버거운데 남과 짧은 시간 만난 후 앞으로 살아갈 시간, 최소 50년을 함께 한다니... 이건 도박이라고 생각했다.
가족은 선택할 수 없다고들 한다. 그럼에도 그중에 유일하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배우자.
평생 남으로 살다가, 짧은 시간 알아간 후 부모님보다 형제보다 더 오래 살아간다. 남이, 평생을,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사람이 되는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너무 무서운 일이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과도 성향, 취향, 라이프 스타일이 안 맞는데, 유년시절 내내 붙어있던 언니와 남동생과도 너무 다른데... 남과 평생을 살아야 한다니. 무섭다. 그 사람을 잘못 고를까 봐. 나쁜 사람을 만날까 봐.
후배들이 자주 말한다. 어떻게 형부같이 다정하고 세심한 사람을 만났냐고. 그럼 나는 대답한다. 운이 좋았다고... 그는 나에게 로또이고, 잭팟이라고... 그 걸로 밖에 설명이 안된다고 말한다. 만약 남이었던 이 사람이 그대로 남으로 남았다면 어땠을까, 또는 남이 남편이 되었는데 나를 견디지 못하고, 내가 그를 견디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남과 결혼했다.
패를 까보기 전까지는 그 "남"이라는 사람이 든 패를 모른다. "결혼"이라는 것을 한 후에야 비로소 그 패가 까발려진다. 저 사람은 어떤 패를 갖고 있을까. "광"이라고 생각했는데 "똥"이면 어쩌지?
.
.
.
.
.
애니웨이, 근데 저 사람은 나를 "광"으로 여길까? "똥"으로 여길까? @@
PS1. 다음 편은 남과 결혼해서 고군분투하는, 신혼의 박 터지는 부부싸움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PS2. 구독과 좋아요, 댓글은 작가 꿈나무인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