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합격
합격이다. 세상에, 결국 해내는구나. 이게 얼마만에 느껴보는 성취감인가. 핀란드 석사 프로그램 9곳에 지원해 3곳에서 합격 메일을 받았다. 가장 가고 싶었던 세 곳이었는데 모두 오퍼를 받아 그저 기쁘다. (비록 나머지 6곳은 떨어졌지만. 허허.) 좌우간 진심은 힘이 있는 건가.
그런데 최종 선택은 의외로 쉽지 않았다. 헬싱키대학의 한 프로그램에서 50% 장학금으로 오퍼를 받은 것이 변수였다.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아니었지만 커리큘럼의 결이 나랑 잘 맞다고 생각했던 프로그램이었다. 다만 경쟁이 치열해 보여서 '설마 내가 되겠어' 하며 지원했던 곳. 가장 가고 싶었던 프로그램을 100% 장학금으로 붙고도 헬싱키의 그 프로그램이 밟혀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조건 좋은 남자랑 잘 되어 가던 중에 취향이 너무 잘 맞는 남자가 대시를 해 온 기분이랄까. (이런 비유여서 송구하지만 thㅏ랑과 연애도 주요 관심사 중 하나이니 이해해주시길.) 근데 역시나 나는 취향을 선택하는 쪽이다. 뭐랄까, 책장에 꽂힌 책들에 대해서 하나 하나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어떤 질문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인지 알아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헬싱키 대학의 Contemporary Societies(현대사회) 석사 프로그램을 최종으로 선택했다. 5월 초에 선택을 마쳤고, 부랴부랴 등록금을 송금하고 핀란드 거주허가증을 신청했다. 지금은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가지며 이 글의 최종편을 쓰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관심사에서 시작된 여정이 현대사회 석사라는 의외의 지점에서 마무리되었다. 현대사회 석사에서 시작되는 여정은 또 어떤 지점에서 마무리될까. 두려움과 설렘이 잔뜩이다. 대체로 닥쳐올 어려움을 생각하며 두려워하는 쪽이긴 한데, 최대한 멈추려고 한다. 어차피 소용이 없다. 어려움은 늘 예상을 벗어난 지점에서 생기기 마련이고 혹 예상한 지점에서 생긴다 한들 어려움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러니 일단은 맘껏 설레자.
직장인, 유학갈 수 있을까? 물론, 갈 수 있다. 직장인이어서 더 갈 수 있었다. 직장에서 정말 많은 걸 배웠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물어보는 법, 맨땅에 헤딩하는 법, 돈 허투루 쓰지 않는 법, 각종 인간 군상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법, 등등. 인생의 이런 중요한 기술들을 학교에서는 결코 배우지 못했다. 그러니 삶에 자신감이 좀 붙었던 거 같다. 내가 직장에서 (심지어 K직장에서) 이렇게 잘하고 있는데 뭔들 못해! 하는 마음으로. 물론 직장 덕에 자금도 마련할 수 있었고 이는 생각보다 큰 동력이 되었다. 그러니 누군가 늦다고 말할 수 있는 이 타이밍이, 내 인생에서는 최적의 타이밍이다. 학기는 올해 9월에 시작하니 7월쯤 떠날 예정이다. 찬란하고 아름답다는 핀란드의 여름을 한껏 즐기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해볼까 한다.
2021년 10월에 결심해서 2023년 5월에 맺었다.
물론 할 수 있을까 시리즈는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