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 결혼하는데도 여전히 이런 얘기가 나온다
"오빠 나는 절대로 주부가 안될 거야"
결혼하면서 내가 의식적으로 남편에게 뱉던 말이다.
남편이 가부장적인 사람이어서 걱정이 됐다기보다는 남편과 나에게 여자는 주부가 돼야 한다고 지겹도록 세뇌시키는 사람들의 말에 남편이 젖어들까 봐서였다.
여성인권, 페미니스트, 평등사회 등등 요즘 어디서든 지겹게 듣는 말이라 결혼도 그런 줄 알았는데. 요즘 사람인 내가 결혼하면서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게 놀랍고 서운하다.
결혼의 시작부터 어른들은 나를 주부로 만들려고 했다. 옛날에 많은 엄마들이 그랬고 또 그 엄마의 엄마들이 그랬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나에게 오려는 그 역할이 거북스러웠다. 그런데 아무리 내가 막아봐도 사방에서 스며드는 말들은 나를 서서히 주부로 만들었다. 이러다 보니 결혼할 성인이 가져야 할 상대에 대한 배려심과 결혼에 대한 책임감 이런 것은 다 필요 없고 그냥 여자니까 꼭 해야돼 라는 명령에 세뇌되고 있었다.
"결혼하면 여자는 남편 밥 잘 차려줘야 돼"
"결혼하면 여자는 항상 집을 깨끗하게 해야 돼"
"여자가 너무 돈 많이 벌려고 하지 마"
이사람 저사람의 한마디에, 결국은 제일 편한 엄마한테만 화를 터트렸다.
남편에 대한 청소와 밥을 강조하는 엄마한테
"대체 그럼 나는 누가 챙겨주는데? 다들 남편 밥밥밥, 내조하라고 하는데
그럼 나는 누가 챙겨줘. 나는 결혼하면 혼자야?"
이런 말 하는 딸이 짠하기도 하고 미안했는지 엄마는 절대 그런 말을 안 하신다.
남편은 나 같은 요구를 받지 않는다는 것에 더 마음이 상했다. 남편에게는 결혼 축하한다 잘 살아로 끝나는데. 누구 하나 남편에게 집안일 부지런히 하고 빨래 잘하고 부인 아침밥 잘 챙겨주라고 하지를 않는다. 남편의 가족과 나의 가족이 유독 보수적이어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여자라서 해야 하는 집안일의 조건은 많은데 남자여서 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네 부모님들은 자식들을 평등하게 교육하며 키웠을 텐데 막상 결혼을 하려니 갑자기 자식이 아닌 남자와 여자의 고정 역할로 나를 낮춰버리는 태도들이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강요를 점점 내면화하고 있는 것 같다.
어디서 봤는데 우리 남편이나 내 세대는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이 사라지는 과도기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현재 우리의 엄마 아빠들에게 봐왔던 엄마는 집안일, 아빠는 회사일을 하는 고정적인 역할에 익숙해져 맞벌이를 해도 여전히 남성들은 집에 와서 쉬고 여성들은 일을 하는 문화를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딱 이 상황인 것 같다. 나 스스로도 집안일은 여성의 전담 업무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문득 그래도 여자가 밥 한번이라도 더 차리는게 맞지라고 고민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털어내면서 괜히 내가 밥을 안차렸나 싶은 죄책감까지 든다.
이런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의 시선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집안일하는 여성에 대한 찬사, 가부장적인 우리네 부모님, 만나면 항상 아침밥 여부를 물어보는 남편 친구들의 태도가 먼저 사라져야 할 것 같은데 이것들은 절대 가주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불만을 내놓은 나조차도 집안일은 그래도 여자가 좀 더 해야 되는 게 아닐까라는 고민을 하는 동시에 그런 행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여자= 집안사람, 집안일하는 사람, 집을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답습은 우리 다음 세대면 진짜 구닥다리 이야기가 될까? 아니면 그때도 여전히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며 유령처럼 붙어 다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