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한테 엄마 성 준다는데 다들 질색팔색을 한다.
도대체 왜 내 성은 '절대' 안된다는 거야?
우리는 결혼 전부터 이 문제로 싸웠고, 지금도 갈등 중이다.
문득 아이를 낳으면 내 성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품고 그 고통을 견디며 출산하고, 그 아이를 기르는데 5할의 역할도 나다. 아이의 삶에 일정부분 책임이 있는 만큼 아이에게 내 성을 주고 싶었다.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누구의 성을 따르든 우리 아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으니까.
그런데 남편의 절대적인 반대에 나 역시 고집이 생겨버렸다. 나는 남편 성을 따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무조건적으로 내 성은 안된다는 남편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왜 내 성은 안되는데? 이유가 없잖아.
남편에게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원래 사회가 그런 식으로 흘러가니까였다. 또 남편은 부모님이 속상해하신다거나 '여성의 성도 원래 남자의 것이니 진짜 내 성은 없다'고까지 이야기했다.
세상에. 이 성은 내 정체성 중 일부다. 누가 나에게 성을 주고 안 주었고는 중요하지 않다. 이 성이 내 인생의 일부라는 점이 가장 중요하고, 내 정체성의 일부를 내 아이에게 주고 싶은 것이다. 차라리 논리적인 이유라도 있었으면 납득하는 척이라도 했을 텐데. 그런 것이 없으니 억지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특히 최근 친구가 자신의 성으로 아이의 이름을 짓는다는 말에 더욱 나의 주장을 굽히고 싶지 않았다.
남편 주장의 합리성을 찾다가 어떤 책을 봤다. 엄마는 출산한 아이에 대한 의심을 갖지 않는다고 했다. 내 배에서 나온 것이 확실하니까. 그런데 남성은 이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근원적인 불안감을 갖는단다. 그래서 아이를 낳으면 본능적으로 주변 사람들이 아이가 아빠와 똑같이 생겼다고 칭찬하거나 아이에게 아빠의 성을 줌으로써 아빠의 불안감을 잠재워주는 것이라고 했다.
문득 그래서 지금까지 여성들이 남성에게 성을 양보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출산과 육아까지 내가 하면 남편에게 남는 건 뭘까?라는 고민도 들면서 내 성을 고집하는 것이 욕심일까라고 갈등했다.
그러나 이 글은 굉장히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치사한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까 아이를 낳고 기르는데 남편이 하는 일은 적지만 아빠라는 구실은 갖춰야 하니까 성이라도 주자인 것 같았다. 아빠라는 기분은 내자라는 건가. 아무튼 가장 설득력 있었던 이 이론도 내 아이가 남편의 성을 따라야 한다는 이유가 되지 못했다.
남자 성만 따라야 한다는 이유가 없어.
사실 각자의 성을 따라야 하는 것에 대한 절대적인 이유도 없지만 그렇다고 내 성을 따르면 안 된다는 절대적인 근거도 없다. 그런데 밑도 끝도 없이 여자 성은 안된다.
왜 엄마의 성을 따르는 것은 유별나고 피곤하고 이상한 걸까. 이놈의 세상은 왜 이토록 성별 고정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남의 자식에게 내 성을 주겠다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이렇게 질색팔색을 하며 거절할까. 누구의 성을 따르든 상관없다. 남편의 성도 괜찮고 나의 성도 괜찮은 것이니까. 근데 절대 니 성만은 무조건 싫다는 말도 안되는 아집만은 좀 부리지 말자.