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부담을 조금 내려놓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은 나의 내적 몸부림
2022년 10월 28일 새벽 2시 59분. 서울의 한 호텔 로비에 앉아서 첫 글을 쓴다.
브런치 작가 신청이 승인이 되고 나서 '언제 글을 처음 작성하지'하는 생각을 문득문득 하고 있었는데, 이 야심한 밤에 갑자기 생각이 났다. 지금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글쓰기 자체에 대한 욕심보다는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 때문이다.
생각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나의 하루하루 일상에서 받는 도전과도 관계가 있다. ‘관계가 있다’라는 표현은 적고 나니 너무 외교적으로 순화된 표현인 것 같고, 하루하루 일상에서 나는 나의 생각이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계속 느끼고 있다.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는 생존의 고민이다.
나중에 이 글을 보며 이 시기의 기억이 희미해진 미래의 나 혹은 이 글을 보는 다른 누군가가 있다면, '그냥 있는 생각을 정리하면 되지 않느냐', '그게 무슨 생존의 고민까지 되는 거냐'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비유해보면 이렇다.
거의 6년여 동안 매일같이 전투를 치르고 집에 돌아왔다. 전쟁 같은 하루 속에서 집 정리는 사치라고 생각하면서 제대로 치우지 못하고 어질러 놓기만 하고 살았다. 어질러진 정도가 거의 걸어 다닐 수 있는 길 정도를 남기고 내 가슴팍까지 물건들이 쌓여있는 상태라 도무지 바닥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반대편 벽은 시야가 가려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거의 집보다는 쓰레기장에 가깝다. 그런데 갑자기 집이 당장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기를 요구받고 있고, 누군가가 곧 와서 검사를 할 것만 같다.
그리고 누군가가 검사를 하는 시점에 집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다면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할 것 같다. 어쩌면 누군가가 집을 나가라고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상황에서 복잡하고 지저분하게 쌓여있는 짐들과 쓰레기들이 펼쳐진 광경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대체 언제 이것들을 다 정리할 수 있을까.. 참으로 막막하다.."
실제로 최근에 회사 내에서 내가 놓이는 상황은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한다. 나는 스무 명 남짓한 회사의 대표로서 어떠한 사안에 대해서 나의 입장 표명이 필요한 상황들이 자주 벌어지는데, 이때마다 이런 도전을 받는다. 그런데 이럴 때 막막한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내가 사고가 명료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답답한 노릇이다.
창업 이전까지만 해도 나는 나의 주장이 확실하고, 스스로에 대한 자기 확신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 시기의 나는 짧은 기간 여러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거둔 성취와 이것들로 채워진 빛나는 이력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내가 나 스스로 잘못된 판단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난 6년을 거치면서 이러한 자기 확신, 자만에 가까운 자신감은 산산조각 나버렸고, 이 시기는 스스로를 겸손하게 만드는 시기가 되었다.
내가 이전에 비해서 겸손한 사람이 되고, 또 성숙한 한 인간이 되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나는 지금의 내가 이전의 나보다 훨씬 성장한 모습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낮아진 자기 확신의 수준이 자꾸 나 스스로를 알아가는데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요즘은 자주 내가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취향은 무엇인지, 이 사안에 대한 내 생각은 무엇인지. 내 마음속에서는 다음과 같은 레퍼토리가 자주 반복된다.
'그냥 결국 회사가 잘 되는 쪽으로 결정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럼 회사가 잘 되는 쪽이라는 건 뭔데? 숫자로 지금 당장 표현하기에 애매한 건 어떻게 하면 되는데?'
'어 그러게..'
요즘은 나도 내가 별로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너무 생각이 무겁고, 흐리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가 마음에 안 든다.
점점 무색무취의 인간이 되어가는 것일까? 영혼이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냥 이 시기가 또 성장의 시기이고 잘 배우고 성장하면 해결되는 시간의 문제인 것인가? 시간이 지나면 차차 괜찮아질까? 다시 명료한 수준의 사고를 금방 해낼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지금이라도 부지런히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조금 더 가벼워지기 위해서. 버릴 것들은 버리고, 소중한 것들은 쉽게 꺼낼 수 있도록 잘 보이는 곳에 정리해두고, 빨래나 세척이 필요한 것들은 다시 원래 깨끗한 상태로 돌려두고 싶다. 그리고 다른 새로운 것들이 들어갈 수 있는 여유 공간들을 많이 만들어 두고 싶다.
약간 시간이 걸리겠지만 한 번 시도해보려고 한다. 아니, 이것은 그냥 시도해보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일상에서 나의 정신건강을 잘 지켜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까지 '회사에도 도움이 되니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생각은 일단 의도적으로 무시해보려고 한다.
앞으로 그동안 쌓여있던 여러 방면에 걸친 나의 생각들을 하나씩 정리해볼 계획이다. 조금 더 가벼워질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