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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데아 Sep 16. 2021

내가 동의한노키즈존,결국 내 아이에게 돌아왔어

혐오를 방관한 나의 책임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만큼 생각한다고 했다.


불과 3년 전, 나에게 노키즈존은 누군가를 위한 배려이자 예의였다. 그러나 아이의 엄마가 된 나에게 노키즈존은 사회의 혐오이자 차별이 되었다.


아이와 외출할 시기가 된 내가 제일 신경 쓰는 것은 아이의 울음과 짜증이다. 아이가 힘들어서 내는 신호들이 타인의 질타로 돌아올까 봐 전전긍긍한다.


최근 유명하다는 카페에 갔다가, 노키즈존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남편이랑 군말 없이 차를 돌렸다.


'"왜 검색을 제대로 안 했어"

"요즘 그건 기본인데, 바보야!?"


하는 생각까지 갔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멀면 멀 수록 이런 자괴감은 극에 달한다.


하지만 이 혐오의 집단이 되기 전까지 나 역시 노키즈존에 대해 무관심했고 어쩔 때는 내 편의에 의해 찬성하기도 했다. 내가 함께 만든 혐오 문화가 역부 메랑으로 내 아이에게 돌아온 것이다.


철없던 시기에 아무 신념 없이 행동한 대가를 내 아이가 받는다는 것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나의 행동으로 상처 받은 아이와 가족이 있었을 테니, 사회적 관용과 배려에 무관심했던 내가 응당 감내해야 하는 몫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노키즈존,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배려이고 권리이지만 내 아이에게는 차별이고 혐오다. 그리고 내가 동조한 문화였다. 반성한다고 한들,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스멀스멀 기어 나와 이제는 엄연한 문화로 자리 잡은 노 키즈존에 반대의 목소를 내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노키즈존 문화를 보면서 나는 책임 있는 어른(?)이 되기 위해서 애쓴다. 나의 태도와 행동이 곧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과 연결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만큼 요즘은 나와 상관없는 차별과 혐오에도 내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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